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더 밭에 나가시면 코끼리 차 끌고 와서 파 불랑게요!” “어이, 아들! 시방 뭐라는 거냐?” (웃음)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있을까. 한낮에 알밤 같은 우박이라니! 햇살에 막 자라기 시작한 애기 사과는 얼음 조각처럼 깨어졌고, 매실은 땅에 떨어졌다. 옥수수잎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머위 잎사귀는 손가락으로 뚫은 듯 숭숭 구멍이 나자 주저앉았다. 옆순이 날아간 고추는 앙상한 줄기만 남았다. 그저 허탈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농심이야 어찌 말하랴. 모내기 마친 논에 푸르른 직립이 춤추고 잠시 숨 돌릴까 하였더니. 윤사월 망종지절(芒種之節)의 참변. 때 아닌 천재(天災)에 일손이 더욱 바빠졌다.
강씨가 보건진료소에 오셨다. 부러진 고추 옆에 새 모종 작업 중 사고가 났다. 물줄을 잡아당기다 뒤로 넘어지신 것이다. 어르신은 팔을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하셨다. 진료실 창밖으로 바라보니 기어 오다시피 들어서던 모습. 현관에 주저앉은 채 움직이지도 못하셨다. 한 손으로 어르신 팔을 붙들고 다른 손으로는 119, 뒤 이어 서울 사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경이나 혈관 손상이 우려되어 대학병원까지 가신 강씨. 진단은 어깨 탈구(Dislocation of shoulder)였다. 보름 후 마을로 돌아오셨다.
팔걸이와 탈구 예방 보조기를 어깨에 두른 강씨가 아들과 함께 보건진료소에 오셨다. 어머니를 향하여 날린 ‘한 번만 더 일했다간 확’이라는 멘트가 마치 나 들으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소장님이 우리 어머니에게 말씀 좀 잘해주십시오, 부탁을 담은 착한 겁박처럼 말이다. 밭에 나가면 포크레인으로 흙을 파내는 것도 모자라 웅덩이에 물을 채워 저수지를 만들어 버리겠다나? 어머니 향한 염려를 모르는 바 아니나 나는 속으로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입술을 앙다물었다. 온습포 찜질을 위하여 건강증진실로 안내했다. 아들은 마당으로 나갔다. 곧 누군가와 핸드폰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옆으로 다가가 여쭈었다. “병원에서 뭐라 하시던가요?” “이게 말이지, 한 번 빠지며는 또 빠진다고 조심하라드만. 요래요래 팔을 만져감서 잡아땡기고 밀고 난리더만. 아파서 죽는 줄 알았네. 눈물 짤꼼났어. 혼났당게(웃음). 일 하지 마라드만. 어깨가 닳았대나 어쩠대나. 의사 선상님들이야 노상 하는 말잉게.” 이제부턴 정말 밭에 가지 마시라고, 후렴처럼 따라 나와야 할 그 멘트를 꾹꾹 눌렀다. 일하라고 해야 하나, 하지 말라고 해야 하나. 하라면 얼마 동안 얼마큼 하라고 해야 하나. 하지 말라 한다면 얼마 동안 얼마큼 하지 말라 해야 하나. 도무지 풀 수 없는 어떤 고차방정식 인수분해 앞에 선 기분이 든다.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어르신에게 일을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디에서 어디까지일까. 호흡이 힘든 환자에게 숨 쉬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건강한 사람에게 숨 쉬는 일처럼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누구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 되고야 마는 일들. 진통소염제 처방을 받고 대기실에 앉아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강씨에게 말했다. “어르신! 하시던 대로 그냥 일하세요, 다만 어깨가 단단해지는지 느껴가면서 조심조심하세요.” 어르신은 듣는 둥 마는 둥이다. “그나저나 들깨 모종도 해야 하고 고구마 싹도 살피야 하는디, 아들은 일하지 말라고 저 난리고마는 소장님은 일을 하라고 하네?”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직장도 아니고, 흔히 말하는 미래에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도 아니다. 농사는 생명을 다루는 고도의 감성과 예민함이 필요한 직업임에도 해마다 성공보다는 자족(自足)하라는 교훈이 보장되는 일이라고나 할까. 땅에 엎드려 잡초를 뽑고 곡식을 다독이며 흙을 덮어주고, 잘 커라! 잘 자라라 응원하는 일. 강씨는 어깨가 빠진 것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곧 밭으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흙을 팔 수 있는 호미만 있으면 세상 다 가진 것이라는 당신의 지론.
“안녕하세요? 또 밭에 나오셨군요. 아드님이 알면 혼날 텐데, 서울에 전화해야겠네요.” “이를테면 일러봐. 내가 아들 이겨! 갸가 흙 파먹는 재미를 알간디?” 아들에게 날리는 일갈(一喝)에서 강씨의 신명을 읽는다. “이것이 말여, 자네 보는 것 맨치나 재미지당게!” 강씨의 텃밭은 그에게 생명과 어우러져 노니는 천국의 놀이터가 아닐까. 어르신에게 일은 곧 놀이이니까. 깨알같이 고소한 ‘자네 보는 재미’라는 말씀에 나도 덩달아 힘이 난다.
씨앗을 심어보고 성장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안다. 작디작은 생명이 전하는 웅장한 감동을. “땅속에 누운 사람이나 일을 안 허지, 의사 선상님들은 일해서 그렇다, 일하지 마라. 그거시 노래더구먼! 살면서 어찌 일을 안 한다요? 밭두렁에 앉아 겨댕기는 벌거지들을 보소. 잠시도 안 쉰당게. 사람탈을 쓰고 세상에 나와서 일을 안 하믄 돼가디?” 팔걸이 슬링을 밭고랑에 벗어두고 강씨는 또 무엇인가를 하신다. “소장! 어디 다녀오시능가? 나는 이 재미로 사네. 농사보다 더 재미있는 게 세상에 있을라고?” 땅과 사람 사이 생명의 교감이 충만한 저 비밀하고 비옥한 카타르시스.
멀리서 먹구름이 달려온다. 금세 어둑시리하다. 소나기가 오려나. 바람도 일한다. 새도 나무도 쉬지 않는다. 하늘도 살아있음을 우박으로 몸소 보여주지 않으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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