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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구독하는 사회

차별화된 공간과 서비스를 구독형으로 제공하는 임대시장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정혜



지난번 코사이어티와 함께한 <도시관측 챌린지> 미팅에서 ‘임대 형태의 주택이 앞으로의 추세가 될 듯하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나 또한 현재의 흐름대로라면 수요가 몰리는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더 이상 노력으로 진입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설 것이라 예상했다.


반대로 수요가 줄어든 지역의 부동산은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니 미래에는 굳이 집을 소유하는 것을 삶의 목표에 두지 않고 평생을 임차인의 형태로 살아가는 것을 효율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임대형 주거’가 대세가 될 것이라니. 한국 아파트 시장만을 배경으로 부동산 공부를 해왔던 나에게 '임대주택'은 저소득층 거주민을 위해 다소 낮은 질로 만들어진 주거공간을 뜻하는 말이었고, 투자의 관점에서는 전혀 효율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그래서 임대가 단순히 ‘소유하지 못한 자의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주거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면 그 배경에는 어떤 흐름이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러다 보니 이후로 임대형 주택시장으로의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관련 기사나 정보가 유독 눈에 띄었다.



기업형 주거 임대시장의 등장


‘민간 임대’ 형식의 주거시장은 최근 한국 주택시장에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모델로 등장하고 있었다.


기존에는 개인 임대인이 전세나 월세를 통해 임대 수익을 얻고, 임차인은 전세금을 통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하는 구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처럼 전세금을 받아 은행에 저축하고 받는 이득이 점차 줄어들며, 임대인 입장에서는 은행에 전세 보증금을 예치해 받는 박한 이자보다 월세로 전환해 더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었다.


전·월세 전환율이 약 6퍼센트에 이르고, 전세 1억 원을 은행에 예치했을 때 얻는 연간 250만 원(월 20만 8300원)의 이자 수익보다, 월세로 돌려 연간 600만 원(월 50만 원)을 얻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임대인이라면 누구라도 월세를 선택할 것이다.


임차인도 전세 대신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가 가계 부채를 줄이기 위해 전세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출이 어려워졌고, 전세금이 매매가를 넘는 ‘깡통 전세’와 전세 사기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며 전세 리스크는 급증했다.


이런 임차인과 임대인의 상호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세입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앞으로 집을 보유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월세 혹은 자가,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살아가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해외의 기업형 주거 임대시장


이러한 변화가 기업형 임대 주택 모델의 등장을 촉진시켰다. 이제는 기업이 임대인이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방을 임대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를 서비스화해 패키지로 제공한다. 기본 가구, 공용 라운지, 피트니스센터, 코워킹 스페이스, 커뮤니티 프로그램 및 보안서비스까지 포함해 주거·생활·커뮤니티를 ‘구독’하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그 예로 KT에스테이트가 운영하는 ‘리마크빌 이스트폴’, SK디앤디의 ‘에피소드’, MGRV의 ‘맹그로브’ 같은 기업형 임대 주택이 있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Build to Rent(BTR)’라는 이름으로 기업형 임대 주택이 빠르게 확산됐다. BTR은 애초부터 임대를 목적으로 설계·건설된 대규모 단지로, 판매가 아닌 임대 수익 창출을 위해 지어진다. 런던에서는 BTR이 신규 주택 공급의 5분의 1을 차지하며 보편적 주거 방식으로 자리 잡으며 한 달부터 6개월, 1년 등 다양한 계약 기간으로 운영된다.


AXA IM(Investment Managers)는 2010년 중반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임대주택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였고, 2017년에는 영국의 고령자 주거 개발업체인 Retirement Villages Group을 약 1억 파운드에 인수하여 고령자 주거시장에 진입하기도 했다. AXA IM의 임대주택 입주자는 여러 유형의 객실 선택지 중 원하는 형식을 선택할 수 있고, 피트니스 센터, 스터디룸, 세탁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현장 커뮤니티 팀의 24시간 지원을 받는다.


