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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도시화의 시작

도시화 이전과 이후의 세계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세훈



호모 사피엔스가 약 30만 년 전 출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 지구적 도시화는 180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200여 년 남짓한 기간 동안 벌어진 현상입니다. 전체 인류 역사의 1,500분의 1에 불과한 찰나의 시간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류 최초의 도시들은 흥미롭게도 거대한 제국이 아니라 도시국가들이 느슨하게 연합한 형태로 등장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무대로 한 이들 도시는 홍수 위협에 함께 맞서고 문자와 농경 기술을 공유하며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때로는 제의를 함께 지내고 수로를 파면서 협력했고, 더 많은 자원이나 무역로 확보를 위해 경쟁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동성 속에서 최초의 도시 우르크가 등장했죠. 이후 바빌론, 로마, 장안, 바그다드 같은 대규모 도시들이 세계 곳곳에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도시화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모여사는 일은 여전히 불편하고, 감염병 확산과 화재 등으로 위험했죠. 많은 사람과 기업이 밀집해 혁신을 일으킬 만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도시국가 연합은 협력과 경쟁을 통해 발전할 수 있었지만 외부 침입에 너무 취약했고 자급자족 모델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제국의 수도 형태로 발전한 도시는 많은 인구를 모았지만, 혁신 중심지로 거듭나는 데 실패했죠. 그런 의미에서 진짜 도시화는 16세기 전후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는 국가의 통제력은 적당히 약해지고 도시의 힘이 강해진 순간이자, 투자자와 상인, 엔지니어가 손을 잡고 기존 시장의 규범을 뒤엎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해외로 진출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정점은 바로 항로 개척과 원거리 무역의 발달입니다.


1500년 전후부터 아시아와 아프리카, 미 대륙에 교역 도시이자 식민지를 개척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 이른바 ‘대서양 무역국(Atlantic traders)’이 그런 예입니다. 이들 국가는 대서양을 횡단하며 설탕, 향신료, 담배, 면화, 커피, 금과 은 등을 교역하여 경제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한 예로, 암스테르담에 모인 재력가들은 당시 포르투갈이 독점하던 항로를 빼앗기 위해 배를 띄웠습니다. 1594년 출항한 상선은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를 거쳐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도달했죠. 천신만고 끝에 3년 만에 암스테르담으로 귀환했습니다. 무역의 잠재력을 확인한 투자자들은 더 많은 배가 필요했습니다. 배의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북유럽에서 큰 나무를 실어 날랐고, 풍차 기술을 개량하여 목재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한 범선 75척을 만들어 두 번째 무역선이 출항했습니다. 몇 년 후, 이 배들은 값비싼 향신료와 귀금속을 잔뜩 싣고 돌아왔죠. 총 수입은 당시 네덜란드 화폐로 900만 길더로 국가 전체의 부채를 갚고도 남을 엄청난 수익이었습니다.


원거리 무역에 뛰어드는 것은 큰 이익을 낳는 동시에 막대한 초기 자본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1602년 세계 최초의 자본주의 회사로 알려진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죠. 이 회사는 공개적으로 주식을 발행했고 증권거래소를 통한 민간 거래도 가능했습니다. 투자된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주주 한정책임 제도도 도입되었죠. 투자자 모집에 응한 사람 중에는 부유한 상인도 있지만, 뒷골목에서 일하는 대장장이와 하녀도 포함되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신분과 관계없이 투자와 배당은 평등했죠. 이렇게 동인도회사를 통해 막대한 자본이 모이고 무역, 거래, 조선/건설업, 금융 산업이 한꺼번에 발달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는 올리버 크롬웰의 통치 기간 유대인들이 대거 유입되었습니다. 이미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에서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한 이들은 런던의 롬바르드 거리에 정착해 많은 은행을 설립했습니다. 이를 통해 런던을 세계 금융의 허브로 도약시켰죠. 상업도시에서 금융도시로 전환된 시기에 해당합니다. 이런 활동들이 본격화된 장소는 모두 '도시'였죠. 캘리포니아 대학 욘 스테인손 교수에 따르면, 이들 대서양 무역국들의 평균 도시화율은 1300년 전후 8%에서 1800년에 20% 수준으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럼에도 현대적 의미의 메트로폴리스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1500년대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파리의 인구는 고작 20만 명이었습니다. 런던은 그보다 훨씬 작아서 5만 명 정도였죠. 1700년경까지도 이들 도시의 인구는 50만 명을 넘지 못했습니다. 17세기 암스테르담도 5만에서 시작해 약 20만 인구까지 성장했습니다. 물론 아시아에는 베이징처럼 수십만 명이 사는 도시가 있었지만, 이는 무척 예외적인 경우였죠. 현재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인 이스탄불이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선 것은 1900년 즈음의 일입니다.


인류 역사 대부분에 걸쳐 세계 도시화율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1800년 이전까지 줄곧 5% 미만으로, 인구 100명 중 5명도 안 되는 사람들만 도시에 살았죠.


그런데 1800년을 전후로 변화가 시작됩니다. 도시화율은 급격하게 높아졌고, 일부 도시의 인구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전 세계 도시화율의 시기별 수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800년 이전: 5% 미만

1900년: 16%

1950년: 30%

2007년: 50%

2023년: 57%

2050년: 68% (추정)


즉, 1800년 이전까지 세계 도시화율은 낮은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전 지구적 도시화는 그 이후에 집중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약 30만 년 전 출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180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200여 년 남짓한 기간 동안 벌어진 현상입니다. 전체 역사의 1,500분의 1에 불과한 찰나의 시간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난 50여 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도시화율 증가를 겪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20세기 중반까지 도시화가 극도로 더뎠던 나라이기도 했죠. 참고로 제 아버지는 1946년생인데, 그때 한국의 도시화율은 약 25%였습니다. 제 조부모 세대에는 불과 5%였습니다. 지금의 도시화율 92%에 비하면, 단 두 세대 만에 국민 대부분이 비도시에 살다가 대부분이 도시에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왜 1800년을 전후로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도시화라는 낯선 변화가 시작되었을까요? 더 직접적으로 묻자면, 왜 사람들은 도시 밖에 여유롭게 흩어져 살다가 굳이 도시라는 좁은 영역에 모여서 살게 되었을까요? 당시 세계 정치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구를 도시로 옮기자고 다자간 합의를 이룬 것도 아닌데 말이죠.


도시화는 아주 복잡한 퍼즐입니다. 여러 변수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에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인과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그 퍼즐의 중심에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 즉 “먹고사니즘”이 있습니다. 1800년을 전후로 인류가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변화의 킹메이커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도시였죠.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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