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변건우
종이상자와 이면지와 우유 팩을 뒤지던 그날 밤은 추웠다. 그땐 아직 ‘수능 한파’라는 말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형이 버린 책들이 아직 남아있긴 할지, 그 많은 종이 더미에서 책을 찾아내는 게 가능은 할는지. 키만 한 마대 자루에 상체를 집어넣어 종이 더미를 양팔 가득 끌어안았다. 하마터면 그 속으로 빠져버릴 뻔해 다리를 바둥거렸다.
땅바닥에 종이를 내려놓고 그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책을 찾기 위해 바닥에 쌓인 종이를 뒤졌다. 분리수거장을 오가는 주민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순찰 중이던 경비 아저씨가 무슨 일 있냐며 말을 걸었다. 심장이 세게 뛰었지만 아무 일도 아니라며 둘러댔다. 맨손으로 종이를 뒤져 손이 베였다. 아픈지도 모른 채 몇 시간이고 쓰레기를 뒤졌다. 쓰레기장에 있던 그 시간 동안 형도, 엄마도, 아빠도, 아무도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형의 이름이 적힌 참고서 몇 권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은 이미 고요히 불이 꺼져 있었다. 부모님은 잠자리에 들었고, 형의 방에서만 문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형아, 책 찾아왔다. 형이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다는 표정인지, 참 너답다는 표정인지 알 수 없었다. 밖에 많이 춥제? 미안하다. 형이 무언가를 버리면, 나는 그걸 찾거나 가져야 했다. 교복도 그랬고, 피자도 그랬고, 참고서도 그랬고, 장남으로서의 책임도 그랬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땐가,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후 하굣길에 형이 대뜸 찾아왔다. 예고 없이 고향 동네에 내려온 형은 며칠 뒤에 서울로 금방 돌아갈 예정이라 했다. 버스도 끊긴 여름밤의 하굣길을 형과 걸었다. 하굣길 공터에 아파트 단지가 새로 들어선다며 가림막이 처져 있어 길이 어수선했다. 풀벌레가 우는 낮은 산과, 자갈이 굴러다니는 공사장을 양쪽에 두고 포장이 덜 된 도로를 내려갔다.
학교생활이나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번에 보내준 영화는 어땠는지 같은 얘기를 나누다가, 야식을 먹고 가지 않겠냐며 형이 물었다. 아저씨 몇 명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백반집에 들어섰다. 아저씨들과 식당 아주머니는 아파트니 집값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형은 제육볶음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정현아. 니도 서울 가서 살고 싶나.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나. 성적이 돼야지.
맞나.
정적이 흘렀다.
있다 아이가. 서울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이게 처음에는 어딜 가든 사람이 바글바글 한 게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데, 그래서 카나, 사람 한 명 없어져도 아무도 모른디. 신경도 안 쓰드라. 진짜 아무도 모르더라.
형은 ‘아무도’의 ‘아-’를 길게 늘어뜨리며 말했다. 형이 소주 한 잔을 가득 따르고 들이켰다.
정현아. 니도 공부 열심히 해가 서울 올라온나. 알았제?
형은 소주 한 병을 더 마셨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현관 앞에서 형은 담배 한 대 피우고 가겠다며, 나를 먼저 올려 보냈다. 그날 새벽, 더위에 깼을 때 형은 방에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남긴 연락도 없었다. 서울 올라갈 차도 없을 시간에, 밤새 즐길 유흥가도 없는 동네에서 형이 사라졌다. 물론 형은 성인이긴 했지만, 그날따라 식당에서 했던 말이 생각나 걱정이 들었다. 부모님을 깨울까 했지만, 깨우지 않았다.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학교에서부터 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며 형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갔다. 백반집은 이미 문을 닫았고, 근처 영업 중인 술집이나 노래방을 뒤져봐도 형은 없었다. 학교를 지나 동네에서 가장 번화한 곳까지 내려갔다. 나름의 번화가는 지나다니는 자동차 하나 없었다. 새벽은 쌀쌀했고 걸음 소리만 쓸데없이 크게 울렸다.
내 또래 즈음 되는 청소년들이 저들끼리 시끌벅적 소리를 지르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선가 개가 짖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외국인 두 명을 지나쳤다.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불이 켜진 파출소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실례합니다. 형이 사라졌어요. 성인이 몇 시간 사라진 거로는 실종신고가 안 된단다.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다시 학교가 있는 고개로 올라갔다. 몇 시간 후면 씻고 학교 가야 하는데. 어떡하지, 엄마한테 말할까. 교문이 잠긴 학교를 지나쳐 언덕길을 내려갔다. 공사장 가림막이 보일 무렵, 설마 하는 생각에 그쪽으로 달려갔다. 가림막을 따라 뛰며 열려있는 출입구를 살폈다. 공사장의 반대편까지 왔을 때 반쯤 열린 작은 출입구를 찾았다. 갑작스러운 뜀박질에 심장이 쿵쾅댔다. 가쁜 숨을 내쉬고 문을 열자 그 앞에 형이 쓰러져 있었다. 형은 지독한 술 냄새를 풍기며 곯아떨어져 있었다. 흙투성이가 된 형을 들쳐 엎고 집으로 향했다.
