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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권역 일자리의 변화 (1)

중심지의 분화와 선택적 다핵화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세훈



서울권역에서 지난 20년 동안 일자리 중심지가 어떻게 이동했는지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흐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중 두 가지에 먼저 집중해보도록 하죠.


첫째는 중심지의 '다핵화'입니다. 기존 강남·광화문·여의도·구로 등 소수의 도심부에 집중되었던 일자리가 상암·마곡·용산·성수·판교·광교·동탄·광명·시흥·용인 등 20곳 이상의 다양한 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를 중심지의 다핵화(polycentricity)라고 하는데, 여러 개의 자립적이고 일부 상호보완적인 중심지들이 하나의 도시권 안팎에 생겨나면서 도시 기능이 분산되거나 업종과 활동에 위계가 생기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러한 다핵화에는 큰 혜택이 있습니다. 만약 기존 도심에만 경제 활동이 집중됐다면, 일부 지역의 임대료 상승과 교통 혼잡, 주거 불안정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했을 것입니다. 그에 반해 여러 곳에 새로운 중심지가 생기면서 이런 부작용이 분산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서울의 우수한 입지와 인재 접근성을 필요로 했던 기업이나 기관이 자리를 잡고 성장할 수 있었죠.


연간 서울 전체의 사업체가 제공하는 일자리를 100개라고 가정하면, 매년 약 17개가 신규로 창출되고 13개가 소멸됩니다. 그래서 매년 순증가하는 일자리는 4개인 셈이죠. 이런 증가분은 새롭게 설립되었거나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한 기업이 인력을 채용하거나 기존 사업체가 고용을 확대하면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폐업이나 인력 감축 등 마이너스 요인을 제외한 일자리가 ‘4개’라는 뜻이죠. 그리고 매년 늘어나는 일자리 가운데 상당 부분이 새롭게 부상한 중심지로 옮겨 가면서 다핵화가 가속된 것입니다. 물론 순증가 일자리의 일부는 기존 도심부에 입지해 일자리 밀도를 더욱 높이기도 했습니다.


USDL 윤소영의 연구에 따르면, 중심지의 다핵화로 인해 서울의 역사도심(광화문~종로), 강남, 여의도 세 곳이 차지하는 일자리의 비중은 소폭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 도심은 절대적인 일자리 수의 증가를 견인하면서 견고한 우위를 유지했습니다. 기존 도심이 우위를 확보한 상태에서 하위 중심지로의 선택적 다핵화가 일어났고, 동시에 일부 기업 본사의 경우 상급지 이전도 함께 진행된 셈입니다.


두 번째 흐름은 일자리 변화의 '계획성'입니다. 서울권역에서 형성된 중심지 대부분은 정부나 지자체가 계획적으로 조성한 택지에 만들어졌습니다. 용산과 성수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죠. 상암, 마곡, 판교, 파주, 동탄 등 대부분의 대규모 중심지가 자연발생적 집적으로 형성된 게 아니라, 산업·주거·상업 등의 기능을 두루 갖추도록 미리 토지이용을 짜 놓은 뒤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예컨대 화성시는 지난 20여 년간 38만 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며 강남과 서초를 넘어서는 빠른 성장을 달성했습니다. 정부의 2기 신도시 정책에 따라 조성된 1,000만 평 규모의 동탄신도시가 핵심 동력이었죠. 마스터 플랜과 특화계획으로 도시의 핵심 기능을 복합적으로 구현한 사례입니다.


이렇게 계획적으로 조성된 일자리 거점이 서울권역 안에 집중되면서, 그 연쇄 효과 역시 수도권에 불균형적으로 집약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국가의 균형발전이라는 목표에서 더욱 멀어졌죠. 중심지의 다핵화는 기업의 공간 확보와 교통 혼잡 완화에 기여했지만, 서울권역에 초점을 둔 선택적 다핵화는 오히려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고 있는 곳은 세종시와 그 일대입니다. 많은 행정기관 이전과 행정·연구 인력의 정착, 새로운 주거 공급으로 세종은 이제 인구 30만의 도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앞으로는 ‘일자리 시대’입니다. 세종테크밸리 완성, 스마트시티 시범도시 준공, 박물관 단지와 대학 캠퍼스 활성화를 통해 국가의 새로운 일자리 성장지대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과 기관의 입지선정 자율성을 훨씬 더 확대해야 합니다. 30만이 넘는 큰 도시가 여전히 국가 기관의 계획성이나 지구 지정에만 의존해 성장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정책과 시장은 미묘한 상호 보완과 균형이 필요합니다.


비수도권에서도 일자리 특화를 준비하는 도시들이 있습니다. 천안의 미래 모빌리티, 광주의 미래 자동차, 고흥의 우주발사체, 안동의 바이오생명, 울진의 원자력수소 등 전국적으로 15곳 안팎의 대규모 첨단 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지방판 ‘판교 테크노밸리’라 불리는 도심융합특구나 기업혁신파크도 진행 중입니다. 한 예로 포항은 이차전지 기업인 에코프로가 영일만에 대규모 캠퍼스를 세우면서, 과거 철강의 도시에서 이차전지 도시로의 변신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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