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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감각하는 네 가지 방법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문연준 / Cushman and Wakefield


도시를 채우는 청각적 요소들을 소음으로 치부할지 아니면 삶의 소리로 받아들일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다.



소리 : 도시의 맥박


깜빡하고 에어팟을 두고 나온 날이었다. 매일 걷던 출근길이었지만, 그날은 유독 청각적으로 풍성한 풍경이 펼쳐졌다.


철로를 달리는 마찰음이 들릴 때 지하철역은 비로소 가장 지하철다워졌고, 자동차 엔진 소리, 신호등 알림음,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제각기 타이밍을 맞추는 횡단보도는 도시 계획이 살아 움직이는 현장이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들리는 반려견 짖는 소리와 유모차 바퀴 구르는 소리는 이곳이 다양한 삶의 집합체임을 알려주었고, 상점가 셔터가 올라가는 소리와 바코드를 찍는 삑 소리는 도시의 경제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도시의 소리는 흔히 경적이나 공사 소음처럼 피하고 싶은 '공해'로 인식되곤 한다. 주거 환경의 질이 중요해지면서 소음 문제는 도시 설계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되었다.


하지만 냄새와 향기가 한 끗 차이이듯, 소음과 소리 역시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도시를 채우는 청각적 요소들을 소음으로 치부할지, 삶의 소리로 받아들일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다.


소리가 소거된 도시는 죽은 도시나 다름없지 않을까. 듣기 싫은 소음 너머, 이 모든 소리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도시가 살아 활동하고 있음을, 그것이 꽤 감사한 일임을 기억하고 싶다. 비록 귀를 즐겁게 할 음악은 없었지만, 수만 가지 소리가 어우러져 가장 도시다운 장면을 마주한 출근길이었다.



빛 : 낮이 드러내고 밤이 지키는 풍경


도시에는 두 가지 빛이 공존한다. 도시를 비추는 낮의 빛과 도시가 내뿜는 밤의 빛. 이들은 서로 다른 인상으로 도시의 시간을 완성한다.


낮의 도시는 자연광 아래서 고유의 색과 물성을 드러낸다. 동이 트면 어스름한 빛이 표면을 감싸고, 아침 햇살은 도시의 구석구석을 깨운다. 태양의 각도에 따라 그림자는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고, 건물과 거리의 재료들은 한낮의 빛을 받아 가장 또렷한 자기 색을 뽐낸다. 반면, 밤의 도시는 스스로 빛을 낸다.


낮에는 존재감 없던 가로등, 네온사인, 자동차 헤드라이트, 그리고 건물 옥상의 붉은 항공 장애등까지. 제각기 목적을 가진 인공의 빛들이 어둠을 채운다. 밤의 빛에는 질서와 안정, 그리고 자극과 피로가 뒤섞여 있다.


낮의 빛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면, 밤의 빛은 우리가 만들어낸 흔적이다. 낮의 빛은 도시를 깨우고, 밤의 빛은 도시를 지킨다. 그 사이를 메우는 무수한 빛이 모여 우리가 사는 풍경이 된다.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도시가 살아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흥미로운 것은 빛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빛을 찾고, 활동을 위해 빛을 갈구하면서도, 밤이 되면 그토록 찾던 빛을 '빛 공해'라 부르며 차단하려 든다. 물론 밤의 휴식을 위해 어둠이 필요하지만, 빛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우리가 밤에는 빛 때문에 못 살겠다고 투덜대는 모습은 인간의 어떤 간사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헛웃음이 난다.


부디 자연의 빛과 인공의 빛이, 낮과 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건강하고 다채로운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온도 : 뜨거움과 서늘함이 빚어내는 숨결


도시의 온도는 균일하지 않다. 지역마다 수평적인 온도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한 장소에 시간이 켜켜이 쌓이며 만드는 수직적인 온도 변화도 있다. 여명의 시간, 도시의 표면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있다. 해가 뜨고 사람과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도시는 서서히 예열된다. 한낮에는 태양열에 엔진과 실외기가 뿜어내는 인공열이 더해져 도시는 뜨거운 열기를 머금는다.


하지만 도시가 뜨겁게 달궈지는 순간에도 어딘가는 서늘한 온도로 도시를 식히고 있다. 빌딩 숲 사이로 바람이 통하는 골목, 나무가 우거진 공원, 물길이 흐르는 하천변은 다르다. 건물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은 열기를 흩트려 놓고, 나무 그늘과 나뭇잎의 증발 작용은 주변을 서늘하게 만든다. 흐르는 물은 열을 흡수하며 시원한 공기를 실어 나른다.


이처럼 도시는 뜨거움과 차가움이 서로 맞물리고 보완하며 순환한다. 덥다거나 춥다고 불평하기에 앞서, 발걸음마다 그리고 계절마다 다른 온도를 피부로 느끼며 도시가 숨 쉬고 있음을 감각해 보는 건 어떨까.



방향: 마주침과 엇갈림이 만드는 이야기


도시의 공간은 사방으로 열려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움직임은 꽤 단순하다. 대부분의 보행은 '가는 방향'과 '오는 방향', 이 두 가지 축으로 수렴된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동선은 이 큰 흐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직선도로와 사거리를 가장 익숙하고 질서 있는 형태로 받아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개의 축이 명확히 직교하는 공간에서 우리는 안정을 느낀다. 반면 삼거리나 오거리에 들어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우선 사람들의 시선과 몸의 방향이 여러 곳을 향하고 있고, 내가 보는 사람들의 모습도 20도, 30도, 45도 등으로 다양하다. 정면과 뒤통수를 보던 거리가, 옆모습을 보는 거리가 된다.


그와 반대로, 우리나라 길거리에서는 “일방통행”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바닥에 큼직하게 적혀 있는 글씨를 볼 때면, 일반적이지 않은 특별한 경우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도시의 모든 도로가 일방통행이라면 어떨까? 교통사고가 현저히 줄어들까? 교통사고는 보통 방향을 전환할 때 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차량과 보행자의 사고, 차량 간의 사고 모두 그렇다. 어쩌면 일방통행의 도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질서 있는 도시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삭막하고, 재미없고, 딱딱한 도시가 될 것이다.


1202 문연준 스케치.jpeg 도로 없이 광장으로만 보행이 이루어지는 도시는 어떨까. 다양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도시를 상상한다 (그림: 문연준)


거리의 단조로운 직선운동은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해체된다. 목적지를 향해 스쳐 지나가던 거리와 달리, 광장에서는 머무름, 운동, 피크닉 같은 다양한 행위가 일어난다. 보행은 직선이 아닌 곡선을 그리고, 작은 선택들이 이어져 다층적인 경로를 만든다. 사방으로 열려 있는 이 공간은 기꺼이 무질서를 허용한다.


일방의 도시, 양방의 도시, 그리고 다방향의 도시를 상상해 본다. 아무래도 서로 부딪히고, 엇갈리고, 얼굴을 마주하는 도시가 더 풍부한 이야기를 품고 있지 않을까. 매끄러운 질서보다는, 조금 복잡하더라도 사람 냄새나는 마주침이 있는 도시가 나는 더 좋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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