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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필 Aug 30. 2020

유럽의 3대 야경을 보다 - 체코 프라하

시계방향으로 동유럽 훑기 두 번째 도시, 프라하 2탄

자유의 상징, 존 레논의 벽




프란츠 카프카의 집을 나와 프라하의 레논 벽으로 향했다. 레논 벽의 레논은 영국의 유명 밴드 그룹 비틀즈의 그 존 레논이 맞다. 레논 벽은 프랑스 대사관 바로 옆에 있는데 자유분방함을 상징하는듯한 그라피티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다. 레논 벽은 원래 1960년대 이후 체코인들의 사랑과 정권에 대해 저항하는 글들을 적어놓는 벽이었다. 그러다 1980년 쯔음 존 레논이 피살되자 익명의 한 화가가 벽에 레논의 초상화와 그의 노래 가사를 적었다. 이후 이 레논 벽은 체코의 민주화 운동 이후 자유와 정치 투쟁 등과 같은 자유주의 표현을 표출하는 벽으로 자리 잡았다.


프라하의 레논 벽


레논 벽 앞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알록달록한 벽의 그라피티가 체코인의 자유를 갈망하는 염원을 표현하는 거 같았다. 파란빛과 분홍빛, 자유를 표현하는 색으로서는 손색이 없었다. 전편에서 설명했듯 체코는 이전 동유럽 체코슬로바키아의 한 국가였다. 동유럽 국가들은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였으며 우리가 기존의 알던 "자유"랑은 전혀 거리가 먼 국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중국과 북한을 생각하면 된다. 다른 독재국가와 같이 체코 역시 소비에트 연방 시절 "프라하의 봄" 이라는 민주화 운동을 맛보았다. 프라하의 봄으로 체코인들은 자유를 맛보았으나 이는 얼마 가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 직후 다시 들어선 공산정권으로 인해 민주화 개혁은 산산조각 났으며 이는 자유를 잃은 시민들의 분노와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자유를 잃은 학생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예술로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바로 레논 벽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표현을 레논 벽에 그려댔고 이를 기존 벽에 그려진 존 레논의 이름을 따 레논주의라 불렀다. "레논주의"는 공산화의 핵심인 "레닌주의"와 발음이 비슷한 반대 의미로 사용됐다.  


나 또한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학생으로서 민주화 운동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많다. 독재시대에 맞선 수많은 예술가들과 운동가들... 요새는 지역 차별을 대놓고 말하지 않는 시대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어진 건 아니다. 나랑 사이가 급격히 안좋아진 대학 마저도 문제의 극우 사이트의 우수 회원이었고 지역차별을 운운하던 애였으니까. 떳떳하다면 사람들앞에서 직접말해도 될텐데. 자기도 부끄러운건 아는지 다른 지인들앞에선 아직까지 순한 표정으로 살아간다. 정말 소름돋는다. 수많은 시민들이 자유를 찾아 독재에 대항했던 것은 변함없는 사실인데  아직까지 특정 방송과 언론사에서도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지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이해가 가지 않거다. 민주화와 자유의 상징을 이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념대립으로 몰아가다니, 참으로 어이없지 않은가. 이 때문에 프라하에서 레닌 벽을 마주할 때 체코인들이 격었을 수많은 고통 내게 와 닿았다. 한국과 한 가지 다른 점은 바로 이 레논 벽이 남아있다는 것. 동독일의 나체주의와 더불어 개인의 표현은 그 어떤 법으로 막을 수 없다는 유럽인의 마인드가 레논 벽을 유지시킨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이었으면 표현에 대한 수많은 박해와 고문을 받았을 텐데 말이다.  그 당시의 많은 표현 운동들이 보존되어 남아있다면 지금의 한국처럼 지역갈등이 조금 더 완화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래서 국가보다 인권이 우선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프라하성으로


존 레논의 벽을 벗어나 이제 대망의 프라하 성으로 올라가 본다. 동유럽 여행을 한다면 누구나 들린다는 바로 그곳. 레논 벽에서 성까지 트램을 타기보다 직접 걸어서 가기로 한다. 마치 중세시대를 걷는듯한 골목들을 지나 어느덧 성 밑에까지 왔다. 프라하 성에 올라가는 은 2가지있다. 한 곳은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앞 쪽 길, 다른 곳은 사람들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뒤쪽 길. 나는 뒤쪽 길로 사람이 적은 곳에서 천천히 올라가며 사색을 즐기기로 했다.  


프라하 성으로 올라가는 길


프라하 성까지 올라가는 데는 약 30분 정도 걸렸다.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가다가 잠깐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대박!"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높은 곳에 올라서서 프라하 시내를 내려다보니 붉은 지붕들이 빽빽이 모여있는 게 보였다. 마치 어릴 적 읽던 동화 속에 중세시대 모습과 똑같았다. "난 오늘 하루만큼은 중세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야, 이왕이면 귀족이면 좋고." 실제 중시 시대에 있는듯한 느낌을 주는 이 길을 걸으며 끝까지 올라갔다. 재밌는 상상을 하며 올라갔더니 어느덧 프라하 성에 도착했다.


