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아파트에 살다 (4)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정혜 / 서울대학교 협동과정도시설계학전공 박사과정


노후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단순히 낡은 집에 사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집을 돌보고 대비하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



사건의 시작


10월 3일 개천절, 약 10일간의 긴 명절 연휴가 시작되던 날이었다. 나는 점심부터 하루 종일 운전하며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집 청소, 잔업, 설거지 등 사소한 일을 끝내놓고 집을 나섰다가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무슨 포스트잇이 더덕더덕 붙어있지?'


문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여느 때처럼 가스 점검이나 택배 관련 메시지겠거니 하고 확인했더니, 아래층에 누수가 생겨 우리 집 냉·온수 밸브를 모두 잠가두었다는 내용이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메모에 순간 당황했다.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달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시계를 보니 이미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전화해야겠다' 생각하며 누웠다가, 문득 걱정이 커져 이것저것 검색하기 시작했다.


노후 아파트 누수로 인한 공사가 잦고, 누수 공사는 적으면 100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 이상이 든다. 이때 실비보험 및 운전자보험 가입 시 특약으로 가입할 수 있는 일상책임배상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내 집의 문제로 인해 다른 주택이 피해 입은 부분, 공사비 대부분이 보상되니 꼭 가입하세요 �


이런 내용이 반복해서 나왔다.


평소 보험을 꼼꼼히 챙긴다고 자부해 왔기에 '다행이다' 싶어 내 보험을 하나하나 확인했지만, 그런 특약은 어디에도 없었다. '왜 한 달에 천 원에서 많아야 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 특약을 빼먹었을까. 설계사분은 이런 중요한 내용을 왜 설명해주지 않았을까.'


나 자신도 원망스러웠다. 노후 아파트의 누수 문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지만, 나는 예외일 거라 생각했다.


서울에서 세입자로 오래 살며 노후 다세대와 다가구 주택을 전전했는데, 위층의 누수로 공사를 하거나 아래층 누수로 확인을 받는 일은 많았다. 그럼에도 '그런 일을 언젠가 내가 처리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아, 오빠가 세대원으로 등록되어 있지.' 같은 세대에 속한 가족이 가족형으로 같은 보험에 가입되어 있을 경우, 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새벽 3~4시경 가족 카톡방에 문자를 남기고 잠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잠은 또 참 잘 자는 내가 우습기도 하다.



탐지와 수리


10월 4일,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처음 겪는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심장이 뛰었다. 늘 신이 나거나 설레서 뛰던 심장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내 보험에는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이 없었다. 앞으로를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더라도, 이번 일은 내 돈으로 해결해야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고, 곧 업체를 불러 상태를 점검했다. 내 집만 보아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관리사무소에서도, 업체 분들도 다들 보험을 들어두었는지 물었다 (그러게요. 들어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른이 되어 책임질 일이 많아질수록,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수가 되어가는 듯하다. 자가가 생겼다는 것은 내 몸을 기댈 공간이 생겼다는 점에서 참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만큼 직접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전에는 주인집에 전화만 하면 됐는데."


내 집에는 문제가 없으니,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누수 탐지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또다시 누수 탐지 업체를 불렀다. 이 모든 게 새벽 1시부터 현재 낮 1시까지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처음 왔던 기사님이 돌아가시며 말씀하셨다.


기사님: 확인해 보니 하수관 역류는 아니네요. 하수관 역류가 아니라면, 노후 아파트라 중간 배관이 터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 그러면 얼마 정도 들까요?


기사님: …..ㅎㅎ 배관이 터진 거라면 대공사예요.


'이것이 천만 원짜리로구나..' 또 겁이 잔뜩 났다.


그때 문득 가족 톡방이 생각나서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톡방을 봤는지 물었지만, 정확히 읽지 않은 듯해 급히 상황을 설명했다.


오빠: 어, 나 그거 있을 거야. 필요한 건 다 들어뒀거든. 그래도 모르니 담당자에게 확인해 볼게.


그리고 잠시 후, 보험 처리가 가능하다는 답이 왔다. 생명의 은인 같았다.


한 번에 내 잘못도 아닌 일로 많은 돈이 깨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는데, 보험사를 통해 처리가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을 때, 지옥에 갔다가 돌아온 기분이었다. 어쨌든 짧고 굵은 맘고생 끝에 비용 문제는 정리가 된 듯했다.


그 당시에도 누수 탐지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복구가 완료되기 전까지 냉·온수를 잠가둬야 해서 다시 며칠간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 이사 왔을 때도 화장실 리모델링 공사로 며칠 동안 불편을 겪었다. (아직 화장실 라디에이터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 덜렁거리며 붙어 있다.) 이번에도 또다시 헬스장에서 씻고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게 노후 아파트 거주자의 숙명인가 보다.


그래도 '덕분에 운동도 하고 몸도 챙기지'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걱정하고 속상해도 변하는 건 없으니, 좋은 점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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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 완료와 정산


추석 연휴 첫날 싱크대 부분 누수로 스펙터클 했던 10월 2~3일을 보낸 후, 정비업체를 불러 수리까지 마쳤다.

