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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폭등은 도시의 부를 잠식한다

복합 위기의 시대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세훈



21세기 인류는 아주 복잡한 문제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빈 상가들이 눈에 띄고, 뉴스를 틀면 경제 침체, 전쟁, 기후위기, 주식시장 변동, 코인값 폭락, 정치적 불안정 소식이 끊기지 않습니다. 트럼프 재집권으로 관세 장벽이 국가 간 협상 카드로 활용되고 있죠. 여러 곳에서 인구는 줄어들고, 공장은 문을 닫고, 물가는 치솟고 있습니다.


워런 버핏은 "명성을 쌓는 데 20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데 5분도 걸리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도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 도시가 좋은 평판을 얻으려면 수십 년의 올바른 결정이 쌓여야 하지만, 위기의 순간 잘못된 결정으로 그 명성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도시들이 직면한 위기를 보면, 머리가 아찔해집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죠.


1.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

2. 급격한 고령화, 노인환자 및 돌봄 비용 증가

3. 청년들의 근로의욕 감소, 중·장년층의 조기 퇴직

4. 원자재 가격과 물가 폭등

5. 부동산 불안정 및 빈집, 폐교, 미분양 증가

6. 도시 빈민과 노숙자 증가

7. 공공서비스 적자 누적 및 질적 저하

8. 감염병 위협과 의료체계 불안

9. 기후위기 재앙화

10. 탈세계화, 경제장벽, 글로벌 인플레이션

11. 소득격차와 경험격차 증대

12. 전쟁, 무력도발, 테러와 극단주의

13. 마약·약물 중독 확산

14. 사회통합 실패, 이주자와 난민 갈등


물론 인류는 과거에도 수많은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난이도가 높습니다. 여러 위기가 동시에 얽혀 있고 국제 정세와 내부 이해관계가 뒤엉켜 과거의 경험만으로 해결책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 결과 오랫동안 견고하다고 믿었던 번영의 기반에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일부 균열은 FADE 모델 내 자산과 역량의 결합을 멈추게 하거나 심지어 파괴하는 힘으로 작동하죠. 이런 현상은 우리 일상과 가까운 곳에서도 목격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우리나라의 공사비 폭등 문제를 한번 살펴볼까요?


2024년 봄, 서울 잠원동의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비가 평당 1,300만 원으로 확정되었습니다. 30평짜리 집 한 채를 짓는데 순 공사비만 4억 가까이 든다는 얘기죠. 이는 7년 전 책정했던 평당 569만 원에서 2.3배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잠원동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2024년 말, 전국 주요 도시의 민간 아파트 공사비는 평당 800~1,000만 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건축설계 사무소에서 실무를 시작했을 때 우리나라 아파트의 공사비는 평당 230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공사비가 치솟으면 여러 문제가 발생합니다. 노후화된 주택이나 상가, 오피스를 새로 짓는데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듭니다. 비용이 더 투입되는 만큼 완성된 공간을 팔거나 임대함으로써 얻는 수익이 비례해서 높아져야 하는데, 경기 불황으로 부동산 전망은 어둡습니다.


지역 내 오래된 건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낡고 일부는 멸실됩니다. 적어도 사라지는 만큼의 새로운 공간이 공급되거나 잉여 공간의 활발한 용도 전환이 이루어져야 시장이 안정되는데, 최근 이런 균형이 깨졌습니다. 물론 신도시에 새로운 주택과 사무실이 공급되고 있지만, 모두가 이런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기성 시가지에서 공급 활력을 유지하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공사비는 폭증하는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로 건설사와 시행사의 부도가 급증했죠. 많은 개발이 중단되고, 이미 진행 중인 현장도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일부 입찰 현장에서는 참여 건설사의 품귀 현상이나, 주택용지 매각 입찰에 아무도 참여하지 않아 저가로 낙찰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개발 자금을 언제 어떤 조건으로 조달할 수 있는지, 건설과 분양 과정이 계획대로 진행될지, 임차인을 확보할 수 있는지 등 불확실성이 높아졌습니다. 여기에 최근 일어난 코로나19, 우크라이나 및 중동 전쟁으로 인한 각종 공급망 교란, 지역 경제의 블록화,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영향도 큽니다. 숙련 인력의 건설현장 기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에 따른 안전기준 강화, 나아가 입주 수요 확보를 위한 시행사의 마케팅 경쟁도 프로젝트 비용을 치솟게 만듭니다.


이미 공사비 증액으로 분담금을 더 내야 하는 조합원들, 공실 피해를 겪는 상가 점주들, 비용 증액 없이는 공사 재개가 어렵다고 버티는 시공사와 예비 입주민의 갈등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 공공택지 및 일부 민간택지에는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 중입니다. 법적으로 정해진 판매 가격의 상한은 있는데, 건설 원가는 오르고 개발·분양 리스크가 커지면서 산업 전반이 경색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FADE 모델에 적용하면 어떨까요?


새로운 집이나 오피스가 생기지 않고 공간이 노후화되는데 임대료는 여전히 높다면 도시에 인재와 근로자(l)의 유입이 저조합니다. 이미 심각하게 진행 중인 인구 감소와 맞물려 인적 자원의 유동성과 생산성이 곤두박질칩니다. 지역 쇠퇴와 함께 금융자본과 사회자본의 유입(k)도 끊기죠. 도로나 상하수도 같은 하드인프라와 교육과 의료체계 같은 소프트인프라(i)도 질적 저하를 겪게 됩니다. 결국 y = f(l, k, i) ✕ ADE 에서 자산 요소인 l, k, i 가 모두 타격을 입게 되어 도시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 어려워집니다. 장기적인 공사비 폭등은 도시의 부를 잠식하게 되는 것이죠.


건설강국 한국의 산업계는 지금 판도라의 상자 같습니다. 과도한 공사비와 공사 현장의 부실 문제 해결의 필요성에 모두가 공감하지만, 섣불리 상자를 열었다가 제대로 수습하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상자를 닫아버리면 안에 남는 것은 희망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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