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시간 (1)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변건우



조명이 꺼지고 스크린이 밝았다.


...


폐허가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안. 구부정한 남자의 뒷모습. 왜소한 철제 의자에 앉아 창밖을 응시한다. 40대, 혹은 50대로 보인다. 카메라가 점점 멀어져 남자가 앉아있는 거실을 비춘다. 가구는 넘어져 있고 바닥엔 발자국이 찍혀있다. 멀어지던 카메라는 한동안 같은 앵글을 유지한다.


장면 전환. 술자리다. 시끌벅적한 술집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끈적거리는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대여섯 명이 양쪽에 앉았다. 카메라의 대각선 맞은편에 남자가 앉아있다. 남자는 와하하 하고 웃더니 안주를 집어 먹고, 소주를 한 잔 들이켜더니 일행 중 한 사람에게 말을 건다.


- 하하 감독님. 제가 초면이지만, 제가 감독님 작품 정말 좋아하는 거 아십니까? 예. 정말 좋아합니다. 예. 좋아하고 말고요. 이번에 새로운 거 준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하하

카메라가 감독을 향한다. 남자의 반대쪽 대각선에 앉은, 머리가 하얗게 센 다른 남자가 머쓱해한다. 감독은 입맛을 다시더니 무게를 잡으며 말을 시작한다.


- 그래…. 그게 말이지…. 베트남 민간 설화를…. 재해석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아이고 됐고. 사실 내가 뭘 찍고 싶은지는 내가 제일 궁금하다! 그럼 자네는, 나이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인제 와서 연기를 다시 하려는 이유는 뭔가?


- 하하하. 감독님! 사람이 좋아하는 거 하는 데에 이유가 필요합니까? 저야 뭐, 연극 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애는 생겼지, 당장 분유 맥일 돈도 없었습니다. 예. 아시잖습니까. 그래서 대리도 뛰고 배달도 시작했습니다.


예. 따악 이번 달만, 다음 달까지만, 올해만 하다가 그게 벌써 10년 됐습니다. 예. 나는 연기자다, 연기하는 사람이다, 해도 이게 10년이나 그 일에 손 놓고 있으니까 어느 순간 저도 헷갈리더랍니다. 내가 연기잔가? 난 그냥 배달부 아닌가? 이제 안 되겠더라고요. 예. 저는 연기하렵니다. 연기로 성공하렵니다.


일행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저마다 푸념과 신세 한탄을 늘어놓더니 어느새 다 같이 왁자지껄 웃는다. 카메라를 든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형의 웃음소리다. 삼 년만인가, 형의 목소리를 듣는 게.


며칠 전 형의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형의 영화가 개봉했으니 보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몇 년간 연락이 없던 사람치고 참 성의 없이도 근황을 전한다고 생각했다. 의외는 아니었다. 형은 원래 의외의 선택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묘하게 성의도 없었다.


여섯 살의 터울은 꽤나 큰 나이 차이여서, 어릴 땐 줄곧 형이 어른 같게만 느껴졌다. 형은 모범생이었다. 성적이 애매한 나는 늘 형의 그림자 뒤에 있었다. 같이 학교에 다닌 적은 없지만, 형이 졸업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에 따라 입학했다. 교복을 입은 6년 동안 늘 형의 교복을 물려받았다. 형이 졸업하고도 아직 삼 년이라는 시간이 남았건만 교복은 고이 개어져 장롱 속에서 나를 기다렸다. 늘 자신이 쓰던 헌 물건만 물려주는 게 미안했는지 형은 나를 유독 챙겼다. 학원에서 먹은 피자 같은 것들을 봉지에 싸 와 나에게 먹였다. 차갑게 식어버린 피자가 먹기 싫었지만, 딱히 거절하지도 않았다. 형이 주는 거니까.


그러던 어느 날 형이 대뜸 영화과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당연히 부모님은 반대했다. 형은 형다운 방식으로 부모님께 저항했다. 집 안의 모든 참고서와 문제집을 모아 아파트 단지 내에 폐지를 모으는 마대 자루에 처박았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수험생으로서는 꽤 과감한 행동이었다. 그리고는 며칠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형이 기어이 허락을 받은 밤, 폐지가 수거되기 전에 마대 자루를 뒤져 형이 내다 버린 책들을 끄집어내야 했다. 추운 날씨에 맨손으로 종이 더미를 헤집어 손 이곳저곳을 베였다.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피가 배어났다. 얼마 뒤, 형은 서울로 떠났다. 나는 형이 남긴 교복과 참고서, 그리고 원래 형이 짊어졌을 모든 책임과 기대를 물려받았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형제가 살가우면 얼마나 살갑겠냐마는, 형은 유독 연락이 뜸했다.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본인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의 링크를 보내주었다. 예술이나 영화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었지만, 그 지루한 영화들을 보내주는 대로 꼬박꼬박 챙겨봤다. 가끔가다 형이 고향에 내려오면 영화에 대한 짧은 대화라도 나눌 수 있었다. 형의 피자를 거절하기 어려웠던 것만큼 부모님의 기대도 거절할 수 없었다. 그저 그런 성적의 나는 우리 지역의 그저 그런 공대에 입학했다.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울었다.


