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계속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진우의 팀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네 명이 함께 움직이며 작은 일들을 해결했다. 폭력 사태를 막고, 갇힌 사람들을 구조하고, 혼란에 빠진 이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른 십이지신을 찾고 있었다.
"이거 봐요."
지영이 노트북을 가리켰다.
<서울 서커스단, 불가능한 공연으로 화제> <공중 10미터에서 와이어 없이 묘기... 트릭인가 진짜인가?>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한 남자가 공중에서 아크로바틱 동작을 하고 있었다. 삼단 회전, 공중 제비, 그리고... 잠깐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
"이거... 원숭이 같아요."
지영이 말했다.
"신(申). 원숭이는 민첩하고, 공중 동작에 뛰어나죠."
"찾아가볼까요?"
진우가 물었다.
"네. 공연이 오늘 저녁에 있대요. 홍대 근처 소극장에서."
저녁 7시, 홍대 소극장.
진우, 지영, 동현, 소희 네 명이 함께 왔다.
극장은 작았지만 사람들로 가득했다. 서커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환영합니다!"
사회자가 나왔다.
"오늘 여러분께 특별한 공연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에어리얼 아티스트, 최서린!"
박수가 터졌다.
무대에 한 남자가 등장했다.
25살쯤 되어 보였다. 날씬하지만 근육질 몸. 짧은 머리, 날카로운 눈빛. 그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느껴져요?"
지영이 속삭였다.
"네."
진우도 느꼈다. 주황색 기운. 민첩하고 영리한 에너지. 원숭이의 기운.
서린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는 무대 중앙의 줄을 타고 올라갔다. 와이어도, 안전장치도 없었다. 순수한 근력과 균형감으로.
그리고 공중에서 날기 시작했다.
삼단 회전. 네 바퀴 회전. 불가능해 보이는 동작들을 완벽하게 해냈다. 관객들은 숨을 죽이며 바라봤다.
하지만 진우는 알았다. 저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고. 원숭이의 기운이 그를 돕고 있었다. 중력을 무시하고, 공기를 밟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공연이 끝났다.
우레와 같은 박수.
서린은 우아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만나러 가요."
진우가 말했다.
백스테이지.
"최서린 씨?"
진우가 불렀다.
서린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돌아봤다.
"네? 사인 받으러 오신 거면..."
"아니에요.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서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무슨 이야긴데요?"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서린은 네 사람을 훑어봤다. 그리고 뭔가 느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세요."
극장 옥상.
"그래서?"
서린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
"무슨 이야긴데요? 스카우트 제의? 아니면 사기?"
"둘 다 아니에요."
진우가 손을 펼쳤다. 흰빛이 번쩍였다.
서린의 눈이 커졌다.
"당신..."
"우리도 같아요. 십이지신."
지영, 동현, 소희도 각자 손을 펼쳤다. 녹색, 갈색, 분홍빛이 빛났다.
서린은 잠시 멍했다가, 웃었다.
"하, 정말 있었구나. 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도 손을 펼쳤다. 주황색 빛이 번쩍이며, 주변 공기가 일렁였다.
"신(申). 원숭이."
"우리는 호랑이, 토끼, 소, 돼지예요."
"다들 착한 동물들이네요. 나는 좀 다르지만."
서린이 비웃듯 말했다.
"원숭이는... 교활하거든요. 영리하고, 장난스럽고, 규칙 따위 신경 안 쓰고."
"그게 나쁜 건 아니에요."
진우가 말했다.
"원숭이는 지혜의 상징이기도 해요. 문제 해결 능력, 적응력..."
"좋게 포장하네요."
서린이 콧방귀를 뀌었다.
"솔직히 말해요. 나한테 뭘 원하는 거예요?"
"함께하자는 거예요. 십이지신을 모으고 있어요."
"왜?"
"무너진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요."
서린은 잠시 생각했다.
"거절하면?"
"억지로 할 순 없죠. 하지만..."
"하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우리 모두가 필요해요."
서린은 옥상 난간에 기대었다.
"나는요, 사실 별로 관심 없어요. 세상을 구한다든가 하는 거."
"왜요?"
"세상이 나한테 뭘 해줬는데? 나는 고아원에서 자랐어요. 아무도 날 원하지 않았죠. 재능만 있었어요. 몸을 움직이는 재능."
서린의 목소리가 쓸쓸했다.
"그 재능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혼자서. 아무 도움도 없이. 그런데 이제 와서 세상을 구하라고? 웃기죠."
