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순수한 마음

by 줄리엣 호텔

부산 기장군

주말 아침 일찍, 진우, 지영, 동현은 KTX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처음 부산 가보세요?"

동현이 물었다.

"아니요. 대학교 때 여행 온 적 있어요."

진우가 대답했다.

"지영 씨는?"

"저도 몇 번 왔어요. 회사 출장으로."

기차는 빠르게 남쪽으로 달렸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 도시, 들판, 산, 바다.

"기분이 이상해요."

지영이 중얼거렸다.

"뭐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초능력자들이랑 함께 부산 가서 돼지 소녀를 찾으러 가고 있어요."

셋은 웃었다.

"저도요."

동현이 말했다.

"한 달 전만 해도 그냥 소방관이었는데. 지금은 소의 기운을 받은 십이지신 계승자래요."

"인생이 한순간에 바뀌네요."

"하지만..."

진우가 말했다.

"우리가 선택받은 이유가 있을 거예요. 우연이 아닐 거예요."

"무슨 이유요?"

"태시가 우리를 선택한 이유. 우리 안에 뭔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순수한 마음이든, 강한 의지든, 뭔가가."

지영과 동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2시, 기장군 농장.

택시에서 내리자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논밭, 비닐하우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돼지 축사.

"여기인 것 같아요."

지영이 주소를 확인했다.

"박소희 씨네 농장."

세 사람은 농장 입구로 걸어갔다. 문은 열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진우가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축사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돼지들의 꿀꿀거리는 소리. 그리고... 웃음소리?

세 사람은 축사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소녀를 보았다.

박소희.

22살.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렸지만, 웃음은 밝았다.

그녀는 돼지 한 마리를 쓰다듬으며 뭔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 복돌아. 오늘 기분 좋지? 날씨도 좋고."

돼지가 꿀꿀 소리를 냈다.

"응, 나도 알아. 사료가 달라졌지? 아빠가 새로 주문하신 거래. 더 맛있어?"

다시 꿀꿀.

"다행이다. 너희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

소희는 돼지를 안았다. 분홍빛이 그녀와 돼지 사이에서 미세하게 빛났다.

진우는 숨을 멈췄다.

'느껴진다...'

분홍빛. 따뜻하고 부드러운 에너지. 호랑이의 흰빛, 토끼의 녹색 빛, 소의 갈색 빛과도 다른. 가장 순수한 빛.

"돼지예요."

지영이 속삭였다.

"해(亥). 저 소녀가 돼지의 계승자예요."

동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요. 느껴져요."

세 사람이 다가가자, 소희가 돌아봤다.

"어?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진우가 말을 시작하려 했는데, 소희의 눈이 커졌다.

"어머..."

소희가 그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들... 빛나요."

"뭐가요?"

"몸에서. 흰색, 녹색, 갈색... 빛이 나요. 아름다워요."

진우는 놀랐다. 소희는 그들의 기운을 볼 수 있었다.

"당신도 빛나요."

지영이 말했다.

"분홍색으로. 아주 따뜻하게."

소희는 잠시 멍했다가, 환하게 웃었다.

"그럼 당신들도... 저랑 같은 거예요?"

"네. 우리도 받았어요. 십이지신의 기운을."

"와... 진짜 있었구나. 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소희가 손뼉을 쳤다.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들어오세요! 차 대접할게요."

소희네 집 거실.

소희가 보리차를 내왔다.

"부모님은 어디 계세요?"

진우가 물었다.

"시장 가셨어요. 저녁때쯤 오실 거예요."

"그럼... 우리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네! 궁금한 게 많아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동물 받았어요?"

"저는 호랑이요."

"저는 토끼예요."

"저는 소입니다."

"와... 다 멋져요! 호랑이랑 소는 강할 것 같고, 토끼는 빠를 것 같아요."

소희가 눈을 반짝였다.

"저는 돼지인데... 솔직히 처음에는 좀 실망했어요."

"왜요?"

"돼지는... 좀 약한 것 같잖아요. 호랑이나 용처럼 멋있지도 않고."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돼지는 특별해요."

"특별해요?"

"네. 십이지 중에서 가장 순수한 동물이에요. 탐욕 없고, 악의 없고, 그냥... 존재 자체로 평화로운 동물이요."

소희의 눈이 촉촉해졌다.

"그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다들 돼지는 게으르고 더럽다고만 하는데..."

"편견이에요."

지영이 말했다.

"진짜 돼지는 깨끗하고, 똑똑하고, 사랑이 많은 동물이에요. 소희 씨한테 딱 맞는 것 같아요."

소희가 울먹였다.

"고마워요... 진짜로."

동현이 조용히 물었다.

"소희 씨는 언제 각성했어요?"

