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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필 Sep 06. 2020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수도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시계방향으로 동유럽 훑기 세 번째 도시,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생소한 나라 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


체코 프라하를 떠나 슬로바키아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목적지는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 이름도 나라도 생소한 곳이다. 보통 한국인들에게 동유럽 여행이라 하면 체코 프라하에서 바로 헝가리로 넘어간다. 아마 한국인 특성상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도시를 봐야 하기 때문에 동유럽 내에서도 존재감이 미미한 슬로바키아는 그냥 건너뛰었을 거다. 나도 여행 중에 슬로바키아를 들려야 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예전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체코와 같은 나라였으니 프라하랑 비슷한 문화일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안 들리기엔 뭔가 아쉬울 거 같고. 한참을 고민하다 나는 시간이 넉넉하니까 헝가리로 가는 길에 천천히 슬로바키아를 들려보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수도, 브라티슬라바


슬로바키아는 앞서 말했듯이 이전 체코슬로바키아의 슬로바키아를 맡고 있다. 1993년 체코와 분리된 아직 따끈따끈한 신생 국가다. 수도는 브라티슬라바(Bratislava)로 독일어로는 프레스브루크(Pressburg)로 불린다. 슬로바키아와 비슷한 발음의 나라인 슬로베니아 덕분에 유럽인조차 두 나라를 자주 착각한다고 한다. 두 나라 모두 동유럽에 위치해있고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더 헷갈렸을 거다. 가끔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보다 더 구분하기 힘든 거 같다. 도시 자체는 중세시대 때부터 존재했지만 수도로 지정된 지 약 30년도 안됐기 때문에 지하철이나 대형 백화점 같은 대도시의 인프라 시스템은 기대하기 어렵다. 브라티슬라바 길을 걷다 보면  아마 여기가 세상에서 제일 조용한 수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는 다뉴브강을 끼고 있으며 이 다뉴브 강 너머로 지는 노을이 멋진 풍경을 지어낸다.



시골스러운 평화로움



브라티슬라바 중앙역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에 도착했다. 대게 공항이나 중앙역은 그 도시의 이미지를 대표한다고 하지 않은가.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의 첫 느낌은 시골스러움 이였다. 어두운 조명과 좁은 대합실, 아직 유인으로 팔고 있는 기차표 창구가 마치 아주 옛날 한국의 버스정류장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정겨웠다. 마치 저 앞의 매점에 가면 아직도 300원짜리의 아카시아 껌을 팔고 있을 거 같았다. 왠지 부산스러운, 사람이 만들어낸 백색소음과 치지직 하며 들리는 기차 안내 방송이 브라티슬라바의 시골스러움을 더욱 보채고 있었다.


여타 다른 유럽 도시와 다를 게 없는 브라티슬라바


중악역을 5분 정도 걸어 나와 트램역으로 향했다. 다른 나라의 수도라면 중앙역과 연결된 지하철이라도 있을 텐데 브라티슬라바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깥 건물들은 여타 다른 유럽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간간히 보이는 간판 속 알파벳 사이에 섞인 키릴 문자, 그리고 사람이 없는 조용한 거리. 구시가지로 가는 동안 이상할 정도로 사람도 운행하는 차도 없었다. 심지어 공휴일이 아니라 완전 쌩 평일에 온 건데. 여기는 원래 사람이 없나 보다. 사람이 없어서 무섭다기 보단 조금 특이할 정도로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마치 어릴 때 평일에 혼자 학교를 일찍 조퇴하고 오는 길에 마주하는 따뜻한 햇살과 평화로움이 가득한 조용함이랄까. 여기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수도라는 말이 맞나 보다.


브라티슬라바의 시내



깔끔하게 정리된 도시


트램에서 내려 브라티슬라바 중심가로 향했다. 한겨울이었지만 날씨는 비교적 온화했다. 고요한 한적함과 따뜻한 햇살이 그냥 걷기만 해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줬다. 실은 트램을 탄 것도 날씨가 추울까 봐 탄 건데 날씨를 보니 다시 중앙역으로 돌아갈 땐 걸어서 가도 될만했다. 도시는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있었다.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도 심지어 쓰레기통도 보이지 않았다. 보통 유럽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일상이다. 심지어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도 애기들 앞에서 그냥 담배를 피운다. 덕분에 유럽에서 살 때마다 담배냄새에 고생을 좀 했지만 여긴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없었다.  브라티슬라바에 대한 사전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설렁설렁 걸어서 구경하기로 한다.



브라티슬라바 최대 번화가


걷다 보니 웅성웅성한 소리가 났다. "아! 드디어 사람들을 보는구나!" 기대감에 이끌려 소리나 난 곳으로 가보니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시끄럽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역시 중국인은 어디에도 있군. 대체 무얼 찍나 가까이 가보니 하수구에 들어가는 듯한 소년 앞에서 찍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진짜 사람이 아니라 동상이었다. "아 이게 여기 랜드마크구나." 동상의 포즈 하며 옷에 잡힌 주름, 표정이 실제 사람과 똑같았다. 가이드가 하는 이야기를 엿들으니 팝아티스트의 거장인 앤디 워홀의 부모님이 여기 출신이라고 한다. 이런 예술품들이 앤디 워홀 그에게도 영향을 미쳤을까? 모르는 일이다. 좀 더 조용히 사색을 즐기기 위해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걸어가 보기로 한다.


