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불과 1시간 남짓한 비행거리, 우리에게 ‘후쿠오카’는 친숙한 일본 여행지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하카타’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8세기 문헌에도 등장할 만큼 유서 깊은 하카타는, 12세기부터 16세기 말까지 일본에서 가장 번성했던 항구 도시로서 대륙과 교류하며 상업의 꽃을 피웠던 곳이다.
반면, 에도 시대 초기(17세기) 구로다 나가마사가 후쿠오카 성을 쌓으며 건설한 군사 행정도시는 오늘날 ‘후쿠오카’의 원형이 되었다. 즉, 나카강(那珂川)을 경계로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이 기묘한 쌍둥이 도시의 결합이 바로 현재의 후쿠오카다.
1889년 이 두 지역이 통합될 때, 도시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통합 시(市)의 이름은 ‘후쿠오카’로 하되, 새로 지어지는 철도역의 이름은 ‘하카타역’, 그리고 항구는 ‘하카타항’으로 남기는 타협이 이루어졌다. 덕분에 우리는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 ‘하카타역’으로 이동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카타 원도심의 골목은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는 16세기 말, 전란으로 불타버린 도심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부흥시킨 '태합정(혹은 텐쇼의 지와리, 天正の地割)'의 유산이다. 당시 구획 정비는 상업과 물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시 시스템의 리셋이었다.
하지만 원도심은 유산지구처럼 박제된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2011년 완공된 ‘JR 하카타 시티’가 기차역을 거대한 복합 공간으로 수직 확장시켰다면, 2016년 들어선 ‘KITTE 하카타’는 상업 지구의 밀도를 더욱 높였다.
특히 JR 하카타 시티의 옥상정원인 ‘츠바메노모리 히로바’에 서면, 멀리 하카타항과 공항이 한눈에 들어와 이 도시가 왜 바다와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관문 도시인지 실감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하카타 커넥티드’ 프로젝트를 통해 노후화된 빌딩들이 차례로 갱신되며 스카이라인이 또 한 번 변모하고 있다.
빌딩 숲 사이, 1242년 창건된 조텐지(承天寺) 앞에는 '우동과 소바의 발상지'라는 비석이 서 있다. 성질 급한 상인들이 빨리 먹고 일터로 나갈 수 있도록 개발된 하카타 우동은, 후루룩 넘어가는 부드러운 면발과 우엉튀김(고보텐)을 얹은 소박함으로 뱃사람들의 허기를 달랬다. 일제강점기 탄광 노동자들의 식문화에서 유래해 서민들의 스태미나식으로 정착한 모츠나베(곱창전골), 닭을 푹 고아 낸 맑은 국물의 미즈타키, 그리고 나카스 강변의 포장마차(야타이) 거리는 항구 도시의 치열했던 기억을 미각으로 되살리는 생활유산이다.
하카타 원도심을 걷다 보면 현대적인 빌딩 사이로 유난히 많은 사찰과 신사를 마주하게 된다. 1195년 창건된 일본 최초의 선종 사찰 쇼후쿠지, 앞서 언급한 조텐지, 그리고 도시의 수호신인 쿠시다 신사 등이 그 주인공이다. 중세 항만도시에서 사찰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었다. 낯선 상인과 물자, 정보가 몰려드는 항구에서 사찰은 숙박, 금융, 중개, 그리고 치안까지 담당하는 일종의 도시 지원시설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현대에 와서도 도시의 공간 구조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과거의 사찰들이 기능을 다하고 남긴 넓은 경내와 녹지는 빽빽한 도심 속에서 숨통을 트여주는 오픈 스페이스가 되었고, 최근 ‘하카타 올드 타운’ 정비 사업을 통해 깔끔한 돌길로 연결되며 걷기 좋은 산책로로 재탄생했다.
사진 속 이치란 라멘 앞의 긴 줄과 나카스 강변의 활기는 이 촘촘한 연결망이 뿜어내는 에너지의 한 모습이다. 밤이 되면 붉게 밝혀지는 유흥가와 거리낌 없이 열려 있는 포장마차들은 엄숙한 성곽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하카타만의 풍경이다.
나카강 건너 후쿠오카 성터와 오호리 공원이 권력과 질서, 통제를 상징하는 관(官)의 공간이라면, 하카타는 철저히 민(民)의 공간이다. 하카타 상인 3걸로 대표되는 호상들의 전통은 이 도시에 '권력보다 거래', '형식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성격을 남겼다.
이 도시의 매력은 무사의 도시가 만든 쾌적한 공원과 넓은 도로가 한 축이라면, 상인의 도시가 만든 촘촘한 골목과 혼성적인 풍경이 또 다른 축을 이루며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