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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아파트에 살다 (2)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정혜 / 서울대학교 협동과정도시설계학전공 박사과정


이게 노후 아파트 거주자의 숙명인가 보다.

그때 문득 ‘아, 오빠가 세대원으로 등록되어 있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같은 세대에 속한 가족이 가족형으로 같은 보험에 가입되어있을 경우, 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새벽 3~4시경 가족 카톡방에 문자를 남기고 잠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잠은 또 참 잘 자는 내가 우습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처음 겪는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심장이 뛰었다. 늘 신이 나거나 설레서 뛰던 심장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내 보험을 모두 확인해봐도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이 없었기에, 앞으로를 대비해 보험에 새로 가입하더라도 이번 일은 내 돈으로 해결해야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고, 곧 업체를 불러 상태를 점검했다. 내 집만 보아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관리사무소에서도, 업체 분들도 다들 보험을 들어두었는지 물었다. 그러게요. 들어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른이 되어 책임질 일이 많아질수록,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수가 되어가는 듯하다. 자가가 생겼다는 것은 내 몸을 기댈 공간이 생겼다는 점에서 참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만큼 직접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전에는 주인집에 전화만 하면 됐는데.”


내 집에는 문제가 없으니,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누수 탐지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또다시 누수 탐지 업체를 불렀다. 이 모든 게 새벽 1시부터 현재 낮 1시까지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처음 왔던 기사님이 돌아가시며 말씀하셨다.


기사님 : 확인해보니 하수관 역류는 아니네요. 하수관 역류가 아니라면, 노후 아파트라 중간 배관이 터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 : 그러면 얼마 정도 들까요?


기사님 : …..ㅎㅎ 배관이 터진 거라면 대공사예요.


‘이것이 천만 원짜리로구나.’ 또 겁이 잔뜩 났다.



그때 문득 가족 톡방이 생각나서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톡방을 봤는지 물었지만, 정확히 읽지 않은 듯해 급히 상황을 설명했다.


(친)오빠 : 어, 나 그거 있을 거야. 필요한 건 다 들어뒀거든. 그래도 모르니 담당자에게 확인해볼게.


그리고 잠시 후, 다음과 같은 답이 왔다. 생명의 은인 같았다. 한순간에 내 잘못도 아닌 일로 많은 돈이 깨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는데, 보험사를 통해 처리가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을 때, 지옥에 갔다가 돌아온 기분이었다. 어쨌든 짧고 굵은 맘고생 끝에 비용 문제는 정리가 된 듯하다.


그래도 아직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모든 일이 처리될 때까지, 그리고 어쩌면 이 집에 머무르는 기간 내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누수 탐지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복구가 완료되기 전까지 냉·온수를 잠가둬야 해서 다시 며칠 간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 이사 왔을 때도 화장실 리모델링 공사로 며칠 동안 불편을 겪었다. (아직 화장실 라디에이터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 덜렁거리며 붙어 있다.) 이번에도 또다시 헬스장에서 씻고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다.


이게 노후 아파트 거주자의 숙명인가 보다.


그래도 ‘덕분에 운동도 하고 몸도 챙기지’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걱정하고 속상해해도 변하는 건 없으니, 좋은 점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추석 연휴에도 긴급 호출에 30분 만에 달려와 주신 업체 분들에게 감사하면서도, 이번 추석은 공사와 학회 준비를 병행해야 하는 ‘챌린지 연휴’가 될 것 같아 마음이 바짝 긴장된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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