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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식 Jan 05. 2020

산책하는 고양이

개냥이 소니

사람 앞일 모른다더니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고양이 집사가 되고 고양이에 관한 글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앞글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소니는 겨울이 시작되던 어느날 비쩍 마르고 눈병까지 있는 상태로 우리 집을 찾았다. 눈이 아파 늘 찌푸리고 있었고, 왼쪽 발바닥이 날카로운 것에 찔려 절뚝절뚝 걷는 상태였다. 게다가 이미 우리 집 덱과 마당을 차지하고 있던 스노우 일당으로부터 수시로 겁박을 당한 터라 이 놈이 우리 집에 정착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결국 소니는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우리 '집고양이'로 자리를 잡았다.


절박함이 모든 것을 이겨낸 것이다. 고난과 핍박을 견뎌낸 소니에게는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생겼고 그 집은 날이 갈수록 아늑해져서 최종적으로 집 안이 따뜻한 담요로 온통 둘러싸인 스위트 홈이 되었다. 아침이면 따뜻한 물과 사료가, 중간중간 츄르와 막대 간식이, 이따금씩 연어캔과 육수용으로 쓰고 남은 멸치가 특식으로 주어지는 곳, 이 곳에서 소니는 점점 건강을 되찾았다.

[소니의 출현과 그 이전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여기로]


처음 만났을 때의 소니. 비쩍 마른 모습에 얼굴은 헬쓱, 눈병으로 늘 눈물 자국이 있었고 눈도 잘 못 떴다.


소니가 집에 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눈병이 계속 심해져 집사들이 '더는 안 되겠다'라는 결심을 내렸다. 가까운 동물약국을 찾아 눈에 넣는 안약과 항생제 등을 샀다. 문제는 과연 안약을 넣을 수 있을까 하는것. 소니는 집사들에게 등과 배, 목덜미 등을 내주긴 했지만, 품에 안기지는 않는다. 안약을 어떻게 넣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무력을 동원하기로 했다. 목덜미를 살살 어루만지다가 아빠가 소니를 눌러 제압하면 소니가 가장 애정하는 아들, '민창 오빠'가 안약 투입을 시도하기로 한 것. 작전은 계획대로 시행됐으나 소니가 격렬히 저항하는 바람에 안약은 한 쪽 눈에만 투여됐다. 그나마도 눈을 감은 것 같기도 해서, 결국 안약 투입은 실패. (작전의 후유증으로 소니는 이 작전에서 악역을 담당한 나를 한동안 멀리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항생제가 먹혔다. 약을 갈아 사료에 섞어 먹인 지 하루 만에 소니는 찌푸린 눈을 살포시 뜨더니 사흘째 되는 날에는 눈병을 완전히 이겨냈다. 아마도 난생 처음 먹은 약이어서 약발이 잘 듣는 것 같았다.


약의 효과는 놀라웠다. 소니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얼굴에서 불쌍한 표정은 싹 사라졌고, 늘 찌푸렸던 눈은 호기심에 가득 찬 어린 고양이의, 크게 뜬 눈이 되었다. 활동반경이 넓어졌고 제 키보다 훨씬 높은 소나무, 감나무에 훌쩍 뛰어 올라 새 잡기에 열중하기도 했다. 이따금씩 와서 괴롭히는 스노우가 문제였지만, 그 사이 키도 크고 살도 오른 소니는 제법 다른 고양이들과는 맞짱을 뜨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자기와 비슷한 덩치의 동글이는 제압하는 눈치였다.


