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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필 Feb 24. 2021

서울에 슈퍼히어로가 나타난다면

작문 연습 

서울에 슈퍼히어로가 나타난다면





오늘도 마스크를 쓴 채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설 때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려야 한다. 혼자 지하철을 타본 지도, 카페에 앉아 맘 편히 커피를 마신 지도 내겐 아주 오래된 일이다. 언제 친구들을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산다. 내 말투, 표정, 행동들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다. 이렇게 모두의 관심 속에 살아가는 나를 사람들은 슈퍼히어로라 부른다.


집을 나서자 오후 4시의 나른한 햇살이 비췄다. 햇살을 맞으며 길을 걸으니 얼마 못가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얼굴 절반을 가린 마스크 때문에 더 덥게 느껴졌다. 공원 앞 편의점에 들어가 시원한 페트병 생수 한 통을 샀다. 그리고 공원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며 물을 마셨다. 살짝 벗은 마스크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귀찮을 정도는 아니다. 비록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야 하지만 나는 이렇게 공원에 나오는 걸 좋아한다. 공원을 걸을 때면 내가 평범한 삶을 사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도 그런 나를 보면 그냥 산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거다.


집에 들어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뉴스란에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슈퍼히어로 A 씨, 공원에서 페트병 사용... 환경 생각 안 해...". 기사를 본 순간 아차 싶었다. 아까 공원에서 생수를 산 게 사진에 찍혔다. 어이가 없었다. 이게 문제가 될 일인가? 그냥 생수 하나 사 마셨을 뿐인데. 악의적인 기사임에 틀림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될 리 없다.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기사를 클릭했다.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환경파괴범인 듯ㅋㅋㅋ", "관상이 딱 안 좋아 보이네 ㅋㅋ".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나를 비난하는 댓글들이 수백 개씩 달리기 시작했다. 비난을 넘어 비하하는 댓글에는 좋아요가 2천 개씩 달린 것도 있었다. 마음이 쓰리긴 하지만 응당 슈퍼히어로라면 이 정도 악플은 감내해야 한다. 별로 논란이 될만한 일이 아니니까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혀질 거다.


시간이 갈수록 내 논란은 잊히긴커녕 더욱 커졌다. 사람들은 이제 내 과거까지 들먹이며 나를 비난한다. 내가 중학교 때 행실이 안 좋았다는 등, 익명 커뮤니티엔 과거 동창이 쓴 듯한 글과 함께 증명이라도 하듯 졸업사진이 올라왔다. 물론 이 글 중 진실인 글은 없다. 머리가 아파온다. 나는 이제 내 행동을 넘어 과거까지 부정당하고 있다. 이대로는 성이 안찬다 싶더니 사람들은 내 가족들까지 건드렸다. 이번엔 아빠가 타는 자동차 기업이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이라고 한다. 논란은 내가 아니라 사람들이 만드는거 같았다. 그들의 눈에 나는 악당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나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끊임없는 비난에 이젠 내가 진짜 잘못한 건지 의문이 생겼다. 그저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이 모든 논란을 빨리 잠재우고 싶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욱 신중하겠습니다".  나는 결국 내 개인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사과문을 올리자 빠르게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됐겠지,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댓글을 확인했다. "문제 커지니까 사과하네", "관상은 사이언스ㅋㅋㅋ 지구야 우리가 미안해 ㅠㅠ". 사람들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그들은 이제 내 사과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놈의 관상은 대체 무슨 관상이란 말인가. 사과하라는 말에 사과한 건데 뭐가 문제인 걸까. 끝내 그들은 나의 자질을 의심하고 슈퍼히어로를 그만 두길 요구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슈퍼히어로 하지 않는다. 나는 금세 그들에게서 잊혔고 이젠 마스크는 끼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내가 그만둔 후에도 사람들은 나에 대한 이야기로 연일 시끄러웠다. 마녀사냥이라고 나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생겼지만 나는 응답하지 않았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내가 페트병을 썼는지 안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가십거리가 필요했을 뿐. 그들이 나에게서 관심을 완전히 거뒀을 때 그들은 새로운 슈퍼히어로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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