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변건우
형과 마지막 통화를 한 날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통화를 하기 몇 주 전, 계속되는 폭우는 그칠 줄을 몰랐다. 강남이 물에 완전히 잠겼다던데, 형은 여전히 연락 한 통이 없었다. 안부를 확인하는 것을 포기하기 직전에 형은 한 마디의 문자를 보냈다.
난 괜찮다. 걱정 마라.
딱 한 마디.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내가 스무 살이었던 당시에 부모님은 이미 노인에 가까웠고, 나는 부모님 대신 가게로 가, 안까지 들이친 빗물을 퍼냈다. 전국적으로 휴교령이 내려졌다. 빗물을 퍼내는 것도 며칠 안 가 포기했다. 집에서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낮과 밤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아르바이트하던 편의점도 문을 열 수 없었다. 집 안의 모든 경제 활동이 멈췄다. 나와 부모님, 우리 셋은 습하고 낡은 집에서 서서히 말라갔다.
형의 방에 있는 책 한 권을 집었다. 앙드레 바쟁 <영화란 무엇인가?>. 안 그래도 두꺼운 책이 습기를 머금어 더 무거워졌다. 형의 손때가 묻은 책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형의 침대에 모로 누워 연필로 그어진 선을 눈으로 좇았다.
방 밖에서 엄마가 지르는 고함에 눈을 떴다. 터덜터덜 나간 거실은 불이 꺼져 있었고 TV엔 뉴스가 틀어져 있었다. 전화를 걸고 있는 엄마. 그 옆에 심각한 표정의 아빠. 노쇠한 두 사람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믿기 어려운 소식입니다. 서울 잠실에 진도 5의 지진과 함께 거대한 싱크홀이 발생했습니다. 잠실역이 완전히 함몰되었고, 롯데월드타워가 붕괴하였습니다.”
화면의 절반이 시뻘건 자막으로 가려졌다. ‘잠실 초거대 싱크홀 발생. 롯데월드타워 붕괴’ 전화도 더는 걸리지 않았다. 엄마가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아빠도 휘청이며 주저앉았다.
전화도 인터넷도 되다 안 되다를 반복했다. 서울로 가는 모든 교통편이 마비되었다. 형의 생사를 알 길이 없었다. 허벅지까지 잠기는 폭우를 뚫고 파출소에 다다랐지만 실종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 수만 명이 죽거나 다쳤고 수천 명이 실종됐다. 통계에 실종자를 한 명 늘리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나라 전체가 거대한 우울증에 빠졌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구조 작업은 시작도 못 했다. 엄마가 목을 매려는 걸 두 번이나 말렸다. 썩은 쌀과 라면으로 연명하기를 몇 주째,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현아, 괜찮냐.
형아 괜찮나? 형아 니 살아있나? 우예 된 긴데. 와 전화를 안 받는데.
전화받을 상황이 아이다. 정현아, 부모님 무사하시제. 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알았나. 내 연락 안 돼도 찾지 마라. 어차피 전화도 안 될끼다. 때 되면 내가 내려갈게. 부모님 잘 챙기고 있어래이.
그러곤 전화를 끊었다.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 형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은 엄마는 다행이라고 중얼거리며 눈물을 훔쳤다.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도로에 물이 빠지는데도 며칠이 걸렸다. 몇 주 만에 찾아간 가게는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뉴스가 서울의 소식만 보도해서 뒤늦게 알았지만, 인근 도시에서도 건물 몇 채가 무너졌다. 일상이 회복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한동안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안부를 확인했다. 주변에서도 몇 명이 죽거나 없어졌다. 주로 서울로 올라간 사람들이었다.
싱크홀 주변의 추가 붕괴 위험 때문에 구조 작업은 시작도 못 한 채 몇 개월을 날렸다. 정부는 사고 지점 반경 3km 이내의 모든 거주자를 대피시켰다. 사람들은 전국의 대피소로 흩어졌다. 부모님을 모시고 인근의 체육관으로 형을 찾으러 갔다. 체육관 바깥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부둥켜안고 우는 사람들, 누군가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는 사람들, 바닥에 앉아 통곡하는 사람들.