고양이에게는 자기 영역이 있다고 한다. 소니에겐 우리 집이 자기 영역이다. 그렇다고 자기 영역에서만 노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들에게도 공유지가 있을 것이고, 어린 고양이 소니에게는 무엇보다 친구가 필요했다. 소니의 영역을 조금 넓힐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간 소니의 행동을 관찰해 보니 혼자 가기 두려운 곳이라도 집 주인들이 함께 가 주면 겁을 먹지 않았다. 스노우는 물론 소니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인 달건이가 오더라도 옆에 집 주인이 있으면 떨지 않았다. (심지어 들이대기까지 했는데 그 후과로 우리가 없을 때 몇 대 맞지 않았나 싶다.) 우선 스노우의 영역인 집 뒤쪽 텃밭부터 소니와 동행했다. 예상대로 소니는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러던 어느날 덱으로 나갔는데 햇볕 쬐며 잘 누워 있던 소니가 후다닥 일어나서 내 앞으로 오는 것 아닌가. 그리고는 내 발 주위를 쪼르르 쪼르르 돌아다니는 것이 뭔가 의사를 표현하는 것 같았다. 놀러 가자는 가? 텃밭 쪽으로 발길을 옮겨봤더니 이 녀석 후다닥 나보다 먼저 그 쪽으로 뛰어 갔다. 그리고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텃밭 옆 시멘트 위에서 뒹굴기를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산책 가자는 게 맞았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영역을 넓혀 보기로 했다. 집 위 주차장 쪽으로 움직였다. 소니는 쪼르르 따라왔다. 시멘트나 벽돌 바닥이 있으면 뒹굴기를 했고 처음 보는 나무는 발톱으로 긁어줬다. 낯 선 영역으로 가면 몸 속의 일부를 배출해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소니가 그러고 노는 사이 옆에서 가만히 있어 주기만 하면 됐다.



이 때부터 매일, 가끔은 하루에도 몇 번씩 소니와의 산책이 시작됐다. 주차장으로, 왼 쪽 옆 집, 그 앞 집, 그 옆 집으로 점점 영역이 넓어졌다. 소니와 함께 산책하는 모습을 본 이웃 주민들도 재미있어 했다. "고양이가 주인과 산책을 하네요."라는 반응에서부터, "이 고양이가 우리 집에도 왔어요.", "우리 집에선 물만 먹고 가던데요..." 등등. 우리 집에 정착하기 전 여기저기 들렀던 모양이고, 정착 후에도 가끔 혼자 마실을 다닌 것 같다. 워낙 사람을 잘 따르는 놈이라 다들 소니를 기억하고 있었다.


소니는 특히 밤 산책을 좋아한다. 고양이가 야행성이라 그런 듯하다. 그런데 낮에는 나로부터 20~30미터까지도 멀어져 혼자 놀던 녀석이 밤에는 내 곁에 바짝 붙어 다닌다. 혼자 밤에 돌아다녀본 결과 무서운 것들을 꽤 경험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우리 동네에는 밤이면 덩치 큰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개들이 소니한테는 공포의 대상일 것이다.


어쨌든 여러 날 산책 결과 소니는 점점 대담해졌고 마침내 주차장 뒤 산 쪽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얼마나 잽싼지 산으로 뛰어들어가면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산은 동네 길고양이들이 주로 노는 곳이다. 다른 고양이 소리가 들리면 귀를 쫑긋 세웠다가 그 쪽으로 슬금슬금 움직이는데, 친구를 찾는 게 아닌가 싶었다. 산으로 들어간 소니가 한동안 나오지 않아 기다리길 포기하고 돌아왔다. 이러다 안 오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됐지만, 한참을 논 소니는 무사히 귀가했다. 이렇게 슬슬 친구들도 사귀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소니를 집으로 들일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우리 집 안에서만 지내는 것보다 소니에게는 이렇게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고양이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동네 주민들도 대부분 고양이한테 친절하고 들개도 없는 동네라 소니한테는 최적의 환경이다. 딱 하나, 우리 집 터줏대감이었던 스노우와 관계가 문제인데... 소니가 얼른 자라 스노우도 함부러 못 건드리는 수밖에 다른 길은 안 보인다. 둘 사이에 힘의 균형이 생겨 평화가 찾아오면 스노우도 다시 잘 대해 줄 텐데. 어느 새 요주의 고양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스노우가 소니와 화해를 해서 다시 단골 식객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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