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식 Feb 12. 2022

파스타가 이렇게 쉬웠다고?

요리 일기 첫 번째 이야기: 푸타네스카

'어떡하지? 큰일이다.'


아내에게 맛있는 파스타 만들어 주겠다고 큰소리 친 지가 한 달이 되어간다. 그냥 파스타도 아니고 맛있는 파스타. 그런데, 소스 사서 대충 만드는 게 아니라 직접 소스를 만드는, 전문식당 못지 않은 파스타를 과연 내가 만들 수 있을까? 큰소리는 쳤지만 엄두가 안 나 한 달을 이리저리 미루기만 했다. 도저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내도 딱히 큰 기대는 안 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는 호언장담한 걸 한 번 해내고 싶어졌다. 운명이었을까?


발단은 집 근처 이탈리아 음식점이었다. 서울 교외의 전원주택에 사는 터라 집 근처 맛있는 식당이 생기면 매우 반갑다. 게다가 시골 마을에 파스타 식당이라니. 꼭 가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대학원 동기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겠다고 해서 이 집으로 갔다. 식당은 햇볕이 잘 드는 밝은 곳에 정갈하고 품위있게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 식구까지 가서 이것저것 시켰는데, 메뉴 대부분이 맛있었다. 해산물 요리, 피자, 파스타... 특히 '계란 노른자로만 만든' 까르보나라를 먹은 아들은 경이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크림 소스 까르보나라만 먹다가 처음 먹었는데 너무 맛있다는 것이었다. 파알못(파스타 알지 못함)인 나는 까르보나라 소스를 계란으로 만드는 줄 이날 처음 알았다. 게다가 정통 이탈리안 방식이라지 않나!


문제는, 음식은 맛있었는데 식당은 불편했다는 데 있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식당의 명예와 관련이 있으니 이쯤 하고, 요약하자면 주문 과정 등 여러 다른 요소 때문에 내가 몹시 불쾌해졌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손님인 내가 할 수 있는 조용한 복수는 식당을 다시 찾지 않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이 아쉽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오면서 아내에게 나의 결심을 이야기했다. "다시는 이 식당엔 안 올 거야."


아내와 나 모두 음식에 민감한 터라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젊었을 때는 식당에서 불쾌함을 느끼면 음식을 두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 성질 급한 남편 때문에 아내는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그냥저냥 참고 같이 다니면서 이 나이 되도록 살아주고 있다. 나이 들면서 불같은 성질은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식당이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찾지 않겠다'며 소심한 복수를 하곤 했으니, 이번 일도 새삼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아내의 반응이 달랐다. "기념일 같은 때만 가끔 오면 안 될까?"


허걱! 음식이 진짜로 맛있었던 모양이다. 웬만해선 이런 소리를 잘 안 하는데.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사나이가 한 번 뽑은 칼을 그냥 넣을 수는 없지 않는가. 문제의 큰소리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파스타 그거? 내가 해 줄게. 까르보나라도 해 줄게."


사실 나는 파스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평소 밥을 많이 먹는 편인데 파스타는 내게 너무 양이 적었고, 한 끼도 안 되는 것 치고는 너무 비쌌다. 이탈리아 식당은 그래서 언제나 (양 적은) 여성들이 가자고 해야 가는 곳이었다. 특히 까르보나라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나오는 넉넉한 양의 크림 소스 까르보나라밖에 안 먹어봤다. 이런 내가 계란으로 만든 이탈리아 정통 까르보나라 소스를 어떻게 만든단 말인가? 시중에 소스를 판다면 몰라도.


난감했지만 문제의 그 식당을 다시 갈 수는 없었다. 그날 아내의 표정으로 보아하니 내가 파스타를 안 만든다면 언젠가 꼭 다시 가자고 할 거 같았다. 구글링을 시작했다. 파스타 만들기, 파스타 레시피, 정통 이탈리아 까르보나라 만들기... 예상대로 레시피는 엄두가 안 났고, 이탈리아 요리에 쓰이는 재료도 너무 복잡했다. 그만 포기할까 하며 전의를 상실해 가는 순간, 유튜브 동영상 하나가 눈에 띄었다. "토마토소스 필요없는 100% 순수 토마토 스파게티"라는 제목의 요리 영상이었다. 영상을 보니 어쩌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큰소리 친 까르보나라가 아닌 게 마음에 걸렸지만 "1840년대 나폴리 원조 토마토 스파게티 푸타네스카"라고 하질 않나. 이탈리아 원조니까 이 걸 만들면 아내도 넘어가 줄 듯 싶었다.