브라티슬라바의 커다란 성당


골목의 끝에 다다르자 커다란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첨탑의 높이까지 하면 적어도 10층 정도 되는 높이일 거 같았다. 건물 양식도 일반적으로 보던 유럽 성당과는 달라 처음엔 성당이 아닌 줄 알았다. 쾰른의 대성당이나 파리의 노트르담, 울름 성당은 어두운 빛의 벽과 거기에 새겨진 이상한 문양들로 지어졌었는데. 브라티슬라바의 성당은 하얀 벽과 빨간 지붕, 그리고 마치 자로 잰듯한 삼각형 지붕과 직각의 벽으로 지어져 있었다. 뭔가 장난감 레고로 건물을 지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앞서 말했던 유럽의 성당들은 마치 "이 건물을 봐, 엄청나지? 무섭지? 너는 신을 믿어야 돼!" 라며 공포감을 조장하는 느낌이었다면 브라티슬라바의 성당은 "힘들 때 언제든지 찾아와 주세요." 라는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브라티슬라바의 구시가지


시내를 걷다 보니 어느덧 구시가지까지 왔다. 저 첨탑 옆에는 아주 작은 샛강이 흐르고 있고 첨탑을 넘으면 시내를 벗어나는데 이를 보아 저 첨탑이 아주 오래전 구시가지의 성문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사람이 몇 명 있음에도 왜 이렇게 한적한가 생각해봤더니 브라티슬라바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없다. 12월쯤 되면 크리스마스 마켓을 시내에 열어서 이것저것 구경을 할 수 있는데 신기하게도 브라티슬라바에서는 본적이 없다. "길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놓은걸 보면 성탄절을 지내는 거 같기는 한데... 왜 없는 거지?". 어쩌면 슬로바키아 사람들도 나처럼 북적거림 보다 조용한 사색을 좋아하는 거일 수도 있다. 덕분에 조용하게 시내 관광을 마치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사색을 느끼며 중앙역으로 가는 길



동남아풍의 성당



헝가리행 기차를 타기 위해 천천히 중앙역으로 가보기로 한다. 이번엔 트램을 타지 않고 걸어서. 길을 걷다 보니 동남아풍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성당 같은데 다른 성당에 비해서 약간 협소하다. 마카오에서 봤던 성 바울 성당처럼 혹은 필리핀 살 때 봤던 교회들처럼 간단한 컬러의 페인트와 첨탑이 다른 건물들에 비해서 눈에 띄었다. 내가 알기론 동유럽은 동남아처럼 스페인의 지배를 받지 않았는데... 옆에 야자수들만 심어져 있으면 여기가 동남아라 해도 믿을 거 같았다.


그리 살코 비흐 궁전


길을 걷다가 가로로 길게 뻗친 건물을 발견했다. 대게 이런 건물은 옛날에 사용하던 궁전이나 의회 건물인데 아마 경호원들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예전 궁전이고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구글맵을 켜서 보니 건물 이름은 그리살코비흐 궁전. 놀랍게도 지금 대통령궁으로 사용하고 있단다. "아니 나라 대통령이 사는 곳인데 경호원이 없단 말이야?" 보통 대통령이 거처하는 곳은 경호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긴 경호원은커녕 궁전 입구도 활짝 열려있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저곳에 슬로바키아의 수장이 살고 있다니. 한편으론 정말 놀랍고 여기가 진짜 한 나라의 수도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이때까지 구경하는 동안 그냥 유럽의 일부 소도시인 줄만 알았는데...


중앙역으로 가는 길에 발견한 고층건물


브라티슬라바 거리 곳곳에 새로 지은듯한 고층 건물들이 들어왔다. 한 20~30층 정도? 우리나라로 치자면 저런 건 고층빌딩도 아니지만 유럽으로 치면 저 정도면 완전 현대 뉴 테크놀로지의 집합체이다. 세계 여러 나라를 가봤지만 동아시아처럼 고층빌딩들이 도시 전체에 즐비해 있는 건 보기 드물다. 유럽에서는 끽해봐야 독일 프랑크푸르트, 파리의 라데팡스 지역 정도? 유럽은 동아시아와는 달리 인구수도 적고 땅도 넓기 때문에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고층빌딩을 지을 필요는 없었을 거다. 고층빌딩 지어봐야 환경파괴와 눈요기가 좋은 거밖에 없을 거니까.


설렁설렁 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에 도착했다. 이제 헝가리행 열차를 타고 부다페스트로 향할 것이다. 브라티슬라바, 확실히 어느 도시보다 볼 게 없고 덜 알려진 게 사실이다. 유명한 랜드마크도, 백화점도, 지하철도 없다. 그러나 특유의 한적함과 평온함을 풍기는 매력은 한번 맛보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특히 오늘같이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해가 활짝 비춘다면 이 도시를 절대 잊지 못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내가 칭한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도시", 혹시라도 독일 생활중에 머리 식힐일이 있으면 당일치기가 아닌 하룻밤을 머물면서 안정을 취하고 싶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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