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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권역 일자리의 변화 (2)

자리를 채우는 게릴라 기업들과 공간 경량화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세훈


저성장 시대 지식 산업의 새로운 흐름은 공간 경량화입니다.

앞의 글에서 서울권역 일자리 변화 중 중심지의 다핵화와 계획적 재배치라는 두 가지 특징을 다루었습니다. 이번에는 마지막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기존 중심지의 정체와 새로운 기업들의 등장 이슈를 생각해보죠.


제조업과 도소매업 중심이었던 일자리 중심지의 경우 정체나 단계적 성격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금천, 인천 동구·미추홀구, 안산 반월공단처럼 한때 제조업과 도소매업으로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던 지역들은 노동집약적 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정체를 겪어 왔습니다. 이들 지역경제를 견인하던 큰 기업들도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죠.


예를 들어 구로·금천 일대의 G밸리(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경우, 2000년대 이후 KG이니시스와 가비아 등 16개사가 G밸리를 떠나 판교로 이전했고, 우리기술, CJ E&M, 주연테크 등 13개사가 상암으로 이전했습니다. LG 계열사 연구개발 부문은 일부를 제외하면 마곡 사이언스파크로 이전했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가 공백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중소·중견기업, 일부 코스닥 상장사와 스타트업이 새롭게 유입되면서 총 사업체 수는 크게 늘었죠. 이들 기업은 게릴라처럼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생산·물류·제조 부문은 임대료가 낮은 지방에 두고, 서울 G밸리에서는 연구개발과 마케팅만 집중적으로 운영합니다.


이는 저성장 시대 지식 산업의 새로운 흐름인 ‘공간 경량화’를 보여 줍니다. 기업들은 예전처럼 덩치가 큰 자산을 직접 개발하거나 모든 부서와 인프라를 한 곳에 모으지 않습니다. 가치사슬을 유연하게 분산해 공간 자산을 가볍게 만드는 방식이죠. 이를 통해 입지 이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자산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얻습니다.


이 같은 흐름은 호텔업계에서도 두드러집니다. 과거 호텔업은 직접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올려, 모든 직원·객실·서비스 운영을 자체적으로 맡는 방식이 주류였습니다. 막대한 초기자본과 고정비용이 소요되는, 부담이 큰 사업 구조였죠. 하지만 최근에는 개발·소유·고용을 다른 기업이 담당하고, 기존 호텔 브랜드(flag)는 브랜드와 운영 노하우를 제공하며 수수료를 받는 형태로 변했습니다.


메리어트나 힐튼이 전 세계 호텔 중 직접 소유한 자산이 1%에 불과한 점이 좋은 예입니다. 나머지 99%의 호텔은 ‘○○호텔 바이 메리어트’처럼 건물과 운영인력은 현지 기업이 갖추고, 메리어트는 브랜드와 노하우만 제공해 수익을 내는 구조죠. 국내 호텔들도 이러한 에셋 라이트(assets light) 전략을 도입해, 과도한 고정자산 투자 없이 브랜드와 운영 역량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사업체질을 바꿔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에셋 라이트란, 기업이 자산(assets)의 직접 보유를 최소화하여 비용 부담을 줄이고, 이미 지역성이나 상권이 형성된 지역을 찾아 브랜드와 운영 역량에 집중하는 사업 모델을 뜻합니다.


결국 서울 권역의 일자리는 중심지의 다핵화, 대규모 계획적 개발, 그리고 기존 도심의 재편과 공간 경량화라는 세 흐름을 타고 유동적으로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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