Black Stone은 미국에 단독시장 임대시장을 개척한 기업이다. 2012년 미국 주택시장침체기를 기회로 삼아 ‘Invitation Homes’를 설립하고 대규모 단독주택을 매입하여 임대주택으로 전환하였다. 이후 2017년 뉴욕증시에 상장되었으며 현재 미국 최대 단독주택임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Invitation Homes는 입주자에게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일부 구독형 서비스(스마트 홈 기술, 공기필터 제공, 유틸리티 관리 및 잔디관리, 해충 방제 서비스 등)를 운영 중이다.


일본에서는 다이토켄타쿠 모델이 있었다. 다이토켄타구 모델은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후 토지가치가 폭락하고 매수자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떠올랐다. 다이토켄타쿠는 토지 소유주에게 땅에 임대주택을 대신 지어주고 건축비를 금융 파트너가 대출해 주며, 완공 후 최장 35년 동안 임대관리를 책임져 주겠다며 달콤한 제안을 했다.


이 모델은 일본 전역에 소형 다세대 임대 주택을 급속히 확산시켰는데, 기업은 토지를 매입하지 않고도 수익을 창출했고, 토지주는 개발 리스크 없이 현금을 확보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제 국내 대기업도 앞다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제는 집주인이 개인이 아닌 글로벌 투자기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 임대 시장은 점점 기업 임대 시장으로 흡수될 것이다.


위에서 보듯이 기업형 임대와 기존 전월세 시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다양한 주거서비스의 제공 여부다. 기업형 임대시장은 주거 외 공용 라운지, 키친, 오락 시설, 커뮤니티 프로그램, 전용 앱을 통한 공간 예약과 입주자 네트워크까지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고 월 구독 수익을 창출한다.



주거 구독하는 사회


기업형 임대가 늘어나면 다양한 사람의 거주 데이터(거주 만족도 조사, 유형별/위치별 공실률, 시설 및 서비스 이용 패턴 분석, 추가 서비스 수요 조사 등)가 생성되고 쌓이게 될 것이다. 이는 주거서비스의 개선을 위해 재사용되고, 또 다른 비즈니스를 낳는 구조로 연결된다.


나는 기업형 임대시장이 보편화된다면, 제품이 타겟을 중심으로 세분화되어 개발되듯 거주자의 성격에 따라 차별화된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임대시장 분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세분화된 시장에 특화된 브랜드들이 타겟에 맞는 서비스를 한데 묶어 제공하는 시장이 등장할 수 있을듯하다.


예를 들면 20대 예술전공 여성을 위한 공간, 반려동물을 기르는 대학생 거주자를 위한 공간, 고학력 고령자를 위한 공간 등 세분화된 임대형 주택시장이 개발될 수 있다. 또한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민간임대 지원 서비스도 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주거 구독 시장은 공실화되고 있는 공공주택 운영의 대안적 모델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본다. 공공주택의 빈 공간을 저렴하게 매입하고 리노베이션 하여 임대형 서비스로 제공하는 방식처럼, 주거를 하나의 서비스로 전환하는 사업 모델이 가능하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러한 시장이 점차 성장한다면, 인구가 감소하는 외곽 도시의 공실 아파트 역시 환경적·공간적 특성에 맞춰 특정 수요 계층을 위한 기업형 임대주택 구축 공간으로 재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기업은 일정 규모 이상의 단지를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서비스와 인프라를 집약하여 라이프스타일 기반의 주거 서비스를 공급하는 모델을 구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몇 년 전 읽은 책에서 현대 사회의 모든 것이 구독의 형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내용을 접한 적이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 또한 프로그램부터 각종 서비스, 제품까지 구독을 일상적으로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제 주거 역시 이러한 구독 서비스 중 하나로 자리 잡아가는 듯하다. 주거는 더 이상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구독하는 사회적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처 없는 사회 변화는 위기일 수 있지만, 준비된 사회에게 변화는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한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미래의 2030 세대는 좋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급 주거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삶의 목표 중 하나로 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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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글

북저널리즘, 〈주거의 미래〉, 2025. 05. 01 https://www.bookjournalism.com/contents/75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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