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

벳푸에서 살아보기 6일 간 느낀 것

by 김도식

지난 연말 일본의 대표적 온천 도시 벳푸를 5박6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이탈리아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우리 부부가 내린 결론은 앞으로 여행은 한 곳에서 적당히 오래 있자는 것이었다. 온천 좋아하는 부부답게 첫 번째선택지는 벳푸였다. 지옥온천 관광지와 벳푸 시내 호텔에서 각 1박씩, 나머지 사흘은 에어비앤비에 올라와 있는 시내 아파트를 선택했다. 호텔의 온천과 카이세키 저녁도 좋았지만 이번 여행의 핵심은 벳푸 아파트에서 현지인처럼 사흘 살기였다. 동네 작은 온천 목욕탕을 매일 오전, 오후에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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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카와라 온천. 탕 내부는 촬영 금지라 구글맵에서 사진 가져왔다.


집 근처엔 기대했던 동네 온천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1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타케카와라(竹瓦) 온천의 입장료는 단 300엔, 하루 두 번 가도 부담이 없을 가격이다. 탕은 성인 5~6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작았고 샤워기조차 없는 옛날 목욕탕이다. 바가지로 물을 퍼서 씻고 잠시 탕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목욕탕에서 요청하는 20분 안에 목욕이 끝난다. 다양한 연령대가 온천을 찾았지만, 역시 50대 이상의 비중이 절반쯤은 돼 보였다. 동네 노인들이 오기 딱 좋은 이런 온천이 벳푸시 곳곳에 숨어 있다.


한국에 비해 디지털화가 늦은 일본이어서, 버스나 기차역 정거장과 관광지 입구에 표 파는 곳이 많은데 여기서 일하는 노인들이 꽤 있었다. 우리가 간 동네 온천 두 곳에도 노인들이 안내를 맡고 있었다.


운 좋게도 숙소 근처에 맛있는 우동 가게와 돈가스(돈카츠가 일본 발음에 가깝지만 표준어는 돈가스) 가게가 있었다. 이 중 돈가스 가게는 78세의 니시모토 마리코 할머니가 운영한다. 식당 이름도 '니시모토(とんかつ)'다. 오이타현의 향토 요리인 토리텐(닭튀김)과 돈가스가 메뉴의 전부이며, 2.7평의 가게는 카운터석 네 자리와 마리코 할머니가 일하는 아주 좁은 주방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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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가게 니시모토'라고 간판에 적혀 있다. 이 집 대표 메뉴인 토리텐을 주문했다.

마리코 할머니와 남편이 약 40년간 운영해 온 식당이다. 토리텐과 돈가스 가격은 세금 포함 550엔, 우리 돈 5천 원 수준이다. 40년간 한 번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가게 밖 안내판을 보면 테이크아웃도 되는데, 이 때는 값이 420엔으로 내려간다. "(재료비가 올라) 힘들지만 값을 올릴 생각은 없어요. 우리 부부 둘이 먹고 살면 되니까." 마리코 할머니가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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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이름도, 가게의 역사도 모두 직접 물어본 게 아니라 이 신문에 실린 이야기다. 실제 할머니는 눈 마주치는 것도 부끄러워 할 정도로 내성적이어서 말 한마디 붙여 보지 못했다. 기사는 2023년 아사히신문 오이타 지역면에 실렸는데, 한 달에 한 번 할머니가 운영하는 벳푸의 식당들을 찾아가 음식을 통해 이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다루는 '식당의 할머니'라는 시리즈다. 오른쪽 사진 속 전화기에 전화선이 연결돼 있는 걸로 봐서 지금도 사용하는 전화기로 보인다. 밥 먹는 도중 기사 사진 속 할아버지가 들어왔는데, 키도 크고 건강해 보이는 잘생긴 노인이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벳푸 시내에서 맛집 찾아 헤매다가 '오이다스시'라는 식당을 우연히 들어갔다. 미리 찾아둔 집이 아니었는데, 상당히 유명한 곳이었다. 딱 두 자리가, 마침 우리가 갔을 때 나는 바람에 예약 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스시를 만드는 요리사는 60대, 그리고 70대로 보이는 남성 두 분이었고 서빙은 70대 혹은 80대로 추정되는 할머니와 20대 여성이 맡았다. 벳푸의 명물인 고등어회(세키사바, 関サバ: 물살이 센 사가노세키 앞바다에서 잡히는 고등어로 육질이 단단해서 인기다.)가 너무 맛있어서 70대 주방장에게 엄지척과 함께 "맛있다"고 했더니 소년 같은 미소로 "고맙다"고 답을 했다. 식당 일이 상당히 고될 텐데, 약간 굽은 허리의 할아버지는 밤 늦은 시간에도 활기차고 정정해 보였다.

오와다 스시.png 사진을 찍지 못 해 구글맵에서 가져왔다. 이 분은 두 요리사 중 젊은 분이다. 더 나이 드신 분 사진은 없었다.

우리보다 고령화 사회가 빨리 왔기 때문에 일본 어딜 가나 노인들이 많이 보인다. 택시 운전하시는 분 대부분이 노인이었고, 이발소를 흘낏 들여다 봤더니 이발사 네 분도 노인, 손님 여섯 분도 노인이었다. 우리가 만난 일본 노인들이 한국의 노인들과 다른 점은 매우 친절하다는 것, 낯선 여행객을 봐도 일단 먼저 웃는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꼰대'의 분위기가 전혀 없었다. 일본인의 특성이겠지만, 그래서 호텔에서, 매표소에서, 식당에서, 택시에서 일하는 노인들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올해부터 1961년 생이 법적인 노인, 만 65세가 된다. 800만 명이 넘는 1961~1970년 생들이 앞으로 줄줄이 노인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나도 그 중의 하나다. 지금 일하는 '좋은 일자리 사무직'을 젊은이에게 넘겨 주고 나도 뭔가 노인에게 걸맞은 일을 할까? 농담처럼 말했던 '이태리 중식당'이나 '든든한 한끼 라면집'을 열까? 사무직 일자리를 젊은이들에게 넘겨 줘 봐야 곧 AI에 대체되지 않을까?


편안했던 벳푸 여행을 되돌아 보니 맥락없는 상념만 꼬리에 꼬리를 문다. 벳푸 여행기 1편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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