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일기 두 번째 이야기: 까르보나라
모든 남자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남자들은 파스타와 별로 친하지 않다. 식사 시간에 내 주위의 남자들이 "파스타 먹으러 가요"라고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파스타는 양이 적고, 뭔가 좀 비싸다는 느낌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어쨌든 파스타와 거리를 두고 산 인생이라 얼마 전까지는 이탈리아 정통 까르보나라를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탈리아 정통 까르보나라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한 이상 이 숙제를 더는 미룰 수가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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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겁결에 푸타네스카는 성공적으로 만들어 냈지만 까르보나라는 쉽지 않아 보였다. 특히 날 계란과 치즈로 소스를 만드는데, 파스타와 섞을 때 적절한 온도에서 계란 소스를 적절하게 익혀야 하는 부분이 그랬다. 많은 유튜브 영상을 봤지만 설명이 조금씩 달랐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계란이 스크램블처럼 되고, 너무 낮으면 계란의 비린내가 난다. 직접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까르보나라를 좋아하는 아들과 둘이 있을 때 만들어 보기로 했다. 실패하더라도 엄마에겐 비밀을 지키기로 하고.
<까르보나라> 그 것도 이탈리아 정통!
보통 국내에선 베이컨을 쓰지만 이탈리아에선 목살 등으로 염장한 관찰레(Guanciale)나 삼겹살이 있는 뱃살로 만든 판체타(pancetta)를 쓴다고 한다. 생초보이니까 오버하지 않고 베이컨을 썼다. 중요한 건 소스니까.
제일 중요한 소스는 1인분 기준으로 계란 1개, 계란 노른자 1개가 베이스다. 여기에 후추를 뿌리고 치즈를 듬뿍, 아주 듬뿍 갈아 넣는다. 그렇게 해서 마구마구 휘저어 섞어 주면 끝이다. 이렇게 간단한데, 유튜브에는 좀 다른 방식의 설명이 많아 초기 몇 차례는 고생을 좀 했다.
레시피
아주 간단하고 쉬우니 레시피를 공개한다. 무려 이탈리아 정통 까르보나라다.
재료: 파스타, 베이컨, 계란, 치즈, 후추
1. 파스타 삶으면서, 베이컨 먹기 좋게 잘라서 팬에서 굽는다.
(파스타는 남자 기준 1인분 100g, 여자 기준 80g이면 적당하다. 베이컨은 너무 많지 않게 취향껏)
2. 계란 1개와 노른자 1개를 그릇에 넣은 뒤 후추 뿌리고 치즈는 약간 뻑뻑해질 때까지 잔뜩 뿌려서 섞는다.
3. 파스타가 다 삶아지면 베이컨 구운 팬에 옮겨 섞은 뒤 계란 소스를 부어 섞는다. 좀 뻑뻑할 텐데 농도는 파스타 삶은 면수로 조절한다.
4. 완성된 파스타에 치즈와 후추를 조금 더 갈아 얹는다.(안 해도 됩니다.)
라면 끓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맛은 어떨까? 계란의 비린맛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후추가 그 걸 잡고 치즈가 풍미를 더해 준다. 아주 고급스러운 맛이다. 이 맛을 모르고 크림 소스를 까르보나라인 줄 알고 먹었으니...
사실 처음엔 비록 약불이지만 팬이 달궈진 상태에서 소스를 붓는 바람에 몇 번 실패도 했다. 계란 소스가 몽글몽글 스크램블처럼 됐는데, 신기하게도 맛은 괜찮았다. 그러다 이탈리아 사람인 방송인 샌디가 까르보나라 만드는 영상을 보고, 불을 끄고 난 뒤 섞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푸타네스카를 먹은 뒤에도 아빠의 요리 실력에 회의를 갖고 있던 아들은 까르보나라까지 한 번에 성공을 하자 아빠에게 무려 존경과 감사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크림 소스 까르보나라보다 더 맛있는 '이탈리아 정통' 계란 소스 까르보나라를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다는 데 환호하면서. 심지어 아빠가 해 준 까르보나라를 몇 번 먹더니 나중엔 자기 혼자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당.연.히. 할 수 있다.
치즈는 양젖 치즈인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써야 정통이라고 한다. 그러나 비싼 돈 주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사놨으니 그냥 이 걸로 썼다. 파마산 치즈를 쓴다는 분도 많았는데, 아무래도 맛이 좀 떨어질 것 같다. 베이컨 구울 때 편 썬 마늘, 양송이 버섯을 좀 넣을 수도 있는데, 처음 하는 분들은 하지 마시라. 최대한 간단하게 해도 상당히 맛있기 때문이다.
다만, 베이컨보다는 관찰레나 판체타를 쓰면 더 맛있다. 관찰레는 국내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렵게 구해 만들어 봤고, 판체타는 온라인이나 코스트코에서 판다. 베이컨보다 크게 비싸지 않은데, 까르보나라로 인연을 맺게 된 판체타는 이후 다른 요리의 필살기로 다시 등장한다.
참, 계란 노른자만 써서도 만들어 봤는데 큰 차이를 못 느껴 우리 집은 그냥 흰자 노른자 적당히 섞어서 쓴다. 흰자 걸러내서 버리는 게 아깝기도 하고.
방송인 샌디가 서울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의 이탈리아 출신 셰프에게 까르보나라 배우는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