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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되는 세계, 작아지는 도시

회복력은 곧 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정혜


성장이 둔화된 이 시대, 많은 국가의 인구 증가가 마이너스로 전환된 지금, 축소도시는 더 이상 예외적 존재가 아니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선거 캠페인의 슬로건 “Make America Great Again”은 암울한 현실을 더욱 거세게 부정하고, 좀 더 심각한 혼란과 노골적 갈등을 겪게 될 미국의 미래를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미국은 항상 성장을 추구해 온 국가다. 미국의 전형적 축소도시는 1950~1960년대, 혹은 그 이전에 인구가 정점에 달했다가 감소한 북동부·중서부의 오래된 도시들이다. 성장을 자국 정체성의 핵심으로 여겨온 미국에서, 인구 감소와 도시 축소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는 우리의 도시 역사와 현재 도시 축소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도시계획자와 공무원들은 도시의 축소를 보다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을 만한 새로운 언어와 담론을 고안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인구 추세가 뒤집히지 않는 한, 성장형 경제모델은 언젠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런 모델을 지탱하려는 노력이 길어질수록, 실패는 더욱 처절해진다.


이제는 지속가능한 소도시와 소규모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계획 수립에 돌입해야 하며, 인구 감소가 성장 실패의 상징이 아닌 합리적인 미래 경로라는 생각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축소도시들은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보인다. 고령 인구가 증가하고, 아동 및 학령인구가 감소하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초과하고, 전출자가 전입자를 상회한다. 또한 고령자가 포함된 가구 수가 꾸준히 늘어난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 운영 방식과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하지만 인구가 감소하든 그렇지 않든, 과거의 영광에 안주할 수 있는 도시는 없다. 1970년 초, 보잉사가 시애틀에서 6만 3천여 명을 해고하자 사람들은 시애틀의 몰락을 상상했다. 그러나 시애틀은 과거 고유 자산과는 무관하게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의 본거지가 되며 21세기 최고의 신흥 도시로 발돋움했다.


반면 같은 시기, 뉴욕주 로체스터는 코닥, 바슈롬, 제록스의 본사가 위치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바슈롬과 제록스는 도시를 떠났고, 코닥은 구식 기술을 붙들고 있던 대표적인 기업으로 전락했다. 현재 로체스터는 주민의 3분의 1이 빈곤층에 속한다.


이는 과거의 번영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으며, 도시의 회복력은 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회복력이라는 개념은 불확실성 속에서 번성하고,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능력을 의미한다. 문제는 ‘어떻게 회복력을 키울 것인가’이다. 지금까지 미국 축소도시 중 일부가 보여준 가장 놀라운 회복은 계획된 전략보다는 우연한 계기와 고유 자산의 결합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억만장자 댄 길버트가 2010년, 자신이 세운 퀴큰론스 본사를 디트로이트로 이전한 후 약 1만 7천 개의 일자리가 도심에 생겼고, 50억 달러 이상의 투자 자본이 유입됐다. 클리블랜드, 세인트루이스, 볼티모어처럼 주요 대학과 매력적인 오래된 동네가 있는 도시들은 별다른 유인책 없이도 밀레니얼 세대의 관심을 끌었고, 고급 주거지로 재편되었다. 이 변화는 도시의 계획 밖에서 이루어진 비공식적인 적응 사례들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축소도시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미국의 첫 번째 도시는 오하이오주의 영스타운이었다. 1930년대 17만 명이었던 인구는 2000년 8만 명으로 줄었다. 당시 한 저명한 지역 유지는 “도시가 축소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반미에 가깝다”라고 표현했을 만큼, 공공 부문은 이를 인정하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2005년, 영스타운은 ‘영스타운 2010 도시계획’을 통해 “작은 도시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고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도시 인프라를 재편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 계획은 미국의 다른 도시들이 인구 감소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형태의 도시계획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도시는 물리적 공간이나 건물의 집합이 아니다. 도시에 거주하고, 일하고, 관광하거나 치료받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곧 도시다.


도시의 지속 가능성은 성장의 크기에 있지 않다. 소득이 높고 수명이 길며 가족 수가 적은 사회에서 인구가 줄어들 때, 지속적 풍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인적 자본이며 규모보다는 적응성이 핵심이다. 도시는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하며, 성장의 실패를 다시 성장으로만 해결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 도시 축소를 장기적 현실이자 대안적 미래 경로로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이 성장을 가치로 보고, 인구 감소를 실패의 신호로 인식하는 한, 단순한 감소 사실조차 “우리 지역은 망했다”는 집단적 비관주의로 이어진다. 따라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다양한 공동체의 참여를 유도하며, 미래에 대한 포용적 비전을 심고 유지하는 사회적 역량이 더욱 중요해진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기술보다도 사회·문화·정치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성장이 둔화된 이 시대, 많은 국가의 인구 증가가 마이너스로 전환된 지금, 축소도시는 더 이상 예외적 존재가 아니다. 성장은 끝났다. 이제는 지역 중심의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일정 시점부터는 도시 규모가 클수록 지속 가능성에 불리해질 수 있다. 네트워크 기반의 연결성이 강화되면 소도시와 대도시 간의 경쟁은 더 공정해지고, 소규모 공장이나 작업장에서도 생산이 가능해지며, 지역 생산 역량은 더 큰 경쟁력을 갖게 된다.


지역화가 이루어지면 세계 경제에 대한 과도한 의존 역시 줄어들 수 있다. 만약 이 세계가 축소도시로 가득해진다면, 새로운 규칙이 생겨날 것이다. 인구 감소와는 다른 차원에서 도시의 쇠퇴를 측정하게 될 것이고, 인구 감소를 경제적 쇠퇴나 빈곤과 분리해 인식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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