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자본을 견인하는 ‘힙’의 연대기
Written by 김세훈
성수동의 부상은 과거 강남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강남에서는 거대 자본과 건설회사가 처음부터 부촌 아파트와 상권을 동시에 개발했습니다. 1970년대 현대건설이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지었고, 한양그룹 계열사(한양유통)는 한양쇼핑센터, 지금의 갤러리아 백화점을 열었습니다. 90년대에는 갤러리아에 국내 최초로 명품관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죠.
그에 반해 오늘날의 성수를 있게끔 한 초기 동력은 대규모 건설사나 금융 자본이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경공업체 및 수리업 관계자들이 첫 토양을 깔았고, 그 위로 소규모 창작자와 장인,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공방, 갤러리, 카페의 동시다발적 상륙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감성이 독특한 바이브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이는 짧은 시간에 SNS를 통해 대중을 끌어모았습니다. 처음에는 이를 관망하다 그 잠재력을 확인한 글로벌 브랜드와 거대 자본이 후발주자로 성수에 합류했죠. 유형을 나누자면 크고 작은 문화적 시도가 모여 지역 성장을 이끈 ‘문화 견인형’ 상권 성숙에 해당합니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진공상태에서 갑자기 지금의 성수가 탄생한 것은 아닙니다. 성수에서 새로운 문화가 싹틀 수 있던 토양은 역설적이게도 지난 반세기 동안 이어진 산업화의 유산이었습니다. 산업화라는 오래된 토양 위에서 ‘문화’가 ‘자본’을 이끌어낸 셈입니다.
저는 이 과정을 1세대 산업자본, 2세대 문화자본, 3세대 글로벌 자본의 순차적 축적과 상호작용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여기서는 도시의 성장을 핵심 자산인 노동력(l), 자본(k), 인프라(i)와 그 도시가 쌓아온 누적 역량(ADE)의 상호작용으로 분석하는 FADE 모델( y = f(l,k,i) × ADE )을 빌려 각 시대의 특징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 성수는 공업이나 상업과 무관한 땅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너른 들판이자 임금의 사냥터, 그리고 말을 기르던 목장이었죠. 일제강점기에는 뚝섬유원지가 있던 서울의 교외였습니다.
이 땅의 운명은 1960년대 정부가 성수를 경공업지대로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바뀌었습니다. 당시 뉴스에서는 "성동 공업단지"라는 말이 돌았고, 서울시는 "뚝도지구"라고 불렀습니다. 1961년 시작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성수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지구 전체가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된 공업지역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지금의 광나루길, 아차산로, 성수일/이로가 이때 처음 생기거나 일부 도로폭이 확장되었습니다. [1]
공공이 닦은 하드웨어(i) 위에 민간 기업들이 둥지를 틀며 성수는 대한민국 경공업의 심장부로 성장했습니다.
1963년 국민 볼펜을 만든 모나미가 성수에 첫 공장을 세웠고, 1967년 금강제화가 인근으로 이전하며 수제화 산업 생태계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모토로라 코리아, 신도리코 등이 상륙하며 성동구는 서울 전체 공장의 2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번성했죠. 이때 형성된 붉은 벽돌 공장과 공장 폐수를 실어 나르던 성수천(現 지하철 2호선 복개 구간)은 1세대 산업 시대의 상징적 풍경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산업구조 변화와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공장들이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주거 기능이 강화되었고 폐수나 기름 냄새에 대한 민원과 함께 공장지대로서의 성수동은 활력을 잃었습니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명동의 제화 기업들이 역으로 성수동으로 들어왔지만 이들은 대부분 영세한 규모였죠. 2000년대 초반 정책 입안자들의 고민은 ‘성수에 남겨진 수제화 산업의 명맥을 어떻게 이을 것인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훗날의 폭발적 성장을 위한 자산이 응축되던 잠재기였습니다. 이를 노동, 자본, 인프라로 나눠 보면 이렇습니다.
노동력 (l): 수제화, 인쇄, 자동차 정비 등 전통 제조업에 종사하는 숙련 기술공들이 지역의 주요 인적 자산을 구성했습니다. 특히 왕십리 뉴타운 개발로 밀려난 금형 공장들이 재개발 이슈가 덜했던 북성수(성수2가 3동) 일대로 유입되며 기술 집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자본 (k): 저렴한 임대료의 낡은 공장, 붉은 벽돌 창고 등은 당시엔 저평가된 물리적 자산이었으나, 훗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잠재적 문화자본’이었습니다. 당시 성수는 외부인이 찾는 목적지 상권이 아니었고 대규모 금융자본의 유입도 거의 없었습니다.
인프라 (i): 결정적인 변화의 씨앗이 심어졌습니다. 2005년 35만 평 규모의 서울숲이 개장하며 지역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갤러리아 포레 등이 포함된 뚝섬 역세권 개발 계획이 가시화되었습니다. 또한 강남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분당선 연장(서울숲역 신설) 계획은 향후 성수동의 변화를 가져올 게임 체인저였습니다.
산업 쇠퇴가 남긴 여백은 새로운 세대에게는 기회였습니다. 홍대나 가로수길의 등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등 소위 창조계급이 성수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유입되기 시작했죠. 이들은 낡은 공장을 문화적 연금술로 재탄생시킨 2세대 문화자본 개척자였습니다.