프라하성으로 가는 길 그 끝에서


프라하 성 내부 성당


영롱한 빛을 내는 프라하 성당의 스테인글라스


서둘러 입장표를 끊고 프라하 성에 들어갔다. 프라하 성 내부는 옛날의 모습이 더욱더 잘 보존되어 있었다. 나는 유럽의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이어서 프라하성 내부의 왕궁과 성당, 박물관을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반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 역시 독일에 교환학생을 오길 잘한 거 같다. 한국에서 이곳까지 여행으로만 오려면 돈과 시간이 엄청 깨졌을 텐데 말이다. 우선 프라하 성내의 성당로 들어가기로 한다. 성당 내부는 오묘한 빛을 내는 스테인글라스와 아주 오래된 유물들로 장식되어있다. 나는 비록 종교를 믿지 않고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유럽의 성당들은 인정할만하다. 끝이 안 보이게 높은 천장과 거대한 사이즈의 유리창들, 게다가 미사 때마다 연주되는 오르간 소리는 그야말로 뼛속까지 비종교인인 나를 사로잡을만했다. 대게 유럽의 성당들은 우리나라 불교의 절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모두에게 개방되어있고 조용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곳.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한국처럼 그 누구도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 점이 내가 한국에서 거들떠도 안 보던 개신교, 가톨릭 성당들을 유럽에서나마 찾아가게 된 이유이다. 비록 미사 때 들리는 오르간 소리와 성당 종소리에 공포감을 느끼긴 하지만 유럽여행을 할 때마다 각 도시의 성당을 들려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프라하 성 내부, 양옆으로 성당과 성주가 살았던 궁전이 있다.


성당을 나와 바로 옆에 실제 성주들이 사용했던 궁전으로 들어갔다. "에이 천년이나 지난 그냥 사람 사는 집인데 뭐 볼 게 있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정말 오만한 생각이었다. 궁전 내부는 정말 컸다. 복도 끝에서 끝까지 달려가는데만 한참 걸릴꺼같았다. 성주가 저 방의 끝에서 "하인!" 하고 불렀을 때 달려갔을 하인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아마 종아리에 알좀 배겼을 거다. 궁전 내부는 정말 미로같이 되어있었다. 방을 들어가면 문이 나오고 또 문을 열어 방을 들어가면 또 문이 나왔다. 궁전 내부를 구경하며 갑자기 디즈니 만화가 생각이 났다. 왜 디즈니에 말썽쟁이 공주 한 명이 가출하면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도 모르지 않나? 실제 성안의 누군가 도망갔으면 너무 넓어서 도망갔는지 알아차리는데 한참 걸렸을 거다. 아마 성안에 거주하는 사람들 모두 어딘가에 있겠지 하며 생각했겠지. 성안에서 술래잡기를 했다면 그건 정말 고역이었을 거다.


천장에 가문 휘장들이 그려져 있다.


성안의 가구들 또한 옛날에 사용하던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아주 오래된 책장 속에 중세 언어로 적힌 책들이 빼곡히 쌓여있다. 천장 위쪽을 보니 이상한 앰블램들이 줄지어 그려져 있다. 그림 상태로 보면 아마 이것도 못해도 500년은 넘어 보인다. 내 예상엔 프라하 성주의 가계도와 휘장에 대해 적혀있는 거 같다.


프라하 성주 초상화


프라하 성 내부의 마을


프라하 성 내부의 마을


프라하 성 내부에도 마을이 있다. 성 내부의 주민은 성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었을 거다. 보통 유럽 역사를 보면 성안의 거주민과 성 바깥의 거주민으로 나뉘는데 안전한 성안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 시대에서 나름 특권층으로 살았다고 생각해본다.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위협을 받는 건 성 바깥에 사람들이었을 거니까. 마을의 모습 또한 아주 오래전 모습 그대로였다. 내 키만 한 천장과 작고 협소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이 집들은 대부분 예전에 약국으로 사용됐을 약초방, 무기 등을 만드는 대장간이었는데 그때 모습 그대로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있다. 약 백 년 전만 해도 여기에 사람이 거주했다고 하니 정말 놀랍다. 어떻게 집들이 몇백 년이 되도록 보존될 수가 있지?


