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의무를 다한 시민들을 존경할 줄 아는 지도자를 기다린다
Written by 문성남
소속 학교 누리집의 공지사항을 통해 안내된 ‘병역명문가’ 지정사업 공고를 보고, 체류 중인 미국에서 얼마 전 만났던 한 재향군인 어르신이 떠올랐다. 지난 월요일, 마트에서 우연히 한 노인을 알아볼 수 있었던 덕분이다. 어르신께서 ‘Korea Veteran’이라 적힌 모자를 쓰고 장을 보신 뒤 나오는 모습을 보고, 한국에서 군 복무를 하신 분임을 알 수 있었다.
‘Korea Veteran’은 대개 한국전쟁 참전 용사를 뜻하는 표현이다. 모자의 문구를 통해 어르신의 이력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서로 눈이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른손이 경례 자세로 올라갔다. 동시에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6.25 전쟁에 참전하신 조부모님 곁에서 자라온 경험 때문이었을까. 전쟁과 함께 청춘을 보낸 어르신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순간, 어르신은 경례를 받아주시며, 자신을 알아봐 준 데 대해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답해주셨다. 그 짧은 한마디가 가슴을 따뜻하게 울렸다.
서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기에, 악수를 끝으로 각자의 길로 향했다. 겨우 20초 남짓한 만남이었다. 다시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땐, 이미 어르신은 주변에 계시지 않았다.
타국에 머물다 보면 어느새 애국심이 자라난다고들 한다. 돌아오는 길, 그 어르신의 모자는 한국에서 월남전 참전 혹은 재향군인으로 살아가시는 분들을 떠올리게 했다.
남색 모자와 조끼를 입고 다니시던 나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보훈처에서는 이분들을 위한 외투도 제작했지만, 나의 할아버지는 임종 무렵 도착한 옷을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지금 살아계신 참전 용사 어르신들은 과연 무탈하실까. 가끔 대중매체는 독거노인이 된 재향군인들의 삶을 조명하곤 한다.
마트에서 헤어진 그 어르신은 혼자 장을 보고 계셨다. 한국전에 참전하셨던 분이라면 노인 중에서도 고령층이실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요양원에 계시지 않은 것을 보면, 그만큼 일상을 스스로 잘 유지하고 계신다는 뜻일 것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혼자 장을 보는 그 모습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타국에서의 군 생활이 어땠을지, 전쟁 중이던 한국에서 어떤 기억을 품고 계실지는 알 수 없지만, ‘젊은 날 사서 고생’이라는 말로는 그분들의 경험을 위로하거나 대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지킬 수 없었던 지구 반대편의 나라를 위해 나서주신 것도 감사했지만, 많고 많은 한국어 중에서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계셨던 어르신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더욱 컸다.
5월의 마지막 주, 돌아오는 월요일은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다. 한국의 6.25 전쟁 추모일이나 현충일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날이다. 지역 신문에는 마을마다 열리는 추모 행사 일정이 소개되어 있다. 곧 다가올 6월의 한국에는 현충일과 6.25 전쟁일이 있다. 전선과 국경에서 청춘을 바친 이들 덕분에 유지되는 일상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다가오는 6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참전용사, 현역 군인, 예비역, 사회복무요원 등 각자의 방식으로 시민의 의무를 다한 이들을 진심으로 존경할 줄 아는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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