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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로 Sep 18. 2020

내가 맞는 줄 알았어, 정말

착오

착오 (錯誤)

- 주관적 인식과 객관적 사실이 일치하지 않는 일


나는 연구원이다. 연구원은 분야에 따라 다양하지만, 나는 그중 의약품 (치료제)을 연구, 개발하는 분야다. 연구원을 내 직업으로 결정한 이유. 특히 의약품을 개발하는 연구원이 된 이유는 내가 좋은 치료제를 만드는데 한몫을 해내겠다는 원대한 꿈에서 시작되었다. 


연구원이 된 내 업무의 대부분은 실험이다. 실험을 통해 어떤 후보군이 보다 우수한지를 밝히는 것이 일이다. 실험에는 늘 결과가 도출된다. 그 결과는 좋은 결과일 수도 혹은 나쁜 결과일 수도 있다. 실험을 통해 좋을 것이라 예상했던 후보군이 좋지 못한 결과를 보이는 경우는 많다. 실험의 정확도만 검증된다면 그 결과는 신뢰할 수 있고 좋은 결과다. 연구원마다 나쁜 결과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나쁜 결과는 실험의 정확도가 검증되지 않아 실험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결과다. 실험의 정확도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실험자에 대한 신뢰성도 확보할 수 없다. 그만큼 실험 자체의 신뢰성을 확보해 놓는 것이 연구원에게는 필수다.


지난주, 내가 진행한 실험에서 정확도 0%, 데이터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자주 해오던 실험이었고, 오차도 거의 없는 까다롭지 않은 실험이었다.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처음부터 다시 진행했다.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이 진행했으니 결과는 동일하게 정확도 0%. 나는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모든 프로토콜 (실험절차)이 머릿속에 있었고, 그동안 해왔던 대로 동일하게 진행했다고 생각했다. 문제 있을 만한 부분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후 3번이나 동일하게 실험을 진행했고, 3번의 결과는 모두 동일하게 정확도 0%였다. 이 결과를 직장 상사인 A에게 가져갔다.


A와 나는 실험 방법서를 함께 보며 실험을 다시 진행했다. 나는 실험을 진행하고 A는 실험 방법서를 보며 나의 방식과 비교했다. 문제를 발견했다. 실험 방법서에는 B 시약을 50을 넣으라고 적혀있지만, 나는 60을 넣고 있던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나를 지나치게 신뢰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동안 했던 나의 진행방식에 문제가 없었고, 내 문제가 아니라 분석 기기의 에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일한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한 것이다.


자주 하는 일이니까, 루틴 한 업무니까 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일어난 실수였다. 스스로 자만했기 때문에 벌어진 실수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일로 실험 결과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1차적으로 내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석 기기나 저울, 피펫 같은 소모품들은 매 주기별로 정확도 검증을 받아 자체 신뢰성을 확보한다. 하지만, 연구원 개인은 자체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좋은 치료제를 만들어보겠다는 원대한 꿈보다 매일 자가 점검을 통해 착오를 줄이자는 현실적인 목표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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