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메가시티, 도시연합, 메가리전

이름은 달라도 본질은 하나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세훈


메가시티의 본질은 단순 연합이 아닙니다. '연결을 통한 진화'가 핵심입니다. 도시가 겪고 있는 인구감소의 맥락을 면밀히 살피지 않으면 우리는 성장 이외의 다른 형태의 지속가능성을 모두 놓치게 됩니다.



단일 도시의 경계를 넘어, 더 넓은 지역이 서로 연결하여 발전을 도모하는 현상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 예가 바로 '메가리전(mega-region)'입니다. 비슷한 개념으로 '메가시티', '도시연합' 등이 있습니다. 이것은 두세 개 이상의 도시가 손을 맞잡으며 생기는 초광역 생활권 네트워크를 의미합니다.


이 개념의 역사는 꽤 깊습니다. 1915년 스코틀랜드의 도시지리학자 패트릭 게데스가 그의 저서 ≪진화하는 도시들(Cities in Evolution)≫에서 처음 이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산업화된 도시들이 물리적으로 연결되면서 일종의 도시 연합을 만든다고 설명했죠. 그로부터 약 50년 후인 1961년, 프랑스의 지리학자 진 고트만은 이를 "메가로폴리스(megalopolis)"라고 불렀습니다. 고트만은 도시가 주변 지역과 연결되어 단일 경제 생활권으로 발전하는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는 약 40개의 메가리전이 존재합니다. 미국 동부의 보스턴-워싱턴-뉴욕을 포함하는 Bos-Wash 리전, 이탈리아 북부의 로마-밀라노-트리노-제노바 리전, 중국 양쯔강 하류 지역의 상하이-수저우-항저우 양쯔델타 리전 등이죠. 상하이와 인접 도시를 다녀보면 그 규모와 세련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과거를 잘 재현한 상하이 장원(张园)과 엄청난 규모의 난징시루 상권, 헤더윅이 디자인한 티엔화티엔수(천안천수), 세계적인 야경을 갖게된 번드와 루자쭈이 금융지구, 항저우의 남송어가와 청하방 옛거리, 수저우의 전통 정원과 운하마을 등이 그 예입니다. 엄청난 부의 축적을 바탕으로 도시 만들기 노력이 이루어진 결과죠.


우리나라에도 대표적인 메가리전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과 경기도를 포함하는 수도권입니다. 수도권의 경우, 순수 시가지 면적만 2,240㎢에 달합니다. 서울의 시가지 면적의 6.2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죠. 2024년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 수도권으로의 경제력 집중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수도권이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기여한 비율은 2001-14년 51.6% 수준에서 2015~22년 70.1%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특히 지식기반 제조업과 테크 산업의 집중으로 국가 경제의 수도권 의존도가 훨씬 심화된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진행한 비수도권 균형 발전의 성과와 국토 공간의 미래를 전면 검토할 시기가 무르익었습니다.


전 세계 메가리전의 영향력은 실로 막대합니다. 세계 총생산액의 58.9%, 글로벌 특허출원의 76.8%, 과학저널 총 인용수의 64.9%를 차지합니다. 이것이 15년 전 데이터임을 감안하면, 지금은 그 비중이 더 늘어났을 것입니다. 전 세계의 '슈퍼마인드'들은 메가리전 안의 특정 스팟에 모여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메가시티'라는 이름으로 도시구조 재편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2024년 12월 충청광역연합이 공식 출범했고, 더 작은 도시 단위의 통합시 출범 필요성도 지역 차원에서 논의 중입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메가시티의 본질은 단순 연합이 아닙니다. '연결을 통한 진화'가 핵심입니다. 각 지역이 가진 고유한 강점을 연결하여 새로운 경제와 사회 혁신 프로세스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기계적인 연결이나 조율되지 않은 연합은 규모만 커보이지 실체가 없습니다. 만나서 해결할 문제와 혁신의 잠재력이 뚜렷한 상태에서 이어져야 합니다.


도시들의 성공적인 메가시티화는 아래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1. 1 + 1 + 1 = X > 3 ➝ 과거 독립된 지역들이 서로 협력, (선의의) 경쟁, 시너지 창출의 관계로 바뀌면서 FADE 모델의 인재, 자본, 인프라의 상호작용이 증가


2. 행정 혁신과 규모 경제 실현으로 단위 인구당 공공서비스 비용은 감소, 하지만 시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질은 오히려 향상


3. 도로 등 하드인프라 중심의 공급이 아닌, 광역 차원의 A(매력), D(다양성), E(유연성) 개선을 통한 가치 창출


연합이든 통합시 출범이든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의미있는 변화를 기대할 만합니다. 메가시티로의 진화는 단순히 행정구역을 합치거나 교통망을 연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물리적으로 커지는 게 축소 시대에 유효한 성장법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광역철도망 연장이나 방사형 도로망 건설, 지방 신공항 조성 등 하드인프라를 통한 지역발전 도모는 과거 산업화 시대에 더 적합한 방식입니다. 사람과 산업이 도시로 모이는 엄청난 구심력이 있을 때 더 많은 인프라를 공급해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이죠.


저성장 기조의 확대와 인구 감소로 공급이 성장을 이끄는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과거보다 모든 면에서 작아지는 상황에 적응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양적 성장이 없이도 질적 성장과 격조를 이어갈 줄 알아야 합니다. 맥스웰 하트의 말처럼, 도시가 겪고 있는 인구감소의 맥락을 면밀히 살피지 않으면 우리는 성장 이외의 다른 형태의 지속가능성을 모두 놓치게 됩니다.


연결을 통해 누가 어떻게 진화할지, 무너짐을 방치하지 않으려면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 공진화의 방향성과 속도는 어떻게 조절할지 세심한 기획이 필요합니다. 인구감소와 메가시티의 시대에 이런 기획에 탁월한 사람이 도시라는 시장을 이끌게 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라스베가스와 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