저녁이 되도록 형이 보이지 않자 두 분을 집으로 보내고 혼자 남아 체육관을 돌아다녔다.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 같이 수척했다. 물 썩은 내가 진동하는 체육관. 어린아이 우는 소리에 늦은 밤까지 사람들은 잠을 설쳤다. 형을 찾는 일을 포기하고 집을 향해 걸었다. 애초에 형이 이곳에 없으리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몇 해 전 여름, 형과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다. 공사장은 그대로 폐허가 되었다. 공사장을 반 바퀴 돌아 형이 누워있던 출입구를 확인했다. 역시 형은 없었다.
...
구덩이 안에 남자가 누워있다. 하늘을 비추는 카메라. 구덩이의 경계가 둥그렇게 하늘을 감싼다. 옆으로 누워있는 롯데타워. 까마귀가 둥근 하늘을 가로지른다. 투둑투둑 비가 떨어진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 흙더미 곳곳에 철근과 배관이 뒤섞여있다.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틈으로 누군가의 손이, 뼈만 남은 손이 튀어나와 있다.
남자는 뼈를 어루만진다. 덜덜 떨리는 남자의 손. 백골의 손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댄다. 남자의 얼굴, 손 위로 빗물이 흐른다. 흔들리는 남자의 어깨를 멀리서 찍는 카메라.
페이드아웃. 긴 정적이 흐른다.
페이드인. 거대한 구멍을 내려다본다. 건물 잔해와 토사. 비스듬히 꽂혀 있는 롯데타워. 깨진 아스팔트 사이로 잡초가 무성하다.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도시는 고요하다. 느리게 줌아웃 된다. 구덩이와 빌딩이 점점 작아진다. 카메라는 얼룩진 유리창을 통과한다. 폐허가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꼭대기 층. 첫 장면에 나왔던 곳이다. 이제는 남자의 옆모습을 가까이서 비춘다. 주름이 깊게 패어 있다. 말없이 창밖을 내려다보는 남자. 남자가 마른 입을 천천히 뗀다. 고개를 돌린 남자의 눈이 카메라 너머를 향한다.
- 정수야. 여기서 그만 이러고 돌아가라. 너도 알잖냐. 여긴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니야.
- ...
- 이제 아무도 여길 찾아오지 않아. 우리가 이런 거 찍는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정수야. 우린 버려진 거야. 버려진 거라고.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또 어떻게 버려졌는지, 아무도 관심도 없다고. 우린 그냥 그런 것들이야. 내가 죽어라 오르던 계단들, 건물들 다 무너졌어. 나만 남았어. 나만 여기 그대로 남아있다고.
저기 저 빌딩에서 일하던 사람들 다 저기 그대로 묻혀있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어차피 저런 건물이야, 여기 말고 다른 데서 또 짓겠지. 너는 거기 가서 또 살아. 거기서 이거 찍으라고. 정수야. 어? 살아.
남자가 카메라를 격하게 흔들었다. 화면이 툭 꺼졌다.
다시 돌아온 화면. 유리창이 깨져있다. 바닥엔 유리 조각과 찌그러진 철제 의자가 나뒹군다. 거실 끝에서 유리창에 난 구멍을 찍던 카메라는 구멍 밖을 천천히 줌인한다. 구멍을 통과하고 보이는 도시의 구멍. 그 구멍을 향해 계속 줌인한다. 카메라가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구멍의 경계를 지나, 건물 잔해를 관통해 카메라는 백골 시신의 손에 다다른다. 그리고 화면이 꺼진다.
불이 켜진 영화관 안에 관객이라곤 나뿐이었다. 한동안 자리에 앉아있었다. 몸이 무거웠다. 기다리다 못한 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서두르는 척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해가 졌다. 스산한 거리에 차가운 공기가 낮게 깔려있다. 지도 어플을 확인하고 잠실 쪽으로 걸었다. 걸어서 5시간. 엄마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다. 의미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며칠 전 연락해 온 형의 지인에게 전화를 걸까 잠시 고민했다. 손이 시려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아 서울역으로 향했다. 추운 날씨에도 여전히 서울역 앞엔 사람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 역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어 엄마. 형아 잘 있더라. 그래, 바쁘다 캐가 얼굴만 잠깐 보고 내려간다 이제. 어 끊어라.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텅 빈 기차. 기차는 무거운 쇳소리를 내며 어둠이 내려앉은 폐허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