중세시대 기사가 그대로 재현되어있다


현재 마을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집들 내부로 들어갔더니 중세시대 기사들이 맞이하고 있다. 로보캅마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 갑옷으로 입혀져 있다. 안전하기야 하겠지만 이걸 입고 전장을 뛰어다녔다니 정말 힘들었을 거다. 심지어 말 한번 탈려하면 어땟을까. 제대로 다리 하나 올리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데... 저 복도 끝에는 중세시대 때 사용했던 석궁을 체험할 수 있다. 나도 1유로를 주고 체험을 해봤지만 과녁을 제대로 맞히는 게 쉽지 않다. 일단 석궁 자체가 너무 무겁고 장전하기가 매우 복잡하다. 화살을 쏘자 곧 퍽! 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과녁이 찢어졌다. 사용하기엔 조금 복잡하지만 한번 쏘면 그 성능은 어마어마했을 거 같다.


한국분들 제발 사진에 목숨 걸지 말아 주세요


프라하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사진 장소


성 내부 투어를 모두 마치고 시내로 내려가기로 한다. 이번엔 올라왔던 길과는 반대로 앞 쪽 길로 내려가기로 한다. 거기에 바로 프라하성 인생 포토존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까를교 까지 건너서 트램을 타고 호텔로 돌아가 밤에 다시 오기로 했다. 프라하 투어의 진미는 바로 야경이니까. 프라하성의 야경은 유럽 3대 야경중 하나로 뽑힌다.


팔을 쭉 뻗어도 닿지 않는 성벽 끝


SNS를 보면 프라하의 붉은 지붕들이 다 보이게 인생 샷을 찍은걸 많이 볼 수 있다. 나도 한번 찍어보려 했으나 이야 정말 쉽지 않다. 일단 성벽이 너무 높다. "인터넷 보면 다들 잘 찍었던데 이걸 어떻게 찍는 거지?". 아무리 까치발들 들어도 내 상반신이 프라하 성벽을 넘어 붉은 지붕과 함께 찍힐 수가 없었다. "아니 여성분들도 SNS를 보면 다들 잘 찍었던데???" 아무리 성벽을 둘러봐도 내 키보다 작은 구역은 없어 보인다. 그냥 핸드폰만 머리 위로 올려 지붕 풍경만 찍기로 한다.


핸드폰만 머리 위로 올려 겨우 찍은 사진


내려가려는 찰나 저 옆에서 한국어 소리가 들려온다. 봤더니 저 배경에 자기 사진을 찍으려고 한국 여자 셋이서 벽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어떻게 올라갔나 지켜봤더니 서로 밟고 올라가게 밑에서 한 명씩 차례로 올려주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사진 한 장 찍겠다고 성벽 위에 걸터앉은 것도 무개념 한 짓이지만 일단 정말 위험하다. 저 성벽 밑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낭떠러지다. 얇고 높은 성벽에서 사진을 찍다가 자칫 몸이 기울어지기라도 하면 곧바로 밑으로 추락했을 거다. 추락하면 바로 사망이다. 아니 인생에서 모든 행운을 끌어다 썼다 해도 최소 뇌사로 2주도 못 갔을 거다. 보아하니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들 전부 저런 식으로 찍은 모양인데 제발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문화 보존을 위해서 그러지 말아줬으면 한다. 심지어 이때는 미국 그랜드캐년에서 인생 샷 한번 찍다가 사망한 기사들이 나오던 때였던 거 같은데...한창 친구들과 국가가 사고자를 도와줘야 돼는가 말아야 돼는가 토론했던 기억이 난다. 결론은 만장일치로 도와주지 말아야된다고 나왔지만. 당연한 결과다. 저러다 죽으면 욕밖에 더 먹겠는가. 그거야 말로 개죽음 일거다. 참 그놈의 사진이 뭐라고 이러나 싶다. "제발 저 사람들이 한국인인걸 티 내지 않게 해 주세요." 유럽에서 공부하는 한국인으로서 정말 너무 창피했다. 제발 다음 여행지에서도 마주치지 말기를...


밤에 다시 올게 프라하성


프라하 까를교


프라하 성을 내려와 까를교로 향했다. 까를교는 프라하성과 시내 사이를 이어주는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1400년대 초에 지어졌으며 까맣게 색이 바랜 첨탑이 그 세월을 짐작하게 해 준다. 또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도 뽑힌다. 다리 길이는 생각보다 길었으며 다리 중간중간에 말이 끄는 마차와 악단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모 여행 카페 사이트에선 여기가 소매치기들의 성지라곤 하는데 아니다. 일단 난 여기뿐만 아니라 그 악명 높은 파리와 유럽에 살면서 한 번도 소매치기를 당해본적이 없다. 더불어 인종차별도 한번도 겪어본적이 없다. 모 카페에서 어떤 국가는 모두 인종차별자이고 어디는 소매치기에 경찰들까지 합세한다고 오만 피해망상 글들을 적어두는데 그 글들을 너무 믿지 않아줬으면 한다. 유럽국가들도 공권력이 존재하고 법이 존재하는 정상국가들이다. 물론 나도 내가 한번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개인적인 경험에 의거해 주장하는 거지만. 그 글들만 믿고 여행을 긴장감으로 채우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세상에서 가장 억울한게 남의 말만 듣고 손해보는건데. 내가 아는 지인은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만듣고 여기 까를교를 가보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괜찮다고 강변도 예뻣다고 말을하자 남의 말만 듣고 좋은 구경을 놓쳤다고 한탄했다. 물론 조심해서 나쁠건 없다. 세상 어디에도 범죄률 0%의 국가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거나 딱딱해질 필요도 . 그랬다간 까를교의 멋진 모습을 잘 못 느낄 수도 있으니. 


