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문성남 /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인간은 고립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타인과의 연결을 갈망하는 모순적인 존재다.
외로움과 고독사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본격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니, 혼자 있다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이후, 식당에서 혼자 식사하는 시민을 보고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여기게 된 배경에는, 우리는 사회적·물리적으로도 일상 속에서 ‘홀로 있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잠시라도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개인의 욕구가 반영된 측면도 있다. 이를 단순히 고물가의 결과로만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라는 책 제목이 인간의 상충하는 욕구를 상징하듯,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거나 보내고 싶은 순간은 있을지언정, 자신의 생일처럼 중요한 날을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고, 위로나 축하가 필요한 순간에 연락하거나 만날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이는 드물 것이다.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은 찾아올 수 있어도, 외로움을 온전히 즐기기란 쉽지 않으며 대부분은 피하고 싶은 감정에 가깝다. 이 책의 저자 백세희 작가 또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회와 단절하지 않고, 장기 기증이라는 선택을 통해 관계의 의미를 남겼다. 인간은 고립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타인과의 연결을 갈망하는 모순적인 존재다.
이러한 개인의 이중적인 욕구 속에서 유통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한국 유통업계에서는 비대면·초특가·신속배송을 앞세운 쿠팡이 급성장하던 시기에 오프라인 소매점들 역시 셀프 계산대 도입과 확장을 이어갔다. 반면 미국의 일부 소매 유통업체들은 셀프 계산대 확대보다 계산원을 통한 결제 방식을 다시 검토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는 계산원을 통해 서비스를 받을 때 셀프 계산대를 이용할 때보다 더 존중받고 가치 있게 대우받는다고 느끼며, 이러한 경험은 보상감과 충성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나아가 네덜란드의 유통체인 점보(Jumbo)는 2019년부터 '느린 계산대(Kletskassa)'를 운영하며, 고객과 직원이 서두르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왔다.
비대면 문화가 확장된 한국 사회에서는 OTT와 스마트폰의 발달로 혼자 즐길 수 있는 오락문화가 크게 성장했지만, 일상의 한편에서는 여전히 관계에 대한 그리움이 드러난다. 쿠팡플레이 드라마 〈우리 동네 특공대〉에서는 슈퍼마켓이 단순한 소비 공간을 넘어 음식을 나누고, 물건을 사고팔며, 만남과 교류가 이뤄지는 장소로 그려진다. 배우 윤계상이 연기한 인물이 속한 가족이 마을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슈퍼마켓뿐 아니라 세탁소, 문구점을 겸한 철물점, 무예 도장 같은 생활공간과 그 공간의 운영자들이었다.
이 공간들의 소유와 운영 주체가 동일한지와는 무관하게, 운영자들은 부녀회장·통장·청년회장, 혹은 '동네 삼촌'과 같은 정체성으로 주인공 가족을 맞이한다. 드라마 속 이웃 관계는 생업과 맞물리며, 상호 보완을 넘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로컬 커뮤니티 기반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보여준다. 이를 굳이 우리말로 옮긴다면 '지역사회관계 기반 사업'이라 부를 수 있겠다.
1인 가구가 보편화된 사회에서 이러한 이웃의 관심과 참여는 때로는 귀찮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고, 지나친 오지랖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오면, 이러한 이웃의 존재가 고맙게 다가오는 순간 또한 찾아온다. 노년기에 접어들어 독거노인이 되면 도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자신이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웃의 손길은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 된다. 전문 인력에 의한 돌봄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 관계망과 협력은 지역사회 돌봄(community care)의 핵심 축 중 하나다. 필자의 할머니 역시 생명을 위협하는 병환이 갑작스럽게 찾아왔을 때, 마을 이장님의 신속한 신고 덕분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콘텐츠 속 이웃들이 관심과 참견은 하되, 주인공 가족을 단지 매출을 올려줄 소비자나 개발 이익을 노리고 들어온 외지인으로만 대했다면 드라마의 전개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낯선 이의 정착을 가로막는 텃세와 터줏대감의 이야기로 흘러갔을지 모른다. 다행히도 이들은 경계할 줄 알면서도, 결국에는 정을 나눌 줄 아는 관계성을 지니고 있었다.
관계에 기반한 삶의 방식은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전략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일본에서는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을 '관계안내소(関係案内所)'라 명명하며 논의해 왔고, 이 개념은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다.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들, 지역이 궁금한 방문자와 전입자가 지역민을 만나 첫인상을 나누고 관계의 실마리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소규모 단위에서 마을회관이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으나, 주민이 늘 상주하며 방문자를 맞이하기는 어렵다. 행정 기능을 담당하는 관공서 역시 자연스러운 만남의 공간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시야를 넓혀 보면 도시마다 있는 관광안내소가 기능적으로는 가능해 보이지만, 정보 제공을 넘어 관계 형성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만약 관광안내소 종사자 교육에서 친절을 넘어 관계의 지속성까지 고민했다면, 우리는 관광안내소의 '단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관광안내소를 방문자센터(visitor center)라는 관점으로 재해석해 볼 수 있다. 실제로 필자가 방문한 일부 도시에서는 관광안내소 대신 방문자센터라는 이름으로 공간이 운영되고 있었다. 관광 목적의 방문이 많은 만큼 제공되는 정보의 상당 부분은 관광에 집중되지만, 그 역할을 관광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펜실베이니아주 벨레폰테(Bellefonte)에서는 간이역에 위치한 방문자센터가 상공회의소를 겸하며 마을의 역사관이자 지역사회 회의 공간, 계절 관광열차의 승차장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었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Omaha)의 방문자센터는 지역 기념품과 정보 자료를 비치하는 한편, 방문객이 커피나 음료를 마시며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두 곳 모두 상근 직원과 함께 중·장년층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살아 있는 지역 이야기를 전하며 방문객을 환대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 소상공인의 사업장이 관계안내소가 되어야 하는지, 관광안내소와 같은 공공시설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에 대해 정답은 없다. 오히려 지역의 규모와 여건에 따라 민간과 공공이 따로 또 같이, 일상과 제도를 오가며 역할을 나누는 방식이 현실적일 것이다. 그에 앞서 우리는 새로운 누군가를 맞이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부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