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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도시화의 이유 - 노동

먹고사니즘이 키운 도시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세훈



도시란 더 이상 제국 경영을 위한 거점이나 신분 사회를 고착화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먹고사니즘이 도시를 키웠습니다. 도시는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이 자본, 기술, 거래망을 집약시켜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장소로 거듭났습니다.



앞의 글에서 1800년을 전후로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도시화라는 낯선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다루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도시 밖에 여유롭게 흩어져 살다가 굳이 도시라는 좁은 영역에 모여서 살게 되었을까요? 당시 세계 정치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다자간 합의를 이룬 것도 아닌데 말이죠.


도시화는 복잡한 퍼즐입니다. 여러 변수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에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인과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그 퍼즐의 중심에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 즉 “먹고사니즘”이 있습니다.


1800년을 전후로 인류가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변화의 킹메이커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도시였죠. 이번 글에서는 왜 도시에 모여 살게 되었는지 우선 '노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18세기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노동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산업화 이전의 사회에서 노동이란 가족의 생계유지나 신분에 따른 노역 의무를 하기 위해 사람이나 가축의 힘으로 무언가를 얻는 행위였습니다. 노동이 일어나던 영역은 대체로 마을이나 지역 등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한정되어 있던 자급자족형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원거리 무역이 일어났지만, 이는 한 곳의 희귀한 물품이나 노동력을 다른 곳에서 비싸게 파는 단순 중개무역이었습니다. 무역선을 띄우고 거래를 하는 것 이외에는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 거의 없었고, 보통 사람들은 그나마도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8세기에 들어와 변화가 시작했습니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방적기가 등장하고, 기차와 증기선이 다니기 시작했죠. 이제 사람과 가축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석탄 채굴부터 철강 제작, 면 방직 산업까지 급속도로 발달했고, 이를 활용해 훨씬 더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기차나 증기선을 타고 원거리 무역으로 팔릴 수 있었죠.


영국에서 만든 옷감이 인도에서 팔리고, 미국에서 재배한 면화가 유럽 공장으로 운송되었습니다. 이제 노동은 단순히 나와 가족이 먹고살기 위한 일이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B2C 비즈니스가 되었습니다.


이는 도시의 모습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이때 등장한 개념이 바로 '산업도시'입니다. 도시란 더 이상 제국 경영을 위한 거점이나 신분사회를 고착화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이 자본, 기술, 거래망을 집약시켜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장소로 거듭났습니다.


과거의 도시가 지배계층의 영역, 즉 왕궁이나 귀족 거주지, 통치나 군사 조직, 혹은 종교나 의식을 위한 장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면, 이제는 생산, 조립, 물류, 판매의 공간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졌습니다. 그에 따라 공장, 기차역, 항구, 창고, 근로자 주거지를 중심으로 산업에 최적화된 도시가 만들어졌죠.


영국의 버밍엄,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독일의 루르 지역, 프랑스의 릴, 폴란드의 우치, 미국의 피츠버그와 디트로이트, 인도의 뭄바이, 일본의 요코하마, 브라질의 상파울루가 그런 예입니다. 농어촌에 살던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렸고, 신분에 얽매이지 않으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성과에 따라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동력 집중과 생산성 증대로 제조 기업들은 부가가치를 엄청나게 올렸습니다. 그 유명한 산업 가치사슬의 ‘스마일링 커브’가 뒤집혀 있던 모습이 이때 나타난 것입니다.


산업화의 진전은 도시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산업도시 중 하나인 영국 맨체스터의 경우 1760년 인구가 고작 2만 명이었지만 1850년에는 3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채 100년도 되지 않아 열다섯 배 증가한 것이죠.


런던은 어땠을까요? 1810년대 초 110만 명이었던 런던의 인구는 1850년을 전후로 230만 명, 1900년에는 620만 명까지 늘어났습니다. 고대 로마를 제외하면 런던은 세계 최초로 인구 100만을 넘어선 메트로폴리스였고 이후 100년 동안 여섯 배나 큰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19세기 내내 런던은 세계 최강의 산업도시로서 영국의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를 이끌었죠. 영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유럽은 세계 최초의 해상 중심 글로벌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보다 훨씬 뒤에 나타났지만, 우리나라 초기 산업화 시기인 1960~70년대에 크게 성장한 울산, 포항, 구미, 창원, 여수, 성남, 반월(지금의 안산) 등도 모두 산업도시입니다. 이들은 지금도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경제적, 산업적 영향력이 큰 거점도시로 남아 있습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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