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의 저소득층
Written by 김세훈
“도시 물가가 미쳤습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고물가의 실체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들여다봤습니다. 2023년 한 해 세계 주요 도시의 물가 상승률이 7.4퍼센트를 기록했습니다. 2022년의 8.1퍼센트에 이어 두 해 연속 폭등이죠. 과거 2~3퍼센트 수준이던 시절과 비교하면 심각하게 높은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도시도 예외는 아닙니다. 서울의 경우 세계 주요 도시 중 물가가 14~15위권에 올라 있습니다. 한때 비싼 도시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런던, 프랑크푸르트, 도쿄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미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캘리포니아주는 세계에서 물가가 비싼 도시를 여럿 거느리고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등이 그렇습니다. 온화한 날씨, 적당한 생활비, 포용적인 문화로 지상낙원이라 불리던 이곳의 얼굴이 달라졌습니다.
샌프란시스코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 도시는 잘 알려진 애플, 구글, 엔비디아, 어도비, 메타, X, 우버, 리프트, 에어비엔비, 핀터레스트까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포진한 실리콘밸리의 심장부입니다. 여전히 유니콘 기업 배출 세계 1위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혁신 도시라는 왕관의 무게가 만만치 않습니다. 화려한 명성 뒤에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주거비와 생활비, 미국 최고 수준의 세금, 그리고 범죄 위험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기준 샌프란시스코의 단독주택 중위가격은 160만 달러(약 22억 원)로, 당시 서울 아파트 가격의 두 배에 달합니다. 2024년 4월에는 185만 달러까지 치솟았죠. 집 월세를 제외한 4인 가족의 한 달 생활비만 5,650달러 수준이니 보통 사람에겐 숨이 턱 막히는 물가입니다.
이렇게 물가와 집값, 세금이 너무 높다 보니, 웬만큼 벌어서는 정상적인 삶을 꾸리기가 어렵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카운티는 연 소득 10만 4,400달러(약 1억 3,800만 원) 이하를 저소득층으로 분류해 주거 지원 대상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4인 가구 기준으로는 연 소득 33만 9,000달러(약 4억 4,900만 원)가 되어야 샌프란시스코에서 ‘안락한 생활’이 가능하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때는 멕시코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넘어왔는데, 요즘은 미국의 재택·원격 근무자들이 물가가 저렴한 멕시코로 발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멕시코로 이주하기’, ‘멕시코 생활비’ 같은 검색어가 미국 포털에서 급상승하고 있죠. 미국인들은 비자 없이 최대 6개월간 멕시코에 체류할 수 있습니다. 잠시 회의 참석이나 코스트코 쇼핑을 위해 국경을 넘었다가 일을 보고 다시 멕시코로 돌아오는 ‘멕시코 통근족’이 늘어났습니다.
참고로 멕시코는 코로나19 기간에도 국경을 봉쇄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이 틈을 타 많은 원격 근무자와 전 세계 관광객, 문화예술가, 건축가 들이 멕시코로 이주했습니다. 덕분에 국경지대 일부와 멕시코시티 후아레즈(Juárez) 및 콘데사(Condesa) 지역은 젊고 힙한 동네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세금 문제 또한 캘리포니아 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캘리포니아 주의 개인 소득세율은 최고 13.3퍼센트로, 미국에서도 가장 높은 축에 속합니다. 같은 월급이라도 실수령액은 다른 주에 비해 확연히 적죠.
기업들의 한숨도 깊습니다. 주 법인세가 8.8퍼센트인데, 여기에 연방 법인세 21퍼센트가 더해져 최대 29.8퍼센트까지 치솟습니다. 물론 트럼프 정부 이전(연방 35퍼센트)보다는 낮아졌지만, 주 소득세와 법인세가 아예 없는 텍사스와 비교하면 캘리포니아가 얼마나 ‘세금 지옥’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전 방위로 물가와 세금이 비싸진 캘리포니아는 최근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기업, 돈, 근로자가 떠나는 것입니다. 스탠퍼드 후버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간 무려 352개의 기업 본사가 캘리포니아를 떠났습니다. 연평균 88개씩 떠났고, 그중에는 포츈 1000 기업이 11곳이나 됩니다. 언론에 보도된 것만 이 정도니, 작은 기업들까지 합치면 탈출 움직임은 역대급 규모입니다.
실제로 테슬라, X(구 트위터), 오라클은 오스틴으로, 석유 공룡 쉐브론과 휴렛 패커드 엔터프라이즈는 휴스턴으로, 뉴트로지나는 뉴저지로 둥지를 옮겼습니다. 에이콤은 달라스로, 미국 최대 증권사 찰스 슈왑은 웨스트레이크로 이미 옮겼거나 이전을 확정지었죠. 세계적인 기업의 ‘탈(脫)-캘리포니아’ 행렬이 지역 경제를 할퀴고 있습니다.
후폭풍이 거셉니다. 캘리포니아의 일자리와 경제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관련 통계를 보면, 2022년 1월부터 2024년 6월까지 미국 전체의 민간 부문 일자리는 약 732만 개 늘어났습니다. 이 가운데 캘리포니아에서 늘어난 비율은 불과 0.07퍼센트(5,400개)에 그쳤습니다. 미국 인구의 12퍼센트를 차지하는 캘리포니아치고는 처참한 성적표입니다. 그나마 이 기간 새로 생긴 일자리의 96.5퍼센트가 정부 부문이니, 도시 재정이 흔들리거나 정부 셧다운과 함께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모래성 같은 숫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