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전세사고 이야기 (3)

압류된 집에 누가 들어오려고 할까요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양하영


도움은 필요한데, 누구에게 무엇을 어디까지 물어야 할지, 왜 이들은 저마다 다른 답변을 하는지 대체 뭐가 맞는 말인지, 나는 위기 속에 있는 것 같은데 상담하는 사람들은 위기가 아니라고 하니 혼란스러웠습니다.

ㅇ중개사가 저의 전셋집 광고를 시작하자마자 문의가 빗발쳤습니다.


신축급, 채광 좋은 남서향의 대로변 역세권이라는 좋은 조건에 잘 관리된 집이었기에 저도 이 집이 신규 세입자를 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들은 넘쳐났고, 그중 몇몇에게 집을 보여주면서 설명하고자 등기부등본을 뽑아본 중개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압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ㅅ부동산에 재계약여부를 문의했던 3월에 새겨진 것이었지요. 알아본 바, 임대인이 또 세금을 미납했고 그렇게 그의 자산인 나의 전셋집에 압류가 걸리게 된 것입니다.


압류된 집에 누가 들어오려고 할까요?


2억이 넘는 전셋집에 대출도 없이 들어오려는 사람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압류가 걸린 집에 은행이 대출해 줄 가능성도 희박하기는 마찬가지겠지요.


'압류된 집을 가지고 보증금을 올리겠다 흥정을 했다니… 임대인이 이래서 집에 찾아와 그냥 살라고 했구나.

그래놓고 정작 중요한 압류 건은 아예 말도 안 했네. 참 대단하다.'


ㅅ중개사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임대인과 ㅅ중개인 이 두 사람의 양심의 행방이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찾아보는 것이 더 우선이었지요.


ㅇ중개인은 임대인에게 세금 미납액이 얼마나 큰지, 언제 압류 말소가 가능한지 등을 묻고자 여러 차례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지만 임대인은 계속 연락을 피했고, 그나마 연락이 닿았을 때는 금액이 크지 않다, 금방 해결할 수 있다며 불투명한 대답을 늘여놓았습니다.


중개인은 지금 상태에서는 이 매물이 안전하지 않으니 중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압류가 풀릴 때까지는 집을 내놓기를 포기해야 했지요. 이때부터 저의 불안은 거세게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임대인이 끝끝내 세금을 내지 못해 압류가 풀리지 않으면, 신규세입자를 불러올 수 없고, 그렇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저는 영락없이 이 집에 계속 묶이게 될 테니까요. 세금도 못 낸 형편에 신규세입자의 보증금 없이 2억이 넘는 저의 돈을 돌려줄 리는 만무했고요.


다행히도 저는 보증보험에 가입했고, 보험사로부터 대위변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전입신고 완료, 확정일자 부여, 계약기간 만료 2개월 전에 재계약 의사 없음 고지*)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앞으로 언제까지 어떤 서류들을 준비하고, 무엇을 신청해야 하는지 꼼꼼히 계획을 세워나갔습니다. 보험사에서는 계약기간 종료되는 시점에서 3개월가량 소요될 것이며, 요즘 보험청구가 많아 확언할 수 없지만 아마 12월 말까지는 보증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이사 갈 곳으로 알아보았던 서초구 오피스텔 포기 여부를 결정해야 했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초구 부동산에서 가계약을 요구했지만 만약을 대비해 이사 날짜가 9월 말이니 1-2주 정도만 말미를 갖고 그동안 지금 거주 중인 집이 안전하게 거래될지 확인한 후 계약을 결정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 집의 압류가 밝혀진 것입니다.


몇백만 원가량의 가계약금을 날리지 않아도 되는 점은 천만다행이었지만, 약속한 계약일자가 가까워질수록 낙성대 집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불안함에 스트레스는 커져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서초구 오피스텔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9월 26일에 이 집에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거든요.


오랫동안 발품 팔아 겨우 찾은 마음에 드는 집을 놓치고, 보증보험사를 통해 돈을 돌려받는 날까지는 이 집에 거주해야 하며, 그 날짜도 언제일지 확신할 수 없어서 새 집을 구하는 것은 언제부터 가능할지, 과연 그때에 마음에 드는 새 집을 구할 수 있을지, 대위변제받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행정절차는 얼마나 고단할지,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위험이 있는지 모든 것들이 불안과 분노의 소용돌이가 되어 제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관악구 주거안심종합센터 주거상담소, 서울시 전월세 종합지원센터, 서초구 주거상담센터 등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어떤 곳은 온라인으로 상담 예약을 하면 그 일시에 제게 전화가 오는 방식이었고, 어떤 곳은 제가 바로 전화를 걸어 상담할 수도 있었지요.


여러 곳에 문의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모두가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떻게 답변이 다 다를 수 있지?'


저는 전세권과 임차권등기 등에 대한 문의를 했는데요, 보증보험에 가입했다고 하자 *“그러면 됐네! 보험사에 물어보세요.”*라는 답변만 동일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자체에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으면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데, 보증보험에 가입해서 스스로 안전망을 마련한 사람은 전세사기 피해자 대상에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그 안전망이 터진 안전망인지, 너무 약해 제 기능을 못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전세사기는 임대인이든 중개사든 기망 의도를 가지고 작정하고 사기를 친 케이스고, 제 케이스는 임대인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 것 같으니 전세사기가 아니라 전세사고라고들 하더군요.


전세사기고 전세사고고 저는 전재산인 보증금을 못 돌려받을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는데 그런 가해자 중심적인 워딩이 대체 뭐가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임대인은 이 상황에서 미적거리며 일을 미루고 있는데 대체 기망의도란 게 무엇이며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 건지. 상담을 받을수록 속이 타들어갔어요.


도움은 필요한데, 누구에게 무엇을 어디까지 물어야 할지, 왜 이들은 저마다 다른 답변을 하는지 대체 뭐가 맞는 말인지, 나는 위기 속에 있는 것 같은데 상담하는 사람들은 위기가 아니라고 하니 혼란스러웠습니다.



****



*2024년 7월 기준 대위변제 조건입니다.

*본 글에 포함된 용어 설명을 첨부합니다.

보증보험: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세입자가 가입하는 보험

대위변제: 보험사가 임대인을 대신해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지급하는 것

확정일자: 전세계약서에 관공서가 부여하는 날짜 확인 도장으로, 보증금 회수 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전세권: 세입자가 전세금 반환을 보장받기 위해 설정하는 물권적 권리

임차권등기: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집주인의 동의 없이도 신청할 수 있는 권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전세사고 이야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