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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그레이스콘 Mar 16. 2021

알고 보면 울고 있는 애가 제일 열심히 잘함.

#마흔여섯 돌아보기 01.

겁이 많은 편이다. 특히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도전에 앞서 실패할 확률을 항상 먼저 생각하고, 그 경우 받을 상처까지 미리 시뮬레이션한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지나치게 고민하고, 결심에서 시작까지 많은 시간을 ’재며‘ 보낸다. 대학입시나 취직처럼 ’반드시 해야 했던 일‘은 미처 고민할 여유 없이 임했지만, 이직(移職)이나 여행, 심지어 연애마저도 언제나 시작에 앞서 고민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썼다. 그중에는 걱정만 하다가 도전하지 못한 것도 있다. 그리고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대비하여, 모든 과정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잘 말하지 않는 편이다.  

   

회사에서도 그랬다. 상사가 새로운 일을 시킬 때,“‘네! 할 수 있습니다!”라는 대답보다는 “한 번 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로 응대했다. 그렇다고 무능력했던 것은 아니다. 괜히 기대하게 하여 실망이 클 것보다는 오히려 묵묵히 해내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게 일을 맡긴 상사는 신뢰 가득한 표정을 짓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과를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예스맨을 기대하는 것이 조직의 심리인지라, 확실히 부서의 애정을 받는 직원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실패를 두려워해서, 주변 사람들을 기대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은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원도, 취직도, 유학도, 모두 합격해놓고 집에는 결과만 알려드렸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90% 이상 만족스러운 확신이 없을 때는 절대 중간에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어머니는 내가 갑자기 말수가 줄어들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아지면, '얘가 뭘 또 새로운 걸 준비하는구나'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혼자 이고 지려던 불안과 두려움은 크고 무거웠다.     


걱정 많은 내 성격이 실패를 반복하는 일상에서 비롯된 버릇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도전한 일 중에는 확실히 실패보단 성공이 많았다. 실패의 정의를 '도전에 대한 부정적 결과'라 정의한다면, 내 인생에서 '실패'라 부를만한 일은 그해 합격률 8.5%의 건축사 시험에서 떨어졌던 일이 전부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험을 앞두고서 정작 한치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워낙 합격률이 낮기로 악명높은 시험이니, 재수, 삼수 정도는 각오하고 도전하는 시험이라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니 특별한 걱정 없이 '그냥' 시작해버렸다. 그리고 보기 좋게 떨어졌다.      


바꾸어말해 걱정을 많이 하고 시작했던 도전이라면 대부분 성공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처음부터 깜냥이 되지 않는 일에는 도전조차 하지 않았던 덕분이니,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도전했고, 그 밖은 잘 쳐다보지 않았다. 걱정이 지레 포기를 낳았던 셈이다. 나는 항상 이런 내 성격이 불만이었다. 그냥 한번 도전해보면 될 것을.

    

더 큰 불만은 이 걱정이 비단 일의 초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 그렇게 많이 재고 시작했으면 그냥 묵묵히 달려볼 법도 한데, 항상 필요 이상으로 그 과정을 힘들어했다. 내 일기장은 늘 고민과 걱정, 한탄과 주변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다. 돌이켜보면 하나하나 차분히 치를 수 있었던 일들에, 나는 왜 그토록 힘들어하고 스스로 옥죄었을까. 그런데 오늘 아침 우연히, 어느 인스타 피드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면 울고 있는 애가 제일 열심히 잘함”.      


어느 어린이집 재롱잔치의 사진이었고, 여러 아이 중에 울면서도 열심히 율동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그런 제목이 달려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같은 제목으로 이미 인터넷상에서 유명한 '짤'이라고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유치원 재롱잔치에 가보면 너무 긴장해서 우는 아이들의 하나씩은 꼭 있다. 그런데 울면서도 끝까지 열심히 한다. 두려움이 가득 찬 표정을 하고 있지만, 눈을 질끔 감고 눈물을 닦아가면서 참 열심히 한다. 어떤 애는 엉엉 대성통곡을 하는데도, 절대 중간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해낸다.      


그만큼 잘하고 싶은 게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앞에서 보고 있을 엄마, 아빠, 형아, 누나, 혹은 동생을 생각했거나, 아니면 옆에서 딱딱 박자에 맞춰 춤추고 있는 친구에게 뒤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겠지. 잘하고 싶은 욕심이 아이를 울게 했다지만, 동시에 더 열심히 하게 원동력이 되기도 한 것이다.      


사실, 나는 작년 한 해가 너무 힘들었다. 누구 하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겠는가마는, 아이를 돌보면서 내 일을 한다는 것은 항상 불만족과 죄책감으로 가득 차 버린다. 그래서 웃는 날보다 짜증스러운 날이 더 많았고,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았다. 크게 부족할 것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데도 누가 나에게 “지금 행복한가”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소리칠 자세의 나날이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본 순간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요즘의 나를 울게 만든 것이 실제의 불행이 아니라 ’모든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울고 있는 나 자신을 미워하지 말고 그냥 열심히 하는 내 모습으로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바꾸어 본다.

맞다. ‘알고 보면 울고 있는 애가 제일 열심히 잘한다’.

나는 울고 있지만... 무대를 뛰쳐 내려오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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