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한 끼, 노인들의 식사

작고 소박하지만 단단한 그들의 여정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이종선



평양을 거꾸로 읽으면 양평이 되는 우연처럼, 노년의 삶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새로운 지점을 찾아간다. 양평은 어디선가 모여든 노인들의 식사 성지다. 가벼운 주머니로 생존하고자 하는 서울 근교의 노년들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작고 소박하지만 단단한 그들의 여정은 오늘도 계속된다.



서울에서 동북쪽으로 1시간. 북한강 상류의 작은 도시 양평은 ‘노인들의 식사 성지’로 불린다. 평양을 거꾸로 읽으면 양평이 되는 우연처럼, 노년의 삶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새로운 지점을 찾아간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평생 가족의 밥상을 차려온 아주머니 같은 할머니들이다. 맞춰 입은듯한. 붉은색 점퍼는 젊은 날의 교복 같다. 같은 미용실에서 한날한시에 한 것 같은 비슷한 머리 스타일이 마치 군대 훈련병시절 마주하는 풍경 같다. 여기에 오신 분들은 대부분 양평역과 용문역을 거점으로, 무료 셔틀버스 타고 오신 분들이다.


서울에서는 해장국 한 그릇도 쉽지 않은 1만 원으로 이곳에서는 하루 여행이 완성된다. 무제한 뷔페 식사, 식당에서 제공하는 무료버스를 이용한 천년고찰 용문사 관광, 용문 5일장 나들이까지. 이 모든 여정은 생존하고자 하는 서울 근교의 소도시와 가벼운 주머니의 노년이 상호 필요에 의해 태동한 우리 시대 풍경이다.


양평 해장국_이종선.jpeg


한국 노년층의 현실은 냉혹하다. 자녀 뒷바라지, 은퇴, 그리고 사회적 단절이라는 삼중고가 기다린다. 공무원, 군인, 교육자를 제외한 대부분은 연금 없이 노동 소득 단절의 충격을 고스란히 감당한다.


남성 노인들은 고립 속으로, 여성 노인들은 활동 속으로. 경제 감각과 실행력이 뛰어난 여성 노인들은 수도권 전철과 지역 경제를 오가며 독자적인 ‘생활 반경’을 구축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서로 손해 볼 것보다 남는 것, 아니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노년경제활동의 지혜로운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 중 하나는 노인 무임승차 제도이다.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는 노년층을 위한 국가적 배려다. 그러나 소득 구분 없는 일괄 제공은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 염려되는 부분도 있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향후 소득 기반의 부분 차등 적용은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노인들의 외출과 사회 참여는 계속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고독사와 우울증, 그리고 의료비 폭증이라는 국가적 재앙을 예방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2025년 대한민국. 수도권 전철이라는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 노년층은 여전히 버티고, 살아내고, 나아가고 있다. 작고 소박하지만 단단한 그들의 여정은 오늘도 양평으로 이어진다.


노년의 삶도 삶이고 청춘의 삶도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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