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김정혜 / 서울대학교 협동과정도시설계학전공 박사과정
그리하여 나는 내 새집, ‘썩은 아파트’에 들어왔다.
가족이 있는 수원에서 1년 남짓 머문 적은 있었지만, 완전히 거주지를 옮기는 건 꼬박 12년 만이다. 그리고 지난 8월 1일, 기억하기도 쉬운 그날, 나는 다시 서울을 떠났다.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불과 몇십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였지만, 과거 수원에서 살던 나는 친구들에게 “정신병 걸릴 뻔했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마다 찾던, 저녁에도 사람들로 붐벼 늘 안전했던 한강. 틈만 나면 들어가 시간을 보내던, 작업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던 뮤지컬과 전시 포스터들.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였음에도, 그 모든 것의 부재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나는 그제야 서울이 내게 어떤 도시였는지 실감했다.
아마도 나는 소위 ‘대도시 덕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경기도로 옮겨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나는 예외였다. 서울 특유의 긴장감, 빠른 호흡, 치열한 경쟁, 넘치는 정보 속에서 살아가는 걸 좋아한다. 서울 거리는 언제나 크고 작은 이벤트와 포럼, 정보가 넘쳤고, 만나는 사람들조차 새로운 소식과 정보로 가득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오래 살다 보니, 서울을 벗어나면 어디든 다 허전하고 답답했다.
그런 내가 다시 경기도로 오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는 부동산 공부에 몰두했다.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집도 마련하지 못한 채 경제적 자립 없이 시간만 흘러갈까 두려웠다. 그래서 ‘망해도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래야 마음이 놓이고 공부에도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2년 가까이 공부한 끝에 없는 돈을 탈탈 털어 집을 마련했다. 흔히 ‘썩은 아파트’라 불리는 노후 단지였다. 재건축이 되지 않더라도 직접 들어가 살 수 있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출을 낀 집이었기에 임대를 원하는 세입자는 보증금도 적고 월세도 적은 조건에, 급하게 집을 찾는 이들이었다. 그 때문에 세입자 문제로 복잡한 일도 많았다. 결국 1년 가까이 받아야 할 월세가 밀리고 보증금마저 위험해지자, 내가 직접 들어와 살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 새집, ‘썩은 아파트’에 들어왔다. 모순적이지만 매력적인 이름이다. 공교롭게도 내 연구 주제는 ‘노후 공동주택 정비방안’이다. 노후 공동주택이 불러오는 사회·경제적 문제, 거주자의 삶의 질 하락, 장기적인 유지관리와 정비방안이 내가 붙들고 있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이게 진짜 연구 아닌가! 이 집에서의 시작과 삶의 과정을 기록하며 노후아파트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약 두 달이 지난 시점, 매일이 다채롭고 매우 만족스러우며 심심할 겨를이 없다.
그렇게 노후 아파트에서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 지 약 10일이 지났을까, 바로 어제 일이 터졌다.
10월 3일 금요일, 개천절이자 약 10일간의 긴 명절 연휴가 시작되던 날이었다. 나는 점심부터 하루 종일 운전하며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집 청소, 잔업, 설거지 등 사소한 일을 끝내 놓고 집을 나섰다가 새벽 1시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을 보니 ‘무슨 포스트잇이 더덕더덕 붙어있지?’ 싶었다. 여느 때처럼 가스 점검이나 택배 관련 메시지겠거니 하고 확인했더니, 아래층에 누수가 생겨 우리 집 냉·온수 밸브를 모두 잠가 두었다는 내용이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메모에 순간 당황했다.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달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시계를 보니 이미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전화해야겠다’ 생각하며 누웠다가, 문득 걱정이 커져 이것저것 검색하기 시작했다.
> *노후아파트 누수로 인한 공사가 잦고, 누수 공사는 적으면 100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 이상이 든다. 이때 실비보험 및 운전자보험 가입 시 특약으로 가입할 수 있는 일상책임배상보험에 가입되어있으면 내 집의 문제로 인한 다른 주택이 피해 입은 부분, 공사비 대부분이 보상되니 꼭 가입하세요 :)*
이런 내용이 반복해서 나왔다. 평소 보험을 꼼꼼히 챙긴다고 자부해 왔기에 ‘다행이다’ 싶어 내 보험을 하나하나 확인했지만, 그런 특약은 어디에도 없었다.
‘왜 한 달에 천 원에서 많아야 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 특약을 빼먹었을까. 설계사분은 이런 중요한 내용을 왜 설명해주지 않았을까.’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서울에서 세입자로 오래 살며 노후 다세대와 다가구 주택을 전전할 때, 위층의 누수로 공사를 하거나 아래층 누수로 확인을 받는 일은 많았다. 그럼에도 ‘그런 일을 언젠가 내가 처리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노후 아파트의 누수 문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지만, 나는 예외일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