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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Apr 21. 2016

[포토에세이] 가족사진

<가족사진>


“여보! 이것 좀 당신이 잘 보관해주시오.” 하며 남편이 봉투를 내밀었다. 겉봉을 열어 내용물을 살펴보니 몇 장의 사진이었다. 아버님의 장례식을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것들이라고 했다. 흑백사진들이 세월의 바람에 누렇게 변해있다. 그중에 눈에 띄는 한 장이 있었으니, 지금의 남편이 아홉 살이었을 때에 찍었다는 가족사진이다.


앞줄 왼쪽 끝으로 아버님이, 그 옆에는 눈이 큰 시누이가, 오른쪽 끝에는 어머님이 앉아계신다. 뒷줄에는 아주버님이 의젓한 자세로 서 있고 그 옆으로 바싹 긴장한 동생, 지금의 남편이 서 있다. 아버님은 검은색 양복에 머리에는 포마드를 발랐는지, 빗이 지나간 길이 그대로 드러난 멋진 스타일이다. 단정한 한복 차림의 어머님도 다소곳하다.


이제는 고인(故人)이 되신 아버님과 무릎 인공관절 삽입 시술을 받은 산수(傘壽)의 어머님이 사진 속에 담겨있다. 온 가족이 모여 있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이런 가족사진을 갖고 있지 못하다. 가정 형편이 사진관에 갈 엄두는 내지도 못할 만큼 가난했거니와, 부모님께서는 이러한 사진을 생각지도 못하셨을 것이다(생각은 하셨을 지도!).


십여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두 딸의 백일과 첫 돌을 차례로 지내면서 주말부부인 탓에 제대로 된 기념사진을 찍지 못하였다. 그 후 쌍둥이가 태어나고 아이들의 백일과 첫 돌에는 꼭 사진관에 가서 기념하리라 마음먹었었다. 두 아이를 품에 안고 온 가족이 모여 사진을 찍는다는 것, 나에게는 생각만으로도 행복 그 자체였다. 그런데 첫 돌 즈음에 쌍둥이가 수두를 앓았다.


고열에 시달리고, 울고 보채는 쌍둥이를 번갈아 돌보기에도 힘에 겨웠고 생활에 묻혀 가족사진은 점점 잊혀 갔다. 그렇게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두 돌이 되어서야 사진관에 다시 갔다. 남편과 두 딸은 삼각대 세워 놓고 마당에서 함께 찍으면 되지, 굳이 사진관까지 가야 하느냐며 투덜거렸지만 나는 부득불 고집을 부렸다.


하나, 둘, 셋, 촬영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백 장은 족히 넘게 찍었을 것이다. 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이 그날의 결과이다. 그 후에도 나는 큰딸이 중학교에 입학하면 교복 입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교복 입고, 대학에 입학하면 꼭 다시 찍어야지라고 생각했었지만, 결심에 그치고 말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생활이 커지니 가족 모두 카메라 앞에 모이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건네준 오래된 가족사진 속 아버님과 어머님이 아들과 딸을 데리고 사진관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상상한다. 거울을 보며 옷과 머리를 손질하시는 모습도 상상한다. 고개를 왼쪽으로 조금, 혹은 오른쪽으로, 턱을 앞으로, 혹은 옆으로 살짝 돌리라는 사진가의 주문도 있었을 것이다. 정지된 시간 사이로 따스한 가족 영화의 한 장면이 스쳐 가는 듯하다.


아홉 살 소년이 반백의 중년(中年)이 되는 사이, 이전에 없던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였다. 누구에게나 사진 찍는 일이 쉬운 일상이 되었다. 사진은 날마다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삭제 단추 하나로 파일들이 휴지통으로 날아가는 것을 볼 때면 추억까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아무리 많은 사진을 찍는다 하여도 가족사진을 어찌 일상의 사진에 비할까.


날마다 만나고 부대끼며 사는데 가족사진은 무슨!이라고 말하지 말자. 쌍둥이가 중학생이 되었으니 졸업하기 전에, 교복을 벗기 전에 실천에 옮겨야겠다. 낡은 사진 속에 계신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다. 아가야. 바쁘겠지만 시간 좀 내거라. 다음 주말에 예약하는 것은 어떻겠냐.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어느 날 언뜻 지갑에서 꺼내어 보았을 때 미소 지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한 장을 위하여, 아, 그런데 그날이 언제일까.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살전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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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 사람(도서출판 생명의 양식, 2016. 05/06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적상면 포내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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