이 시기는 다른 잠재적 힙플레이스였던 문래, 을지로 등과 성수동의 운명을 가른 분기점이었습니다. 성수동은 저렴한 임대료 외에 다른 지역이 갖지 못한 자산 요소의 시너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공간 규모와 확장성 (k): 작은 공장 혹은 상가 위주였던 타 지역과 달리, 성수의 대규모 필지 위 단층 공장과 높은 층고의 창고는 대형 쇼룸, 갤러리,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는 잠재력이 컸습니다.
강남/분당과의 연결성 (i): 2012년 분당선 서울숲역 개통은 강남과 1기 신도시의 구매력 있는 소비자와 인재, 자본을 끌어들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대체 불가능한 어메니티 (i): 거대한 도시 숲 ‘서울숲’은 삭막한 공장지대 이미지를 상쇄하며 창조계급과 고소득 주거 인구를 동시에 유인했습니다.
이러한 인프라 위로 새로운 인적 자원(l)이 유입되며 독특한 문화자본(k)이 축적되었습니다.
이 시기 성수에 상륙한 트렌드세터들은 단순히 독특한 공간으로 돈을 벌려는 사업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진정성 있는 공간을 만들고, 본질만 남기고 불필요한 장식은 과감하게 없앨 안목이 있었으며, F&B와 문화 경험을 더해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확장하는 ‘융복합 공간 크리에이터’에 가까웠습니다.
2013년 낡은 정미소를 개조한 갤러리 카페 ‘대림창고(홍동희)’는 성수동의 정체성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이후 인쇄공장을 변신시킨 ‘자그마치’(2014)와 '오르에르(2016, 김재원), 금속공장을 개조해 거칠고 날것 그대로의 장소감을 힙스터 분위기로 대중화한 ‘어니언 성수’(2016, 유주형)가 연이어 성공하며 인더스트리얼 감성이라는 코드를 확립했습니다. 2016~18년 연달아 개관한 에스팩토리(이호규)도 대규모 창고형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이후 브랜드가 주목하는 무대로 자리 잡았죠.
비슷한 시기 2세대 문화자본에는 또 다른 색깔이 유입됩니다. 문화와 예술 기반의 창조계급에 이어 사회혁신가와 소셜벤처 인력(l)이 유입된 것입니다. 소셜벤처 커뮤니티의 허브인 ‘카우앤독’(2014), 비영리 재단 루트임팩트가 조성한 코워킹 스페이스 ‘헤이그라운드’(2017) 등이 문을 열며 성수동은 소셜벤처 밸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더했습니다. 이는 임팩트 투자라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자본(k)을 유치하고, 상생과 사회적 가치라는 소프트 인프라(i)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소규모 창작자들과 사회혁신가들이 쌓아 올린 2세대 문화자본은 성수동에 생기를 불어넣었지만,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그림자도 드리웠습니다. 2014~15년을 기점으로 임대료가 급등하기 시작했고, 개인의 소규모 창업보다 법인 주도의 투자가 증가하는 변곡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3세대 자본이 성수에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보다 최근에 성수동은 다시 한번 도약합니다. 잘 축적된 2세대 문화자본의 잠재력을 확인한 3세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이 대거 상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수동의 유동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제 ‘성수동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업의 강력한 브랜딩이 되었습니다.
노동력 (l): SM엔터테인먼트, 무신사, 크래프톤, 쏘카 등 IT, 엔터, 패션 분야의 대기업들이 본사를 이전하며 대규모 고소득, 젊은 직장인 인구가 급증했습니다. 또한 디올, 샤넬 등 글로벌 브랜드를 경험하기 위한 국내외 목적 지향적 소비자와 인플루언서들이 새로운 인적 구성을 이루었습니다.
자본 (k): 기업 자본의 유입이 폭증했습니다. 블루보틀(2019)을 시작으로 아모레퍼시픽이 플래그십 스토어 ‘아모레성수’(2019)를 열었고, 2022년 파리 몽테뉴가 본점을 옮겨온 듯한 ‘디올 성수’는 성수동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며 새로운 인증샷 명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크래프톤의 이마트 본사 부지 매입(1조 2천억 원)과 같은 조 단위의 투자는 이러한 흐름을 보여줍니다.
인프라 (i): 최고급 주거·업무·상업 시설이 결합된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2020)가 완공되었고, ‘생각공장’, ‘팩토리얼 성수’ 등 첨단 지식산업센터가 공급되며 산업 집적을 가속화했습니다. 또한 단기 공간 임대, 기획, 시공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팝업스토어 생태계’는 성수의 엄청난 유동인구와 바이럴 효과를 등에 업은 브랜드의 테스트베드라는 독보적인 소프트 인프라로 자리 잡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뒤늦게 상륙한 거대 자본조차 성수동 고유의 ‘상향식(Bottom-up)’ 문법을 존중하고 따른다는 것입니다. 막대한 자본으로 기존의 것을 없애고 새로 짓기보다, 지역의 맥락과 결을 맞추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예지만 백영선 대표는 뉴발란스가 기와 위에 신발을 전시하는 사례에서 이런 의지를 읽었다고 합니다.
성수동은 '성수다움'을 추구하는 문화적 움직임과 힙한 바이브,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더 큰 현금 흐름을 만들고자 하는 거대 자본이 공존하며 새로운 도시 실험이 계속되고 있는 현장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본이 문화를 따른 것이지, 자본이 먼저 문화 코드를 만든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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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서울에서 진행된 17개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중에서 8개가 준공업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사업지구 전체가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뚝도와 성산지구 두 곳뿐이었고, 성산은 이후 주거지역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