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나기는 날랑가

by 간호사 박도순

끝이 나기는 날랑가


“소장님, 머리가 너무 아파요.” 며칠 전에는 귀를 뚫어 진물이 흐른다더니, 오늘은 두통이다. 그저께는 배가 아프다고 왔었지. 수아가 할머니 집에 머문 지 달 반이 넘었다. 수아 엄마는 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이 발생한 나라로부터 외국인 입국이 제한되기 전 필리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훗날 출발하기로 예약된 수아는 입국 제한으로 발이 묶인 것이다. 필리핀 정부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란과 이탈리아에서 출발하거나 환승하는 여행객에 대하여 입국 제한한다는 뉴스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다는 의료증명서(Medical clearance 또는 Health declaration certificate)를 입국 48시간 이내 발급된 서류를 제출해야만 입국을 허용한다는 발표가 있었다는 것을 수아 진료를 마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귀하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1조 제3항 제2조에 따라 자가격리 대상임을 통지합니다. 본 통지에 따르지 않을 경우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80조 제2호에 따라 3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어머나! 이것이 무슨 말인가. ‘자가격리 대상자 생활 수칙을 준수하여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전파되지 않도록 다음 사항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아직까지 확진 판정 없는 무주에 살고 있어 다행스럽다 여기고 있었거늘, 뜻밖에도 대학생 작은딸이 격리대상이라니! 딸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방지를 위하여 외출이 금지되었고 반드시 독립된 장소에서 혼생(!)하라는 법적 권면을 받은 것이다. 카카오톡 사진 속에서 확대된 안내문의 낯선 문장들이 나에게도 어떤 비장감을 주었다.


정해진 순서처럼 격리 상황을 뒷받침하는 n번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20∼30분 간격으로 펼쳐진 긴급재난 문자에는 확진자가 돌아다녔다는 PC방, 기차역, 병원, 김밥가게, 화장품가게, 식당과 스타벅스, 교회 등 잠자리 들기 전까지 모든 이동 경로가 들어있었다. 진술을 토대로 신용카드 사용처, GPS를 기반으로 한 대중교통, 승용차, 심지어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자신의 차 안에서 아는 사람과 함께 먹었다는 디테일까지 그야말로 걷다 흘린 머리카락 한 올의 그림자까지 놓칠세라 빼곡했다. 고열의 여부, 기침이나 인후통 같은 증상 유무 외에 n번 확진자의 발걸음은 추가 역학 조사 결과 틀 안에서 너무 친절하고 상세했다.


나는 n번의 그 사람이 상상 속 어느 공간에서 발가벗긴 채 추격당하는 한 마리 슬픈 짐승처럼 느껴졌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감염 예방을 위한 알 권리 앞에 그의 이동 경로는 삽시간에 공유되고 공유는 공포를 낳았다. 우려 앞에 가족과 친구들은 두려워 떨었다. 감추려야 감출 수 없고, 숨으려야 숨을 수 없는, 도무지 관용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문명의 쾌거 앞에 사람이라는 인류는 더 이상 세상의 ‘주체’가 아니었다. 감염시키거나 감염당할 수 있는 험악하거나 나약한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것 같은 것이다. 참혹하다 싶을 만큼 권한이 없었고, 참혹하다 싶을 만큼 초라하게 여겨졌다. 드넓은 세계를 향하여 점점 위용을 펼쳐나가는 코로나19의 위력을 보고 들으며 높아가는 불안감 앞에 오히려 더 피곤해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고 냄새도 없는 코로나19는 수아를 엄마와 갈라놓았고, 우리집 딸을 친구들과 격리시켰다. 아파서 진료가 필요하더라도 반드시 보건소에 먼저 연락할 것과 가족이래도 접촉하지 말라는 착한 권고. 생활 쓰레기 처리에서 수건, 식기, 휴대 전화, 옷이나 침구류 소독에서 세탁까지 집중하여 지켜야 할 수칙들. 마스크 착용, 기침 예절, 손 씻기는 반복에 반복으로 강조되었다. 좋아하는 여행도 금지, 좋아하는 사람과 만남도 금지. 별도의 연락이 있을 때까지 ‘꼼짝 말고 있으라’는 방역 당국의 지시 앞에 엄마로서 아니, 간호사로서 나는 딸에게 지침을 잘 따르라는 당부 외에 무엇을 어떻게 더 하라고 권하지 못하였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보이는 세상을 지배해버린 초월적 저 존재가 속히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었다.


간밤에 열은 없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문자를 보내면 딸은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면서 자신의 건재함을 체온과 함께 과시하듯 보내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한 보름이 흘러가고 능동적 감시는 그렇게 끝이 났다. 평범한 날 혹은 특별한 날이어야 할 우리의 안녕하지 못한 날들. 그러거나 말거나 어느덧 봄 햇살은 무심하게 눈부시다. 식어버린 설렘 속에 다가온 봄날이 낮은 먹구름으로 우리를 덮고 있다.


엄마도 없고 친구도 없는 이곳 산골에서 열한 살 수아는 할머니와 하루하루를 보낸다. 반짝이는 귀걸이를 하고, 배 아픈 약을 먹고, 머리 아픈 약을 먹는다 한들 그것이 무슨 위안이 될까. “살다 살다 우째 이런 난리가 있다요? 이게 뭔 일이다요? 우리 동네 사람들 죄다 웃음을 잊어번졌당게. 늙은이들한테 엥간하면 밖으로 나댕기지 말라 방송허는디, 그래도 아수울 일이 깨나 많지요. 깝깝해서 어쩌 산다요. 아척절은 테리비 좀 보다가 점심 먹고 나믄 들밭에 나갔다가. 안성장도 장계장도 없어졌잖아요. 장터에 장꾼들 들어오면 더 무섭다고, 4월이나 5월이나 돼야 연다드니만. 그때 쯤 되면 끄치 나기는 날랑가. 어지간히 바람도 불어싸트만. 잘 가시오.”


대문 밖으로 나와 손 흔드는 수아를 뒤로 하고 나는 골목길을 걷는다. 보건진료소로 돌아오는 길, 어마재 넘어 솔숲에 이르니 석양이 달아오른다. 돌 틈 새 진달래, 저 혼자 피어올라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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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