"한 달 전이요. 여기 축사에서요. 돼지들이랑 있는데, 갑자기 분홍빛이 하늘에서 내려왔어요."

소희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평화로운 들판. 하얀 돼지. 그리고 목소리.


사랑으로 모두를 품어라.


평화를 지켜라.


싸우지 말고, 화해시켜라.


"그 후로... 동물들이랑 대화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사람들 마음도 느낄 수 있어요. 슬픈지, 화난지, 외로운지."

"대단하네요."

"별로 대단하지 않아요. 싸우는 건 못 하거든요. 힘도 별로 없고."

소희가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화해시키는 건 잘하는 것 같아요. 싸우는 돼지들 사이에 들어가면, 금방 진정돼요. 제 기운이 평화를 만드는 것 같아요."

진우는 감동했다.

'이 소녀가... 나중에 나를 각성시키는 거구나.'

시놉시스에 나왔던 내용이 떠올랐다. 절망의 순간, 소희의 외침이 진우를 깨운다고. 평화의 힘으로.

"소희 씨."

"네?"

"우리와 함께하시겠어요?"

"함께요?"

"네. 십이지신 계승자들을 모으고 있어요. 무너진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요."

소희는 잠시 고민했다.

"제가... 도움이 될까요? 저는 약한데."

"아니에요."

진우가 소희의 손을 잡았다.

"당신은 우리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이에요. 평화의 힘. 그게 진짜 강한 힘이에요."

소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같이할게요. 저도 세상을 구하고 싶어요."

그날 저녁.

네 사람은 소희의 부모님과 저녁을 먹었다.

"서울에서 왔다고요? 우리 소희가 무슨 일로..."

"소희 씨가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요. 동물들과 교감하는."

진우가 적당히 둘러댔다.

"아, 그거...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신기하긴 한데, 돈이 되는 건 아니라서..."

"아니에요. 아주 귀한 재능이에요."

식사 후, 소희의 부모님은 소희가 서울에 가는 것을 허락했다.

"공부도 하고, 세상 구경도 하고 와라."

"네, 아빠."

소희는 짐을 쌌다. 많지 않았다. 옷 몇 벌, 세면도구, 그리고... 돼지 인형 하나.

"이거 제 친구예요."

소희가 인형을 꺼냈다.

"복돌이라고 해요. 실제 복돌이 닮아서 만들었어요."

귀여웠다. 분홍색 돼지 인형. 손바닥만한 크기.

"데리고 가도 돼요?"

"당연하죠."

서울로 돌아오는 KTX 안.

네 사람은 피곤에 지쳐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네 명이 됐네요."

지영이 말했다.

"호랑이, 토끼, 소, 돼지. 아직 여덟 명 남았어요."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진우가 말했다.

"소희 씨를 찾았잖아요. 나머지도 찾을 수 있어요."

소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 속을 달리는 기차. 반짝이는 불빛들.

"오빠."

소희가 진우를 불렀다.

"왜요?"

"고마워요. 저를 찾아와줘서."

"천만에요. 우리가 고마워요. 함께해줘서."

소희가 웃었다. 그 웃음은 정말 순수했다. 어떤 욕심도, 악의도 없는 미소.

진우는 생각했다.

'이런 사람을 지켜야 해. 이런 순수함을 지켜야 해.'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었다. 호랑이로서. 숲의 왕으로서.

같은 시각, 서울.

현석도 새로운 계승자를 만나고 있었다.

"당신이 말(午)이군요."

현석이 말했다.

앞에 앉은 남자는 30대 초반. 날렵한 체격, 불안정한 눈빛. 그는 계속 다리를 떨고 있었다.

"네... 태준이라고 합니다."

"자유를 갈망한다며?"

"네. 저는... 갇혀 있는 게 싫어요. 규칙도, 질서도, 모든 게. 그냥... 달리고 싶어요."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요. 말은 자유로워야 하니까. 하지만 태준 씨."

"네?"

"진짜 자유는 무엇인지 아세요?"

"...모르겠어요."

"진짜 자유는 규칙 안에 있어요. 역설적이지만, 확고한 질서가 있을 때 비로소 자유가 가능해요."

태준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혼돈 속에서는 자유가 없어요. 오직 두려움만 있죠. 하지만 강력한 질서 아래에서는, 그 틀 안에서 진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요."

"그럼... 저한테 뭘 원하세요?"

"나를 따르세요. 내가 질서를 만들 테니, 당신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달리세요."

태준은 고민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따를게요."

현석은 미소 지었다.

다섯 명.

용(현석), 뱀(미연), 개(민수), 그리고 이제 말(태준).

아직 부족하지만, 점점 세력이 커지고 있었다.

'진우... 넌 네 팀을 만들고, 나는 내 팀을 만들겠어.'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만날 거야.'

'그때 누가 옳은지 증명하자.'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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