어쩌면 나는 처음에 서울이라는 이 도시를 사랑한 게 아니라 질투했던 것 같다.
Written by 이유진 / 서울문화재단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이루마라는 연주자를 좋아했다. 내 기억에 중학교 2학년 때, 이루마의 앨범 발매 기념 사진전이 서울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이루마 팬이었던 친구와 함께 서울에 다녀왔었다. 그 시절이 내가 처음 서울이라는 도시를 만났던 때였다. 당일치기 일정으로 정말 사진전만 보고 내려왔었기에 특별한 기억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스무 살이 되어서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두어 달에 한 번씩 상경을 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에도 서울이라는 도시를 특별하게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 후, 2014년에는 운이 좋게도 대학교 간 학점 교류 신청에 성공해서 1년간 서울에서 생활하는 기회가 생겼다. 그전까지 한 번씩 서울이라는 도시를 방문할 때는 알지 못했는데,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보니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내 고향과 약 190km 떨어진 큰 도시는 내가 그동안 지내온 도시와 정말 '다른 세상'이었다. 차라리 외국이라면, 언어도 문화도 인종도 달라서 그 차이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을 텐데, 같은 나라 안에서 물리적으로 2시간의 거리 차이지만 생활환경과 문화 수준, 교육 등 모든 면에서 2배가 아닌 수십 배 이상의 차이가 느껴지는 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어쩌면 나는 처음에 서울이라는 이 도시를 사랑한 게 아니라 질투했던 것 같다.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만약 나도 이런 환경을 일찍 만났더라면 더 큰 성장을 했었을 것 같은 아쉬움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2014년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생활을 하고 다음 해에 내려가서는 '다시 서울로'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2016년 내가 질투했던 도시,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는 서울살이를 한 지도 10년이 다 되어 간다. 그 사이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질투심은 사랑으로 바뀌었고, 이곳에 정말 나의 삶의 터전을 다져가고 있다. 좋아하는 공간들도 생기고,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쌓기도 하고, 가끔은 그냥 도시의 다양한 모습 그 자체에 무언가 뭉클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모든 것이 좋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많은 것에 감사하기도 하다.
지금까지 써 내려온 이야기가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서울에 나처럼 상경해서 지내는 청년들이 정말로 얼마나 많던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서울을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약간 애증의 관계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사랑한, 우리가 사랑한 도시 서울을 살펴보면서 또 다른 관점으로- 온전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일을 하다 보면 서울이라는 도시를 숫자로 보게 되는 일들이 많다. 서울에 문화예술 자원(인프라 등)이 몰려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규모가 역시나 압도적이었다. 민간 예술 기획 및 제작사는 7,800개, 예술활동 증명 예술인의 수는 70,889명, 공연예술 및 축제 종사자 수는 15,320명, 2024년 티켓 예매 수는 서울지역이 약 60%를 차지하고, 2024년 티켓판매액은 전체 약 1조 4,537억 원 중 서울이 약 9,465억 원으로 65%를 차지한다. 그리고 가을에 가장 많은 예술 공연 및 축제가 몰려 있다.
서울은 지금 문화도시로 대표 브랜딩을 만들고자 계절 특화 페스타를 만들고 있다. 서울스프링페스타(봄), 쉬엄쉬엄 한강 3종 축제(여름), 서울윈터페스타(겨울). 문화예술 이외에도 관광과 체육의 영역까지 아울러서 정말 종합적인 문화 도시라는 이미지를 구축 중에 있다. 문화 예술을 좋아한다면, 서울이라는 도시는 그 어느 곳보다 강력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넘사벽의 수준이다. 서울 안에서도 자치구 단위인지, 광역 단위(시)인지에 따라서 정말 그 규모도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서울살이 10년 차가 되어가는 요즘, 정말 그 어느 때보다 서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 콘텐츠의 수와 질이 갈수록 높아진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정말 볼 수 없는 규모감(그것을 감당할 예산)이다.
지역 간의 격차 면에서는 슬픈 현실이지만 어찌 되었든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풍요로운 자원 안에서 각자의 취향을 찾아가기 너무 좋은 도시 서울,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임을 오늘도 현장에서 느낀다.
이러한 자원의 풍요로움 외에도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면,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의 모습일 것 같다. 내가 자라온 소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스카이라인과 찬란하게 빛나는 밤의 모습. 한강대교를 건널 때 보이는 불이 밝게 켜져 있는 여의도의 모습, 인왕산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도심의 야경, 큰 기업들이 몰려있는 광화문과 종각역. 도시가 가진 아름다움의 순간은 밤에 숨겨져 있었다.
학생 시절에는 그저 불 꺼지지 않는 이 도시의 활력이 신기하고, 역시 서울은 서울이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사회인이 되고 보니, 어디서 본 것처럼, 서울의 야경은 누군가의 야근으로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이런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지만, 어두운 밤 밝게 빛나는 건물의 빛을 보면서 잠시 위안을 얻는 것에 가끔 감사하기도 하다. 오늘 나는 누군가에게 멋진 야경을 선물하고 온 1인이 되었다. 바쁜 시기가 지나면 나는 또 다른, 바쁘게 살아가는 누군가의 야근으로 서울의 야경을 즐기지 않을까.
이처럼 복합적인 도시의 매력은 생활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명절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되면 고향 집에 한 번씩 다녀온다. 그때마다 한 번씩 업데이트되는 여러 가지 근황들이 있다. 대부분 작은 소도시,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드러내는 이야기들이 많다. 70~80년대와 같은 정도는 아니겠지만, 정말 몇 다리만 걸치면 다 아는 사이이고, 알고자 하면 근황을 알 수 있는 그 작은 집단. 이번 명절에 가서도 다시 한번 소도시의 그 '연결성'을 느끼고 왔다.
언니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 나는 그래서 서울이 좋아.'로 대화를 마무리할 때가 자주 있다. 도시가 커질수록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어떠한 적절한 해방감과 익명성, 무관심에 나는 익숙해진 것이다. 지역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 많이들 느끼는, 도시의 장점이기도 하다.
물론 만약 내가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 어떤 도시보다도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서울에서, 그리고 계속 변화하고 있고 각자 살기 바쁜 이 도시에서는 어쩌면 무관심과 익명성은 일정 부분 기본값이 아닐까 싶다.
물론 요즘 커뮤니티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SNS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체감하고 있다. 완전한 고립이 아니라 적당히, 느슨한 연결성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서울이기에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 같다.
적당한 외로움과 익명성의 편리함 그 사이에서 균형감 있게 살아가는 것, 도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필수 사항이자 도시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