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도시관측 챌린지 100일을 마치며
성수동에 다녀온 날, 돌아오는 길에 남서울미술관에 들렀습니다. 건축에 관한 영상들이 전시 중이었죠. 그중 제주 곶자왈에서 버섯을 미속으로 찍은 화면에, 여러 건축가들의 목소리를 교차 편집한 ‘버섯의 건축’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습니다. 서로 다른 음색과 억양의 목소리들은 건축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얘기했는데, 때로는 이어지고 때로는 교차하며 점차 풍성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빈백에 기대앉아 영상을 보면서 도시관측 챌린지가 떠올랐습니다. 각자 쓴 텍스트들이 공명하는 경험이, 목소리들을 콜라주 한 영상의 구성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석 달 넘게 참여자분들의 글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짓기도, 물음표를 떠올리기도 했고, 가라앉은 기억이 툭 건드려져 그 생각을 곱씹기도 했습니다. 어느 단어는 시간을 두고 다른 맥락에서 거듭 등장했는데 비동시적인 대화로 이어져도, 반대로 엇갈려도 그 나름으로 흥미로웠습니다. 관점이 달라서 결을 더하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다양한 이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모습과도 닮은 듯합니다. 시민적 무관심조차 존중과 배려가 되는 곳이 도시니까요.
제 글도 애써 읽은 분들과 그런 순간을 함께 했기를 바라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너그러운 이해를 구합니다. 기사를 쓰든 아니든, 기자들은 관심사를 머릿속에 정리해 두는 습성이 있습니다. 계엄을 통과하며 떠오른 상념을 붙잡아 적었는데,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 보니 읽기에 그리 편한 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챌린지 참여 경험이 제겐 여의도에서 보낸 시간들을 돌아보고, 오래전 책장에 꽂아뒀던 책을 펴보고, 제 글쓰기를 낯설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됐습니다. 입 안의 사탕을 일부러 천천히 굴리며 녹이듯 그렇게 생각하는 시간이 저는 즐거웠네요.
숏폼의 강의처럼 친절한 설명을 아끼지 않으신 교수님, 감각적으로 글을 소개하고 즐거운 모임을 준비해 주신 운영진께 감사드립니다. 어디서든 계속될 도시 관측이 따로 또 같이,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 구경하
유탕사려(宥糖思慮)
宥(관대할 유), 糖(사탕 당), 思(생각 사), 慮(생각 려)
입 속 사탕처럼 생각을 부드럽게 굴리며 음미하니
완사유미(緩思有味)
緩(느릴 완), 思(생각 사), 有(있을 유), 味(맛 미)
천천히 물들어가는 사유의 깊은 맛이 자리한다.
- 이종선
버섯의 건축처럼 각자의 목소리가 모여 풍성한 이야기가 되었다는 표현이 아름답네요. 지난 100일 동안 참여자분들의 글을 읽으며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어떤 날은 누군가의 문장 하나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고, 또 어떤 날은 서로 다른 시선들이 겹쳐지며 도시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도 했죠.
무관심조차 때론 존중과 배려가 된다라는 말씀. 우리가 함께 쓴 100일의 기록도 그런 도시의 품성을 닮아있었던 것 같아요.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하지만 같이 도시를 바라보며 만들어낸 이 느슨하면서도 찰진 연대가 참 소중했습니다.
입 안의 사탕을 천천히 녹이듯 생각을 음미하는 시간이 즐거웠다는 표현은 정말 공감합니다. 저에게 챌린지는 일상을 다시 보게 만든 돋보기였고, 무심코 지나친 순간을 붙잡아 두는 그물이었습니다. 비동시적 대화였지만 분명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고, 연결이 만든 울림은 꽤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 김세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