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나를 고치려 타인의 시선 속에 나를 던져넣었지만, 결국 내가 가장 원했던 건 내가 끄고 싶을 때 불을 끌 수 있는 자유였다
Written by 김운효 / 도시디자인공장
함께 살면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셰어하우스에 들어오기 전, 나에게는 ‘함께 살기’의 경험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 기숙사였다. 6인 1실이라 프라이버시나 개인 시간이랄 게 없었지만 마냥 신나게 지냈다. 두 번째는 대학생 때의 공동체 생활 경험이었다. ‘아산서원’이라는 독특한 인문학 공동체 프로그램을 통해 경희궁 근처에서 6명이 플랫메이트로 한 층을 썼고, 그중 2명이 2층 침대가 놓인 방 하나를 나누어 썼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면 늘 배우는 게 있었다. ‘이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배려하는구나’, ‘저 사람은 사과 대신 유머로 상황을 넘길 줄 아네’. 사람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혼자일 때보다 사람들과 함께할 때 더 즐거웠다.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좋고 필요해졌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나를 믿지 못했다. 혼자일 때의 나는 늘어지고 게으른데, 함께 있을 땐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셰어하우스에서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해보면 당시 셰어하우스들이 공략한 타깃도 나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들은 함께 살면서 주고받는 가치를 유난히 강조했다. 함께 이야기하고 요리하거나 영화를 볼 수 있는 넓은 거실이 가장 큰 어필 포인트였다. 두 번째는 관리 서비스였다. 매달 5만 원만 내면 화장실과 부엌 같은 공용 공간을 청소해 준다고 했다. 자취를 해도 관리비가 그 정도라면, 방이 조금 좁더라도 넓은 거실과 부엌을 이용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던 셰어하우스에는 2인실 두 개, 3인실 하나, 1인실 두 개쯤 있었던 것 같다. 애초에 비용 절감보다 낭만을 좇아서였을까. 절대 저렴한 비용은 아니었음에도 나는 2인 1실을 선택했다. 누군가 내 옆에 있으면 왠지 더 성실하게 살 것 같다는, 고등학교 때의 ‘셀프 채찍질’ 습관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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