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민선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우리는 불편을 견디는 법을 잊었다. 소리 없이 지워지는 이웃과 가게가 없도록 우리는 기꺼이 관계의 번거로움을 짊어져야 한다.



사라짐은 우연이 아니다


동네 가게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무인 점포가 빠르게 채우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히 상권의 교체로 축소되어 관찰될 문제가 아니다. 무인 점포에서는 당연하게도 사람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였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유인 가게에 머무르는 주체는 크게 두 종류다. 운영하는 사람, 그리고 머무르며 소비하는 사람. 그러나 지금의 도시에서 점주도 고객도 각자의 이유로 사라지고 있다. 이탈의 이유를 따라가 보면, 결국 문제는 노동의 재편으로 귀결된다.


우선 점주는 더 이상 가게에 머물지 않는다. 요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나 무인 카페와 같이 활발히 늘어나는 업종의 확산은 세컨드 잡과 수입의 파이프라인이라는 현상을 배경으로 한다. 본업의 소득만으로는 생활이 버겁고, 소득을 늘려야 한다는 불안감은 부업에 대한 수요를 늘렸다. 이에 본업은 유지하면서 유동적인 시간에 관리 노동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무인 가게를 선택하는 비율이 늘어난다.


고객 역시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말보다는 보이지 않는 시간으로 흩어졌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플랫폼 노동의 증가, 교대제의 확산, 유연 근무, 잦은 야간 노동. 도시인의 생활 시간은 더 이상 정해진 영업시간과 맞물리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정해진 시간에 운영하는 업장보다 모든 시간 접근할 수 있는 24시간 무인 운영 가게나 배달 서비스로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결국 기존에 우리가 관찰하고 이해하던 도시의 전제는 일정 밀도 이상의 사람들이 일정 시간에 모여야만 성립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주디 와이즈먼이 말했듯이, 시간이 파편화되면 문화, 소비, 일상은 재구조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도시의 구조도 이러한 재구조화 과정에 놓였다.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마주하며


도시는 변하고 있다. 이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는 탈각의 과정인지, 혹은 그저 조각을 잃어버리는 쇠퇴의 과정인지는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무엇을 잃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한 채 도시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문제가 되리라는 생각에 도시를 관측했다.


100일간의 도시 관측에서 찾아낸 것들은 파편이었고, 처음에는 이러한 변화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지 못했다. 도시를 살아가면서 도시가 변화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변화는 늘 자연스럽고, 적응은 개인의 몫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비슷한 장면이 반복될수록, 사라지는 방식이 닮아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무엇이 없어지고 있는지가 아니라, 어떤 조건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지를 보게 되었다.


첫 번째로 잃어버린 것은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목욕탕, 식당, 공원 등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들, 즉 익숙한 사람들이 맞이해주는 느린 공간은 사라졌다. 하나의 지점이 변화하는 과정이기에 도시의 전체 구조가 변한다는 자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점진적으로 도시가 허락하는 시간의 길이는 확연히 짧아졌다. 정해진 시간에 운영하는 업장은 줄어들고, 24시간 무인 운영 가게나 배달 서비스가 그 자리를 채우면서 사람들이 한 공간에 함께 머무를 이유는 더욱 사라졌다.


두 번째로 잃어버린 것은 중심이 되는 사람이다.


사라진 조직의 중심에 있던 식당의 주인이나 목욕탕 주인은 방문하는 이를 환대했다. 그리고 문제를 중재하고 지역 사회를 살펴보는 구심점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소비 패턴의 변화와 노동 구조의 변화는 이러한 사람들을 사라지게 한다. 남은 것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무인 점포나 일하는 사람이 매 순간 바뀌는 문화공간이다. 점주가 더 이상 가게에 머물지 않는 현실은 단순히 운영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도시의 구심점 자체가 해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 잃어버린 것은 사람 그 자체이다.


중심이 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도시는 소란스러운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그리고 이용자들이 ‘바라보기에’ 불편한 사람이 머무를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적극적인 배제보다 간접적인 거부로 도시의 다양성은 상실되고 있다. 파편화된 시간 속에서 고객들은 더 이상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모이지 않으며, 그들이 도시 밖으로 밀려나는지, 혹은 허락된 공간에 집결하는지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로 잃어버린 것은 도시 사람들의 수용력 그 자체이다.


과거의 도시는 소란스러움을 감내할 줄 알았고, 낯선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도시는 조용하고, 안전하며, 불편하지 않다. 질서의 진전처럼 보이는 이러한 조용함은 갈등을 감당하지 않겠다는 수동적인 태도다. 그리고 수용력이 줄어든 도시는 더 안전해 보이지만 동시에 더 얇아지고 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문제는 이러한 재구조화 이후의 도시가 이전보다 더 많은 빈틈과 비가시성을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도시 곳곳에서 사람은 줄어들고, 노동은 멀리 이전되고, 관계가 맺히던 장소들은 사라진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특정한 가게나 시설이 아니라, 서로를 감당하며 살아가던 도시의 방식이다. 도시는 배타적인 개방을, 관계 없는 공공성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다듬어진 표면은 매끄럽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 변화에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파편화된 시간을 전제로 한 새로운 도시의 표준을 상상할 것인가. 변화가 이미 시작된 이상, 도시의 미래는 그 선택에 달려 있다.


이 기록은 도시를 바꾸기 위한 제안서라기보다는, 내가 도시를 대하는 태도를 정리한 메모에 가깝다. 모든 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엇이 사라졌는지조차 말하지 않는 상태로는 더 이상 도시에 머물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관측은 때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지만, 적어도 무관심과는 다른 위치에 나를 놓아준다.


그렇기에 다시 질문하게 된다. 더 조용하고, 더 관리 가능한 도시가 정말로 더 나은 도시일까. 아니면 우리는 이미 불편해질 수 있는 능력 자체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누군가 소리 없이 사라지지 않도록 살펴보고 관계의 복원을 상상하는 것이 도시 생활자로서의 책임일 것이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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