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의 종류

서운함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by 줄리엣 호텔

1.

화요일 오후 3시 42분, 나는 휴대폰을 열고 닫고 다시 열었다.

보낸 메시지는 '읽음' 표시가 떠 있었다. 오전 10시에 읽었다. 벌써 다섯 시간이 지났다. 급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냥 안부였다. "요즘 어때?" 네 글자.

답은 오지 않았다.

나는 서운했다.

아니, 서운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까지는.

2.

감정세탁소 마리양은 내게 물었다.

"손님, 정확히 어떤 종류의 서운함이신가요?"

나는 당황했다. 서운함에 종류가 있나? 서운함은 그냥 서운함 아닌가?

마리양은 빨래를 분류하듯, 천천히 감정을 펼쳐 보였다.

"서운함이라고 하시는 이 감정을 자세히 보시면요, 여기 무시감이 섞여 있고요, 여기는 기대감 상실, 이쪽은 소외감, 그리고 이 얼룩은 불공평감, 마지막으로 이 구겨진 부분은 존재감 훼손이에요."

나는 그제야 보았다. 내가 '서운하다'는 한 단어로 뭉뚱그린 것이, 사실은 다섯 가지 감정의 혼합물이었다는 것을.

3.

무시감은 투명인간이 되는 감정이다.

회의실에서 내가 한 말을 아무도 듣지 않았다. 5분 후, 다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했다. 모두가 "좋은 의견이네요"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서운함은 무시감이었다. 나는 말했는데, 들리지 않았다. 나는 거기 있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 기묘한 투명함.

기대감 상실은 "이번엔 다를 줄 알았는데"의 감정이다.

친구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듣는 척하다가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때의 서운함은 기대감 상실이었다. 이번에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거라고 기대했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또 같았다.

소외감은 나만 빼놓고 세상이 돌아가는 느낌이다.

SNS를 열었다가 우연히 봤다. 가까운 친구들이 모임을 가졌다. 나는 초대받지 못했다. 아니, 초대받았는지도 모른다. 단체 채팅방에서 내 이름만 빠진 채 약속이 잡혔을 수도 있다.

그때의 서운함은 소외감이었다. 세상은 계속 돌아가는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불공평감은 "나도 그렇게 해줬는데"의 감정이다.

생일을 챙겨줬고, 힘들 때 전화를 받아줬고, 부탁을 들어줬다. 하지만 내 생일에는 연락이 없었고, 내가 힘들 때는 바빴고, 내 부탁은 나중에 하자고 했다.

그때의 서운함은 불공평감이었다. 관계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주기만 하고 받지 못했다.

존재감 훼손은 내 가치가 상대의 반응에 의해 깎이는 느낌이다.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건넸는데, 덤덤한 반응만 돌아왔다. "아, 고마워." 그게 전부였다.

그때의 서운함은 존재감 훼손이었다. 내가 쏟은 정성이, 시간이, 마음이,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나는 작아졌다.

4.

마리양은 다섯 가지 감정을 분류한 뒤 물었다.

"이 중에 어떤 서운함이 가장 크신가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화요일 오후의 그 '읽음' 표시는 무엇이었을까?

무시감? 아니다. 그는 내 메시지를 읽었다. 투명인간은 아니었다.

기대감 상실? 조금 가깝다. 답장이 올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소외감? 그렇다. 그가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나는 답장을 기다리며 멈춰 있었다.

불공평감? 맞다. 나는 그의 메시지에 항상 빨리 답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존재감 훼손? 바로 이것이다. 내 안부가, 내 관심이, 답장을 받을 만큼의 가치가 없다고 느껴졌다.

"존재감 훼손이요."

내가 말했을 때, 마리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손님의 자존감 문제일 수 있어요."

5.

그날 밤, 나는 일기를 썼다.

서운함은 대체로 기대와 관계의 간극에서 생긴다. '서운하다'는 건, 사실 '내가 이렇게까지 기대했구나'를 나 자신에게 들키는 순간이다.

그래서 서운함의 방향은 상대가 아니라, 나에게로 향해야 한다.

"나는 왜 이 상황에서 서운했을까?"
"나는 어떤 기대를 품고 있었을까?"
"그 기대는 현실적인가, 아니면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례였을까?"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가 빨리 답장하기를 기대했다. 내 안부가 그의 하루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건 내 기대일 뿐이었다.

그는 바빴을 수도 있고, 답장을 미루는 스타일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것이 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의 방식일 뿐이었다.

서운함은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관계에 어떤 기대를 걸었느냐의 문제였다.

6.

며칠 전, 오래 알고 지낸 동료가 내 소식을 몰랐다.

"그런 일이 있었어? 왜 말 안 했어?"

나는 괜히 차갑게 대답했다.

"말해도 관심 없잖아."

그는 당황했다. 나도 후회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마리양을 찾아갔다.

"또 서운했어요."

"어떤 종류의 서운함이었나요?"

"무시감이요. 아니, 소외감? 아니면 불공평감?"

마리양은 천천히 말했다.

"정말로 손님이 원했던 건 '관심'이었을까요? 아니면, 손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등한 관계'의 느낌이었을까요?"

나는 멈칫했다.

그렇다. 나는 관심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다. 나는 관계의 균형이 필요했다.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만큼, 그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랐다. 동등한 관계. 균형 잡힌 저울.

서운함은 대부분 '관심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균형감' 문제다. 관계가 비스듬해질 때, 서운함이 생긴다. 서운함은 균형을 다시 맞추려는 정서적 반사작용이다.

7.

마리양은 세탁이 끝난 감정을 건네주며 말했다.

"다음번에 서운함이 올라올 때,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이건 어떤 종류의 서운함이지?"

무시당한 서운함인가,
기대가 어긋난 서운함인가,
소외된 서운함인가,
불공평한 서운함인가,
존재가 희미해진 서운함인가.

"서운함을 분류하면 감정의 방향이 바뀝니다. 감정의 방향이 바뀌면, 감정의 온도도 달라지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바로 감정세탁의 첫 단계.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감정을 정확히 읽는 기술.

8.

화요일 오후 3시 42분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미안, 바빠서 깜빡했어. 요즘 나 괜찮아. 넌 어때?"

예전의 나였다면 차갑게 답했을 것이다. "이제 와서 뭐." 또는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내 서운함의 종류를 알았다. 그것은 존재감 훼손이었고, 그 뒤에는 내 자존감 문제가 숨어 있었다. 그는 나를 무시한 게 아니었다. 단지 바빴을 뿐이었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나도 괜찮아. 바쁘면 답장 좀 늦기도하지 뭐. 시간 날 때 보자!"

그리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서운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게가 달라졌다. 이름을 얻은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짓누르지 않았다.


감정세탁소 영업 시간: 매일 밤, 당신의 마음속에서
오늘의 세탁물: 서운함 다섯 가지
세탁 완료: 이름 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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