<푸타네스카> Puttanesca 

이 요리의 핵심은 토마토를 으깨 즙을 내고 끓인 뒤 엔초비로 간을 한다는 점이다. 엔초비가 없으면 마른멸치나 멸치액젖을 써도 된다. 난생 처음 파스타를 만들다 보니 집에 없는 게 많았다. 제일 먼저 올리브오일. 최상급 품질이라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써야 한다는데 다행히 싼 게 많았다. 비싸면 더 맛있겠지만 그 건 차차 할 일이고. 토마토 외에 마늘 좀 있어야 하고 블랙올리브, 케이퍼, 이탈리아 매운 고추인 페페론치노 말린 것도 있어야 한다고 해서 모조리 다 샀다. 마트 구조 익숙하지 않은 남자 분이라면 온라인쇼핑몰 쓰기길 권한다. 찾다찾다 케이퍼 못 찾아서 결국 온라인으로 샀다. 마지막으로 바질과 난생 처음 들어보는 파르미지아오 레지아노 치즈도 있어야 한다고 해서 이 것들도 샀다. 바질은 집에서 키우면 좋겠지만 없으면 마트에서 5~6장에 2천~3천원 하는 걸 사시길 권한다. 있고 없고 맛의 차이가 크니까. 치즈는 인터넷으로 사셔도 된다. 치즈 폼 나게 갈 수 있도록 '치즈 그레이터'라는 것도 하나 사시길. 


어쩌면 자존심 때문에 시작한 첫 파스타 만들기에 엄청나게 많은 신문물이 들어갔다. 온라인으로 사다 보니 블랙올리브나 케이퍼 같은 건 양이 너무 많았다. 온라인쇼핑몰에서 과감하게 지르면서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함이 남았다. 무엇보다 유튜브 보고 따라 한다고 맛이 제대로 나올까 걱정됐다. 조심조심 토마토를 깍뚜기 모양으로 썰고 난생 처음 마늘 편썰기를 해보고, 느리지만 영상에서 시키는대로 하나하나 했다. 토마토를 손으로 으깨서 올리브유에 익힌 뒤 멸치액젖을 넣으면서는 도대체 이게 어떤 맛을 낼까 궁금했다. 이렇게 영상 보고 뚝딱뚝딱 따라 한 첫 파스타, 나의 푸타네스카가 완성되었다. 


대학 입시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의 심정으로 요리를 냈다. 중간중간 간을 보면서 '생각보다 괜찮은데' 했는데 가족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내는 놀란 토끼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맛있어" 라면서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짓자 "진짜 맛있어"라는 추임새를 더해 결코 과장된 칭찬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에이 설마 아빠가 하며 심드렁하던 아들도 "오 이거 맛있는데"라며 포크질이 빨라졌다. 긴장을 풀고 나도 다시 맛을 봤다. 생 토마토가 주는 신선한 맛에 멸치의 감칠맛, 블랙올리브와 새콤한 케이퍼, 향긋한 바질, 치즈의 맛이 조화롭게 섞인 환상적인 맛이었다. 대성공이었다. 지금까지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했던 멋진 맛이었다. 이런 걸 내가 만들다니. 


2020년 6월 21일, 이 날은 내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지금까지 몰랐던 놀라운 행복과 성취를 느낄 출발점. 다만, 요리가 앞으로 내게 얼마나 큰 선물을 줄 지 이 때는 몰랐다. 그저 영상을 따라 했는데 이렇게 환상적인 음식이 만들어졌다는 게 신기했을 뿐이다.   


아내가 좋아하는 '펜네(penne)' 파스타로 만든 푸타네스카. 이 때만 해도 치즈 그레이터가 없어서 생강 가는 작은 강판에 치즈를 갈았다.

레시피

요리 초보들에게 글로 쓰여진 레시피는 거의 암호문 그 자체다. 따라서 나도 여기서 푸타네스카 레시피를 적을 생각이 없다. 처음엔 글로 된 레시피보다 유튜브 영상 따라 하는 게 더 좋다. 다만, 요리 방법을 간단히만 설명하면 

1. 재료 준비: 토마토, 마늘, 블랙올리브 등등 모든 재료를 다 썰어놓는다. 

2. 파스타 면 삶기: 소금 듬뿍 넣은 끓는 물에 파스타 삶는다.

3. 소스 만들기: 파스타 물 끓이면서 다른 팬에서 올리브유 듬뿍 넣고 썰어놓은 재료를 볶아 소스 만든다.

4. 마무리: 익은 파스타 면을 소스에 넣고 섞는다. 마지막에 치즈 갈아 얹고, 바질 잎 얹어 낸다.


이쯤만 적어도 요리 초보들은 자신감을 상실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 마시고 이 길을 걸어보시길 권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나도 그랬는데, 지금은 '요섹남' 소리까지 듣고 산다. 아래 링크로 가서 영상 보시고 따라 해 보시라. 딱 두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첫째, 없는 재료들? 아까워 말고 사라. 앞으로 파스타 엄청 많이 해 먹게 될 테니까. 둘째,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파스타 요리 생각보다 쉽다. 푸타네스카는 내가 처음 만든 요리라서 처음 소개하는 거지 사실 파스타 치곤 좀 복잡한 요리다.(물론 여러분도 할 수 있다.) 다음에 소개할 까르보나라나 알리오올리오는 매우 간단한 요리다. 그러니 믿고 따라 오시길.


내가 따라 한 푸타네스카 요리 동영상 

검색어: 준TV, 토마토 파스타, 푸타네스카



작가의 이전글 산책하는 고양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