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이 씨 안녕

by 간호사 박도순

까이 씨 안녕


“소장님! 어찌나 신경을 썼던지 머리가 너무 아파요. 한숨도 못 잤어요! 빨리 약 좀 주세요.”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하소연이더니 소파에 드러눕는다. 기다리던 몇 명의 진료를 마친 후 정 씨 이름을 불렀다. 혈압 122/78mmHg, 맥박 82회/min, 체온 36.2℃. “열도 없고 혈압도 맥박도 정상, 무슨 일로 머리가 아플까요?” 목젖을 살핀 설압자를 상자에 버리며 여쭈었다. 짧지 않은 사연이 풀어졌다. 요즘 마을에는 수박이며 아사히베리 뒤를 이은 고추며 토마토 수확이 한창이다. 시간 단위로 일을 쪼갤 만큼 바쁜 계절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농사를 돕던 일꾼이 간밤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월급도 주고, 삼겹살도 구워 늦은 밤까지 기분 좋게 술도 나누었단다. 아침 일찍 데리러 갔더니 이불만 덩그러니 남아 있더라는 것이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이러한 상황을 처음 겪는 일이라 아무 대꾸도 못 하고 듣고만 있었다. “월급만 줬다 하면 도망간다고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해도 우리는 안 믿었었거든요. 서로 믿고 잘 지냈으니까요. 그런데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인사도 없이 가버리다니! 일꾼 인원수도 맞춰놨고 수확량까지 맞춰놨는데 아, 진짜 미치겠다니까요.” 정 씨는 처방된 타이레놀 약봉지 하나 뜯더니 선 채로 굵은 그것을 삼키고는 문밖으로 나가셨다.


“What’s your name?” “나 이름 까이!” “How old are you?” “Twenty one” 한여름인데도 모자 달린 긴 소매 옷을 입고, 모자를 눌러 쓰고, 한쪽 슬리퍼만 신은 청년이 보건진료소에 들어왔다. 스물한 살 까이 씨는 태국에서 왔다고 했다. 까무잡잡한 얼굴색에 눈이 크고 속눈썹이 유난히 길었다.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긴장된 표정이다. 진찰실로 불러 어디가 아픈지 물었다. 그는 바지를 천천히 걷어 올렸다. 발가락 상처를 시작으로 옷이 올라갈수록 드러나는 무릎과 허벅지 상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발가락은 움츠러들었고 발톱은 빠져 어디론가 사라지고 으깨진 토마토 같은 살점이 벌겋게 엉겨 붙어있다. 오른쪽 무릎의 상처는 서너 땀은 족히 봉합했어야 할 열상(裂傷)이고, 허벅지와 골반 옆으로 손바닥만 한 찰과상 가피(痂皮)는 이미 말라붙어있다. 발톱 상처 세척을 위하여 생리식염수를 부었다. 까이 씨는 “으으으으! Slow slow!”를 주문했다. 그는 손을 떨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안 봐주실까 봐 그랬습니다.” 까이 씨가 보건진료소에 오기 며칠 전, 박 씨의 이야기이다. “어머니가 넘어지면서 다쳤는데 소독약이랑 붕대랑 반창고 좀 주세요!” 어머니 대신 보건진료소에 오신 것이다. “많이 다치셨나요? 환자를 직접 봐야 하는데요!” “우선 소독해보고 안 나으면 다음에 모시고 오겠습니다.” 나는 증상을 받아 적으며 그의 요구대로 물품을 챙겨드렸다. 며칠 후 다시 보건진료소에 왔을 때 나는 왕진 가방을 챙기며 어머니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그제야 ‘안 봐주실까봐 그랬다’는 것을 털어놓은 것이다. 어머니가 아니라 집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가 다쳤다는 것이었다.


강원도 삼척 석개재 내리막길에서 ‘새벽 원정 쪽파 밭일’ 가는 사람을 실은 승합차가 굴렀다. 옹벽에 부딪혀 충돌하고 뒤집어졌다. 탑승자 네 명이 숨졌다. 열세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힘없이 쭈그러진 차체와 굴러가기를 멈춘 자동차 바퀴 네 개는 참혹했다. 비명 소리를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열여섯 명 중 일곱 명이 외국인 근로자, 불법체류자라고 했다. 사고 현장에서 부상자를 구조한 세 명이 종적을 감추었다는 뉴스는 더 마음 아팠다. 세 사람 모두 태국인이라는 사실이 더 놀라웠던 것은 우리 마을 까이 씨도 태국인이라는 동질감이 작용한 탓일 것이다.


까이 씨는 두 번 더 보건진료소에 다녀갔다. 이제 그는 우리 마을에 없다. 참을 수 없는 치통으로 밤새 몸을 떨고, 탈이 나서 설사로 배가 아프고, 벌에 쏘여 얼굴이 퉁퉁 부어도 병원이나 보건진료소에 가지 못하는 또 다른 ‘까이 씨’들이 있다. 그러한 사실 앞에 적잖이 놀란 나는 암울한 기분까지 들었다. 새벽이라 부르기엔 심야에 가까운 흑암 2시에 현장 도착, 모자와 복면을 쓴 20∼30명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3∼4시부터는 야채 상차(上車) 작업이 시작되고, 짐을 채운 15톤 트럭은 육중한 몸을 서서히 움직이며 마을을 빠져나간다. 아침 7∼8시면 감쪽같이 사라지는 원정 일꾼들의 작업 풍경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요하다.


“하루라도 일이 밀리면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란 말입니다.”, “외국인 근로자들 없으면 농사 못 짓습니다.”, “젊은이들 농촌 떠난 지 오래고, 그나마 어르신들은 체력도 약하고 힘들어서 이런 일 못 하십니다.” 사고 승합차에서 부상자를 구하고 현장에서 도망쳐야 했던 태국인의 아침 그림자는 더욱 마음 짠하다. 상처 소독과 드레싱 교환을 마치면 “Thank you, Thank you!”를 연발하던 까이 씨. 치료해준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언제까지나 옳은 일일까 자문한다. 마을에서 사라진 부부와 까이 씨 안부가 궁금하다. 삼척 풍곡리에서 도주한 세 사람도 안녕할까. 원정 작업장 향하여 오늘도 달리고 있을, 그들은 어느 길 위에서 저 달을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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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목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