진우는 서린의 아픔을 느꼈다.
"서린 씨..."
"하지만."
서린이 말을 끊었다.
"흥미는 있어요.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다른 십이지신들은 얼마나 강한지."
그가 진우를 똑바로 바라봤다.
"조건이 있어요."
"뭐죠?"
"나는 명령받기 싫어요. 누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 나는 자유롭게 움직일 거예요."
"괜찮아요."
진우가 대답했다.
"우리는 팀이지, 군대가 아니에요. 각자 자유롭게 움직이되, 필요할 때 함께하는 거예요."
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일단... 재미삼아 같이 해볼게요. 언제든지 빠질 수 있다는 조건으로."
"감사합니다."
다섯 명이 되었다.
며칠 후, 진우의 원룸.
다섯 명이 모여 회의를 했다.
"아직 일곱 명 남았어요."
지영이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쥐, 용, 뱀, 말, 양, 닭, 개.
"용은 이미 알아요. 현석 씨. 하지만 그는... 우리 편이 아니에요."
진우가 말했다.
"나머지 여섯을 찾아야 해요."
"어떻게요?"
서린이 물었다.
"뉴스 모니터링, SNS 검색, 목격담 수집... 할 수 있는 건 다 해요."
"비효율적이네요."
"더 좋은 방법 있어요?"
"있죠."
서린이 휴대폰을 꺼냈다.
"제가 해커 친구가 있어요. 정부 데이터베이스 해킹할 수 있어요. 비정상적인 사건 기록, 초능력 목격담, 다 찾을 수 있어요."
"그건... 불법 아니에요?"
소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불법이죠. 하지만 효율적이에요."
서린이 웃었다.
"원숭이는 규칙 안 따른다니까요."
진우는 고민했다.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균열은 계속 커지고 있었고, 빨리 모두를 모아야 했다.
"...해요."
진우가 결정했다.
"하지만 최소한만. 정말 필요한 정보만 찾아요."
"알았어요."
서린은 친구에게 연락했다.
이틀 후.
서린의 해커 친구가 정보를 보내왔다.
"찾았어요."
서린이 노트북을 열었다.
"닭. 유(酉). 뉴욕에 있대요. 이름은... 한준희. 뮤지컬 배우."
"뉴욕?"
"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이래요. 최근에 공연 중 이상한 일이 있었대요. 무대가 무너졌는데, 그녀의 노래 소리가 모든 걸 멈춰 세웠대요."
"소리의 힘..."
진우가 중얼거렸다.
"닭의 울음소리는 어둠을 물리치고 새벽을 연다고 했죠."
"뉴욕이면... 가야 하나요?"
소희가 물었다.
"일단 연락해봐요. 이메일이나 전화로."
"좋은 생각이에요."
지영이 준희의 연락처를 찾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현석의 사무실.
현석도 새로운 정보를 받고 있었다.
"원숭이를 찾았습니다."
미연(뱀)이 보고했다.
"미래에서 봤어요. 최서린. 서커스 아티스트. 그는... 이미 호랑이 팀에 합류했어요."
"늦었군."
현석이 혀를 찼다.
"다른 사람은?"
"양(未)을 찾았어요. 일본에 있어요. 간호사. 이름은 현아."
"치유의 힘?"
"네. 양은 자비롭고, 돌보는 성향이 강해요. 하지만..."
"하지만?"
"우리 편으로 만들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녀는 본성이 온화하거든요."
현석은 생각했다.
"상관없어. 일단 만나보자.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현석 씨... 호랑이 팀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이미 다섯 명이에요."
"우리는?"
"다섯 명. 용, 뱀, 개, 말, 그리고 곧 닭을 영입할 예정이에요."
"닭?"
"네. 한준희. 제가 미래에서 봤어요. 그녀는... 우리 편이 될 거예요. 정의를 갈망하거든요. 완벽한 질서를."
현석은 미소 지었다.
"좋아. 그럼 우리도 계속 모으자."
"네."
미연은 물러갔다.
혼자 남은 현석은 창밖을 바라봤다.
'진우... 너는 네 팀을 만들고 있고, 나는 내 팀을 만들고 있어.'
'하지만 결국 하나가 되어야 해. 열두 명이 모두.'
'그때... 누가 이끌 것인가가 문제야.'
현석은 주먹을 쥐었다.
황금빛이 번쩍였다.
'내가 이끌 거야. 용으로서. 하늘의 지배자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