결과는 총 수리비 250만 원. 누수 영역 수리 220만 원 + 누수 탐지 30만 원, 합계 250만 원이었다.


1,000만 원을 예상했던 나에게는 가격이 1/4로 줄었으니 아주 저렴하게 느껴졌다. 역시 삶은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정신이 행복하다. 물이 반밖에 안 남았어, 보다 물이 반이나 남았어, 가 더 행복하듯


'250만 원이나 나왔어, 이게 무슨 변이야'보다 '1,000만 원일 수도 있었는데 250만 원밖에 안 나오다니, 이게 웬 행운이람'이 훨씬 낫다.


수리는 약 4시간 정도 걸렸고, 엄청난 소음이 오가더니 하루 만에 완료됐다. 그리고 현금결제의 타격으로 통장에서 250만 원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그래도 나에겐 보험이 있었다.


수리를 하는 도중, 오빠에게 '보험 작성 서류'들이 날아왔다. 피해 세대(아랫집), 피보험자(나), 업체(수리 담당 전문가)의 소견서와 정보 확인이 필요했다.


나는 수리 중간중간 도시관측챌린지 글을 쓰고, 소견서를 작성하고, 업체 담당자분이 부르면 쪼르르 따라갔다가 상황을 확인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약 4시간을 보냈다.


업체분께서 소견서를 메일로 보내신다고 해서 인사를 나눈 뒤 떠나보냈고, 나도 바로 다음 일정이 있어 집을 나섰다. 서류는 메일로 잘 받아 보험사에 전달한 상태다.



아랫집과의 만남


다음 날, 아랫집에 방문해 문을 두드렸지만 집에 계시지 않았다. 아마 어제까지 계시다가 추석 일정으로 본가에 가신 듯했다. 그래서 쪽지를 남겨두고 돌아왔다.


'문제 있는 부분은 수리를 마쳤으며, 앞으로는 누수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혹시 추가적인 문제가 있으면 말씀 주시고, 서류 작성을 요청드립니다.'


며칠 후, 추석이 지나고 난 시점이었다.


아랫집에서 "서류를 작성했으니 찾아가시면 된다"는 메시지가 왔다.


그때까지는 어떤 말을 듣게 될지, 화가 나셨을지, 얼마나 청구를 하실지 여러 가지 상상과 약간의 고민(그래도 보험이 있으니까!)을 안고 날짜를 맞춰 아랫집을 방문했다. 전날은 학교에서 잠을 잔 날이라 아침에 집에 들어갔던 날이다.


"여기 있어요."


매우 차분하고 친절한 목소리였다. 추가적으로 불편했다는 말씀도, 짜증이 난 기색도 전혀 없었다.

더욱이 서류를 확인해 보니 피해 입은 부분에 대한 청구도 없었다. 그리고 약 20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다. 이것도 참 행운이구나..



원인 분석과 앞으로의 대비


누수는 오래된 동관의 휘어진 부분이 부식되며 생긴 현상으로 파악됐다. 즉, 내 집뿐 아니라 다른 세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서서히 시작되거나 이미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 내가 겪은 일을 공유하는 걸 꽤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추석 누수 사건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올렸다. 이곳에서도 이야기했듯, 내 주변에는 함께 부동산 공부를 했거나 이미 부동산 투자를 본업 또는 사이드로 하고 있는 지인이 많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사람들은 이미 복잡한 사건을 수도 없이 겪어와서인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거나 가지고 있는 주택에 복잡한 사건이 생겨도, 그래서 매우 골치 아프고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을지라도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거나, 성장한 사건으로 여겨 본인 노하우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누군가는 "풍요로운 추석을 보내고 있다"며 농담을 했고, 누군가는 "노후 주택은 한 번 수도가 터지면 다음 약한 부분도 연쇄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며 다음에 같은 일이 있으면 온수 수도관을 천장으로 연결하는 방향을 고려해 보라고 조언했다.

(신기하게도 냉수관에는 어지간하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온수관은 열 때문에 동관 부식이 더 빠른 듯하다.)


싱크대 누수관 수리 후, 업체분께 마지막 인사를 하며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라고 농담을 건넸더니, 그분은 "우리는 얼굴을 안 보는 게 좋은 겁니다. 그러지 마세요"라고 하고 가셨었다.


그런데 머지않은 미래에 또 뵙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엄마 보험도 전부 확인하고, 일상배상책임보험에 가입시켜 드렸다. 내가 어릴 땐 신축이었지만, 그곳도 이제 구축의 길에 접어들었으니까.


추석 연휴에 긴급 호출에도 30분 만에 달려와 주신 업체 분들에게 감사하면서도, 이번 추석은 공사와 학회 준비를 병행해야 하는 '챌린지 추석'이 되었다. 예상치 못한 비용과 불편함 속에서도, 나는 다시 한번 배웠다. 노후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단순히 낡은 집에 사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집을 돌보고 대비하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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