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푸 맛집 탐방 실패기

벳푸에서 살아보기 6일간 느낀 것

by 김도식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가면 관광지보다 현지 시장부터 가는 우리 부부이므로, 벳푸 맛집 탐방은 온천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마늘을 적절하게 쓴 오이타현의 대표 음식 토리텐(닭튀김)과 벳푸의 명물 고등어와 전갱이 회가 특히 유명했다. 구글맵으로 갈 만한 이자카야와 토리텐 전문점 등 맛집 리스트를 미리 만들어 뒀다.


첫 이틀은 호텔 카이세키 저녁이었으므로 주는 대로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됐다. 오이타가 본산이라는 보리소주를 곁들이니 저녁마다 행복이 입 속으로 들어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문제는 벳푸 중심가(시장 주변) 맛집 탐방에서 시작됐다. 미리 찾아놓은 식당은 가는 곳마다 만석이었다. 7~8군데를 다녔으나 모조리 문전박대를 당했다. 헉! 검색 과정에서 "예약 필수"라는 리뷰가 있는 곳이 꽤 있었으나 '굳이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에 그런 집은 걸러냈는데.


그렇다고 허름한 선술집이나 담배 연기 자욱한 이자카야, 손님이 아무도 없는 식당엘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작전을 바꿔 오늘은 '맛집 기대치'를 80% 정도로 낮춰 아무 곳이나 가고, 내일 또는 모레 오는 걸로 예약하자. 그래서 거절당한 맛집들을 다시 돌았으나... 가고 싶은 식당은 토, 일요일까지 모두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중국 관광객이 거의 없을 테니 붐비진 않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식당마다 내국 관광객과 현지인으로 가득차 있었다. 허탈한 마음에 빈 자리 막 생겼다는 한 식당에 들어갔으나 맛집이라기보다는 술로 유명한 집이었고 솔직히 음식은 별로였다.


이쯤 되면 우리 부부에겐 대참사가 발생한 셈이다. 일부 맛집에서는 저녁 9시쯤 '2부'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때까지 배를 곯을 수는 없는 일. 꼬박 만 하루를 고민한 끝에 (마트에 신선한 음식 많던데 그냥 사 먹을까?) '무대뽀 정신'으로 다음날 다시 부딪혀 보기로 했다. 무대뽀이긴 하지만, 조금은 영리하게, 6시 손님이 어쩌면 일찍 자리를 뜰 시간인 7시 반쯤 여기저기 맛집 문을 두드려 보자. 리스트에는 없었지만 다시 검색해서 괜찮아 보이는 식당까지 범위를 넓혀 보자. 운이 좋은 건지 벳푸가 우리를 완전히 내치진 않기로 한 건지, 서너 군데 문을 두드린 끝에 '오이다(大和)스시'란 곳에 마침 자리가 났다. 알고 보니 이 집도 '금토일 예약 완료'였는데 '6시 손님이 일찍 자리를 뜬' 행운이 찾아온 것이었다. 아이고.


벳푸 1편에서 살짝 소개를 했는데, 초밥집이었으나 이 집의 최고 음식은 고등어와 전갱이 회였다. 아직 벳푸의 세키사바(関サバ: 물살이 센 사가노세키 앞바다에서 잡히는 고등어)를 안 드셔본 분들을 위해 짧게 설명하자면, 흐물흐물한 고등어 회가 아니라 마치 갓 잡은 돌돔의 식감을 갖고 있는 훌륭한 음식이다. 회 마니아라면 꼭 한번 드셔보시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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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간을 얹은 쥐치 무침, 초밥 모듬, 오른쪽은 세키아지(전갱이, 사진 위)와 세키사바. 60대 70대 노인들이 썰어 낸 회는 두툼했고, 스시도 엄청나게 큰 편이었다.

어렵사리 하루 저녁 맛집은 성공했으나 다음날인 저녁에도 행운이 이어질 것인지는 자신이 없었다. 또다시 찾아온 고민. 마트에 신선한 음식 많던데 그냥 사 먹을까? 사실 첫 날 저녁 실패 후 마트에서 음식 사서 먹어봤는데... 까다로운 우리 기준치에는 영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벳푸에서 마지막 저녁인데... 해서 우리가 '과감하게' 선택한 집은 벳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토리텐 식당이었다. 예약 안 받고 최소 30분을 줄을 서야 하는 집으로, 여행 유튜버나 블로거의 추천이 가장 많은 곳이다. 사실 우리는 이런 식당은 잘 안 간다. 맛이 너무 대중적이거나 대개 평에 비해 음식이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30분 대기 끝에 들어간 식당은 토요츠네 본점. 관광객들 사이에 가장 잘 알려진 벳푸 식당일 것이다. 대표 메뉴인 토리텐 정식은 유명세에 걸맞게 맛있었고 기대하지 않았던 고등어 회, 전갱이 회도 상당히 괜찮았다. 알고 보니 이 집도 세키사바가 맛있기로 유명한 집이었다.

KakaoTalk_20260108_170810894_05.jpg 내가 고른 토리텐 정식.

황홀한 음식으로 벳푸에서 사흘 저녁을 즐겨보자는 계획은 실패했으나, 지나고 보니 또 그럭저럭 맛집 순례를 다닌 셈이 됐다. 하지만 벳푸 맛집은 미리 예약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바람에 아쉬움은 많이 남는다. 나의 실패가 우리처럼 맛집 탐방을 즐겨 하시는 분들께 좋은 정보가 됐으면 좋겠다.


중국 관광객도 안 온다는데 왜 이렇게 예약이 꽉 찰까? 원했던 맛집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으니 알 수는 없지만 첫 번째 이유는 맛이 아닐까 싶다. 전채와 계란찜, 회나 스시, 튀김류, 생선구이 등등 음식은 비슷비슷할 텐데 내가 가 본 일본 식당은 대부분 자기만의 색깔과 맛의 '킥'이 살아 있었다. 예를 들어 계란찜(자완무시)만 해도 익힘의 정도와 육수, 단짠의 맛, 안에 들어 있는 새우나 전복 같은 내용물이 집집마다 제각각 달랐다. 두 번째는 아마 가격일 것으로 짐작한다. 검색했던 식당 대부분 1인당 10만 원 전후면 즐길 수 있는 코스요리 집이었다. 5만~10만 원 정도가 마음 먹고 맛있는 저녁을 즐기기에 적당한 가격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다음에 또 벳푸를 가게 된다면 한 달 전쯤 기필코 예약을 하리라. 문제는 내가 일본어를 못 하고 벳푸 맛집의 주인 대부분이 영어가 서툴 텐데, 어떻게 전화 예약을 하지? 닥치면 일단 전화부터 하고 보는 '무대뽀' 시도를 하겠지만, 뛰어난 집단지성에 기대면 더 좋은 대책이 있지 않을까 싶다. 좋은 정보를 갖고 계신 분이 있으면 한 수 가르침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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