까를교 중앙에서 바라보는 프라하


유럽의 3대 야경, 프라하 성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해가 지자 다시 호텔을 나섰다. 바로 유럽의 3대 야경을 보러! 유럽의 3대 야경에는 프랑스 파리, 체코 프라하,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있다. 3군데 다 가봤지만 가장 예쁜 한 곳을 뽑으라면 뽑을 수가 없다. 3곳 모두 각자 특색이 있다. 파리는 좀 더 모던하고 깔끔한 느낌, 부다페스트는 웅장한 느낌이다. 프라하는 3곳 중 가장 오래되면서도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을 뿜어낸다. 프라하성 야경을 보기 전에 가는 길에 먼저 구시가지 광장과 하벨 시장을 들리기로 한다.


한산한 하벨 시장


하벨 시장과 구시가지 광장은 가까이 붙어있어 걸어 다녀도 될 정도다. 원래는 없는 것이 없는 시장이라지만 이때가 하필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모든 사람들이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몰려갔나 보다. 하벨 시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한산했다. 판매 물건으론 여러 기념품부터 소련식 털모자까지있다. 옛 소련 연방국이라 그런지 마트로시카 등 러시아식 기념품이 많다.


첼시 마트로시카


야경은 블타바 강변 공원에서!


한적한 강변 공원으로 가는 길


구시가지 구경을 마치고 바로 블타바 강변으로 넘어갔다. 바로 프라하성을 보기 위해. 굳이 야경을 보기 위해 다리를 건너 프라하성 쪽으로 건너가지 않아도 된다. 전날 구시가지 광장을 보며 블타바 강변에 한적한 공원을 점찍어뒀는데 여기서도 프라하성의 야경을 찍기는 충분했다. 그리고 나의 목적은 야경이라기보단 눈에 담고 사색하는 거니까. 사람이 많은 곳보단 조용한 곳이 훨씬 더 편했다.


유럽의 3대 야경, 프라하 성

블타바 강변 공원 한 벤치에 자리 잡아 조용히 빛나는 프라하 성을 바라봤다. 블타바 강의 철썩거리는 소리가 프라하 성의 조용한 빛을 더욱 부각하는 거 같았다. 거기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사 온 따뜻한 글뤼바인과 함께 하자니 사색에 잠기기 더할 나위 없었다. "저 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을 텐데... 옛날 사람들은 저 빛나는 성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위치로 치자면 지금 내가 앉아있는 곳은 까를교 건너 성 외부 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그들은 저 조용히 빛나는 성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불빛 속에서 살아가는 게 부러웠을까? 저 성의 주인이 돼 사람들 앞에서 빛나 보길 바랬을까? 아니면 강 건너편에서 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위대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한다. 천 년 전의 사람들도 그랬을까? 현재 한국의 문제는 사회 내에 수많은 갈등이 존재한다는 거다. 지역갈등, 남녀 갈등, 금수저 갈등, 세대갈등 등 특히 인터넷 세계에선 서로 헐뜯고 공격하기 바쁘다. 그럼 이 모든 갈등들의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남들이 나보다 잘되지 않길 바라는 거다. 나보다 이득보는게 싫어서 서로 트집을 잡아 싸우고 끌어내리기 바쁘다. 한국 사회가 삭막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남들한테 트집 잡히면 안되니까. 그래서 완벽해야 되니까. 참 피곤하게들 산다. 천 년 전의 프라하 사람들도 저 빛나는 성을 보며 성주를 헐뜯으려고 안간힘을 썼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지만 확실한 건 지금 한국의 상황처럼 사회 전체가 분노로 가득 차지는 않았을 거다. 이 블타바 강변의 소리를 들으면 부정한 마음이 조금 나아졌을 거니까. 블타바 강의 잔잔한 소리와 프라하성의 은은한 빛이 나 마음속에 남아있던 나쁜 마음들을 씻어주는 거 같았다. 이 마음이 한국에 갈 때까지 변하지 말아야 할 텐데... 앞으로 누군가를 미워할 마음이 들 때마다 여기 프라하의 야경을 생각해보기로 다짐했다.


블타바 강변에서 보는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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