...
어두운 밤, 아파트 거실에서 찢어진 종이상자가 쌓인 채 불에 타고 있다. 남자와 노인이 불꽃을 앞에 두고 나란히 앉아있다. 반쯤 열린 창으로 매캐한 연기가 빠져나간다. 창밖은 가로등 불빛 하나 없이 컴컴하다. 노인이 상자 조각을 불 속으로 던지며 마른입을 연다.
- 자네는 어떤 사람이었나.
정적이 흐른다. 남자는 공허한 눈으로 불꽃을 바라본다.
- 꿈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돈벌이도 안 되는 일을 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빠 구실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등신이었죠. 배우로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아들도 잘 키우고 싶었고요.
둘 중 하나에만 전념해도 시원찮을 판에 둘 다 이뤄내겠다는 거, 말도 안 된다는 거, 저도 잘 알았습니다.
예. 알다마다요. 여전히 와이프 옷 한 벌 못 사주는 건 똑같은데, 아이러니하게 점점 무대에서는 저를 안 찾더라고요.
그래도 말입니다. 저는 바로 그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그런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뤄본 적이 없는 사람은 뭘 보고 살아야 합니까? 두고두고 추억할 만한 자랑거리 하나 없는 인생은 뭐에 힘을 얻어야 하냐고요. 저는 이룬 것도, 이룰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왕이면 말도 안 되는 목표를 잡고, 그거에 의해서 살아보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쓰레기 같은 놈이죠. 예.
이번에는 노인이 침묵을 지켰다. 남자가 말을 이었다.
- 어르신, 이를테면 말입니다. 롯데타워를 내려다보는 상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그 어마어마한 빌딩을 발아래 두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산다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거. 근데 서울에서 롯데타워보다 높은 빌딩은 없잖습니까. 어디를 어떻게 기어올라도 롯데타워를 내려다볼 수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게 아름다운 겁니다. 이룰 수 없으니까.
내가 지금은 비록 빌라 1, 2층을 전전하고, 오토바이로 벌레처럼 도로 바닥을 기어 다녀도 언젠가는 저 롯데타워도 내려다보는 곳에 서겠다. 그 정도 되는 목표가 아니면 저 같은 인간은 말입니다, 올라갈 힘도 낼 수가 없습니다. 예. 밑에서 받쳐주는 게 없단 말입니다.
장면 전환. 헬멧을 쓴 남자의 옆모습. 한여름에 뒤집어쓴 헬멧 안으로 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계단을 빠르게 올라간다. 현관 앞에 포장된 음식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는다. 곧바로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은…. 어쩔 수 없죠, 뭐…. 계단 타고 가야지. 덥다고 힘들다고 천천히 움직이면 몸이 더 무거워져. 여름엔 다들 덥다고 밤에만 일하려고 하거든요. 이럴 때 오히려 돈을 확 땡겨야 돼요. 힘들긴 한데, 그래도 해야죠 뭐. 하하.
남자는 숨을 고르며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빌라 앞에 세워진 오토바이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남자의 뒷모습. 건물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2층에 있는 치킨집으로 올라간다. 치킨 박스를 손에 든 남자가 계단으로 내려온다.
- 이게 더울 때 덥고 추울 때 춥긴 한데, 그래서 훨씬 더 살아있는 것 같아요. 배달해서 아들내미 학원 보내고, 가끔 가족끼리 외식하고…. 그냥 한 명의 사람으로서 더 기능한다는 느낌이 들긴 하죠…. 이 세상에서….
그래도 연기는 해야죠. 제가 기능만 하려고 태어난 건 아니니까. 하하.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치킨을 실은 오토바이를 타고 남자는 출발한다. 하늘에서 툭툭 비가 떨어진다. 남자는 계단을 또 오른다.
남자의 뒷모습 페이드아웃. 정적이 흐른다.
페이드인. 조명이 밝지 않은 집 안. 주방과 거실의 경계에 어설프게 놓인 식탁 앞에 남자의 아내가 앉아있다. 아내의 뒷모습. 어깨가 들썩인다. 흐느껴 우는 아내. 한 손에 핸드폰을 쥐고 있다. 깨진 TV는 뉴스를 실시간으로 송출한다. 남자는 뉴스 화면에서 누군가를 찾는 듯이 뚫어져라 TV를 쳐다본다. 창밖으로 폭우가 쏟아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