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꽃

by 간호사 박도순

쌀꽃


결코 내가 알던 물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불어나더니 바위가 되는 것이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경계조차 보이지 않는다. 차창 밖으로 흔들리는 나무가 보이지 않았다면 길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높였지만, 빗물을 닦아 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진공 포장된 자동차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도로에는 산머리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쌓여 있었다. 길이 막혔다. 위협은 불안이 되더니 공포로 전환되었다. 계곡의 흙탕물은 아귀 손을 흔들며 집어삼킬 듯 출렁거렸다. 백미러에 보이는 물 바위가 이내 덮쳐올 것만 같다. 빨리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보건진료소에 도착했을 때 몰려오는 피로감에 속이 울렁거렸다. 머리가 아팠다. 장수 번암면에 다녀오던 팔월의 주말.


날이 밝으면 물 폭탄은 거침없는 신기록을 쏟아냈다. 가장 이른 장마, 가장 긴 장마, 가장 많은 강수량. 아무렇지 않던 사무실 천정에서 똠방똠방 서너 군데 물이 떨어지는 것쯤 감히 피해 상황도 아니었다. 산과 마을은 종일토록 어둑시리한 분위기에 젖은 물그림자로 덮여 있다. 방주의 문을 닫자 하늘 문이 열리고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는 노아 시대의 그날도 이와 유사했을까. 지루한 장마에 심신이 눅눅해지더니, 지리한 고단함은 대책 없는 지겨움으로 흐물거렸다. 아, 이 비가 끝은 있으려나.


월요일이었다. 출근 후 진료대기실 바닥에 고인 물을 닦는 중 전화가 왔다. “소장님! 설사를 해서 그러는데요, 한 닷새 정도 먹을 약 좀 지어주세요. 장에 왔다가 마을에 들어가는 중입니다. 이따 들르겠습니다.” 무슨 음식을 먹고 그러는지, 언제부터인지, 배는 안 아픈지, 열은 없는지 여쭐 틈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리는 김씨. 스스로 당신의 약을 요청할 정도면 뭐, 심각한 상태는 아니겠네, 그런데 굳이 닷새 분이나?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별로 심각하지 않게 생각했다. 어르신을 기다렸다. “어서 오세요. 장에는 무슨 일로 가셨나요? 상한 음식을 드셨을까요?” 언제부터 불편하였는지 여쭈려는 순간, 싱긋 웃더니 말씀하셨다.


“저기… 사실은…, 제가 먹을라는 것이 아니고요. 한달 전에 우리 집 소가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는데요, 먹기만 하면 물똥을 쌉니다. 물난리 통에 동물병원에도 못 가고요. 비가 계속 오니까 소들도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보통일이 아니고만요. 어쩌겠습니까, 송아지 먹일랍니다. 약 좀 주세요.” 나는 김씨에게 지사제를 처방했다. 마당을 가로질러 트럭에 몸을 싣고 황급히 보건진료소를 빠져나가는 그의 등 뒤로 세찬 빗줄기가 후려친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개나 염소, 병아리에게 사람 약이 흘러간 것이 한두 번이던가. 이것이 옳은 일인지,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결국, 송아지가 먹었을 것이다.


며칠 후 귀농 십 년째인 최씨가 진료실에 들어섰다. 머리가 아프고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된다고 호소하신다. 기운이 없어 보였다. 목소리는 평소보다 가라앉았다. “제가요, 무주에 와서요, 농사 좀 지어보겠다고요, 풀 깎고요, 산 다듬고요, 나무 심고요, 그렇게 십 년을 살았어요. 그런데요, 밭은 떠내려가고요, 나무들은 뽑혔고요, 창고며 농기구도 다 떠내려가고요, 아직 흙탕물이 안 빠져서요, 멀찌감치 바라만 보다가 왔어요. 속이, 속이 아니죠. 뭐라고 말을 못 하겠습니다. 투자한 것이 얼만데요…. (한숨) 돈이 아니라 시간이랑 노력 말입니다. 떠내려간 것이 5억이라면 누가 10억을 준대도 되살릴 수 없잖아요. 헛웃음만 나오고, 이게 꿈인가 싶고요, 믿어지지도 않고, 한심하고, 어이없고….”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하나. 하루 세 번, 타이레놀서방정이 베스타제당의정이 약효를 발휘하기는 할까. 800mm가 넘었다는 강수량을 되짚지 않더라도 지난 오십여 일간의 기록들. 하늘님은 울고 울고 실컷 울고도 모자라 땅 위의 것들을 그렇게나 쓸어가셔야 했을까. 바다가 되어버린 거리, 무너진 집, 지붕 위에 올라선 소들의 슬픈 눈이 아프다. 섬진강 건너가 높디높은 사성암까지 올라갔다는 소떼 화면을 지나 진료대기실에서는 수해(水害)로 신음 중인 세상 소식이 종일 생방송이다.


“남원부터 아래쪽 보니까로 심각하드만. 무주도 용담댐 방수로 보통 난리가 아닌디.” 삼 년근 인삼 흙물에서 몇 개 건져오고 사과 복숭아는 진즉에 포기다. 어르신들 이야기를 더 나열하여 무엇 하랴만, 전답이 쓸려가고 집이 무너졌어도 농사는 다시 지으면 되고, 사람만 성하면 된 거라는 결론이 아픈 희망으로 읽힌다.


“올나락이 인제사 제~우 올라와가꼬 몽실몽실 필라고 허는디, 태풍이 온당게 걱정이네. 바람이 흔들어서 쌀꽃 떨어지믄 쌀밥 떨어지는 것 맨치로 맴이 아프당께. 지발지발 조용히 지나가십사! 소장님도 기도 좀 햐!” 꽃을 피울 수만 있다면 대신이라도 울어주련만. 눈물조차 말라버린 소진의 한숨에 어떤 간호가 답일까.


논둑 따라 걷는다. 길섶 사이 훈짐처럼 코끝을 스치는 땅 내음. 장마 이겨내더니 여름 간 줄 어찌 알아 초록논 저만치로 가을 향해 피어오르는, 쌀꽃들. 대견도 하여라.

.

.

@가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