영화의 개봉 소식을 전한 형의 지인에게 형의 근황을 묻지는 않았다. 간단히 고맙다는 인사와 주말에 서울로 가겠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적당히 하자 없는 가족처럼 보이고 싶기도 했지만, 근황을 먼저 묻지 않는 것에 쓸데없는 경쟁심을 느끼기도 했다. 삼사 년 전 즈음부터 형과는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일찌감치 형을 후레자식 내지는 배신자로 생각하던 부모님은 그깟 놈 예술이나 하면서 알아서 잘 먹고 잘살라며 관심을 아예 꺼버리랬다. 말은 그렇게 해도 형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워낙 흉흉하고 팍팍한 세상이라 형이 어디선가 확 죽어버리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동시에 형은 늘 예상 밖이었기에, 분명 잘 먹고 잘살고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알 길은 없었다.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객실은 텅 비어 있었다. 차창 너머로 앙상히 뼈만 남은 나무와 쓰러져가는 아파트가 휙휙 지나갔다. 서울역에 내려 이 도시 어딘가의 독립 영화관까지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는 자신의 차갑고 허름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도로를 밟아나갔다.


...


부서진 도로를 따라 남자가 걷고 있다. 겨울비와 흙이 뒤섞여 거리가 온통 질척인다. 이름 모를 풀과 나무의 뿌리가 길과 건물을 뒤덮어 경계를 알아보기 힘들다. 남자는 비스듬히 거리를 배회하며 담배를 꺼내 태운다. 도시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과거에는 호수였던, 이제는 바닥까지 말라버린 구덩이 앞 벤치로 다가간다. 벤치 위 물기를 훔치고 그 위에 앉는다.


호수였던 구덩이에 걸쳐, 더 처참한 구덩이가 그 너머에 있다. 푸른 빛 유선형의 고층빌딩이 비스듬히 처박혀있다. 한때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다던 빌딩이 힘없이 주저앉아 반쯤 누워있다. 그 뒤에 함께 쓰러진 육중한 금빛 빌딩이 비 갠 뒤의 햇살을 반사한다. 기하학적으로 깎아지른 형상이 멸망한 황금 제국의 사원을 떠오르게 한다. 벤치에 앉아있는 남자의 뒷모습. 초현실적인 광경을 바라보며 남자는 한동안 담배를 피운다.


남자는 다시 걷는다. 텅 빈 눈. 황량한 대로를 가로지른다. 지나다니는 자동차는 없다. 바닥에 널브러진 가로등을 넘는다. 반대편 호수 쪽으로 왔다. 이쪽은 그나마 물이 조금 남아있다. 호수 중간에 버려진 놀이동산이 있다. 뾰족한 성의 지붕과 첨탑. 형태가 나름 온전하다. 마법과 환상을 약속하던 곳은 바로 옆의 폐허와 대비되어 그 기이함이 배로 느껴진다. 그것이 폐허 가운데 고고하게 서 있는 마술적인 모습은 불타는 마을을 빠져나오는 마녀의 실루엣처럼 음침하기까지 하다.


남자는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에 도착한다. 휘황찬란한 아파트. 꼭대기를 올려다보는 남자. 남자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도 꼭대기를 비춘다. 마천루가 구덩이로 빠져버린 지금 이곳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이 아파트다. 재건축을 홍보하며 뿌려대던 조감도와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웅장하고 화려하다. 구덩이에 빠지는 사고는 피했건만 더는 아무도 이곳에 살지 않는다. 분양을 끝내기도 전에 주민들은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세련된 외관에 어울리지 않는 현수막만 바람에 나부낀다.


남자는 깨진 유리문을 통해 아파트 로비로 들어간다. 거대하고 호사스러운 로비. 바닥에 널브러진 샹들리에가 유리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을 산란한다. 프랑스 유명 화가의 작품이 찢어진 채로 벽에 간신히 매달려있다. 남자는 샹들리에의 수정 조각을 밟으며 계단으로 향한다. 남자는 말 없이 비상계단을 오른다. 터벅터벅 발소리와 남자의 가쁜 숨소리만이 적막을 채운다. 남자의 얼굴 줌인.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한동안 남자는 계단을 올라간다.


중간 정도 층에 도달했을 때, 남자는 비상계단을 빠져나온다. 미로처럼 늘어선 호실과 복도. 목적 없이 복도를 배회한다. 그러다 아주 살짝 열린 현관문을 발견한다. 문을 밀어본다. 금속의 마찰음을 내며 문이 서서히 열린다. 신발을 신은 채로 집 안으로 들어선다. 기다란 현관을 지나 중문을 열고 거실로 향한다.


거실 한가운데 누군가 누워있다. 다 해진 겨울 파카에 온몸을 파묻은 채로. 어떻게 봐도 이 집의 주인은 아니다. 옆엔 라면 봉지와 음식 부스러기, 술병이 굴러다닌다. 종이상자 따위를 모아 불을 피운 흔적도 보인다. 얼굴이 시커멓고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두 사내가 서로를 바라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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