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by 간호사 박도순

가을 편지


“다 늙어버린 사람이 무슨 봉숭아꽃물은!” “네?” “아, 아아니, 아니올시다.” 자판 두드리는 나의 손가락을 바라보시더니 말씀하신다. 나는 어르신을 바라보며 “늙어버린 사람은 봉숭아꽃물 안 되나요? 첫눈 올 때까지 손톱에 꽃물 남아 있으면......”라고 하자 (어이없다는 듯) 웃으신다. 나도 웃었다. 감기약을 받아들고 자리에서 일어선 당신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진료실 밖에서도 몇 번 뒤돌아보는 것이 분명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어 보였다. 그날은 거기까지였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우체부에게 받아든 그것을 현관에 선 채로 열었다.


어르신의 더운 심장에서 소용돌이치다 손끝을 타고 흘러내렸을 푸른 육필(肉筆). 안부 인사를 시작으로 육십 년이 넘도록 봉인되었던 오랜 기억이 풀어졌다. 강 씨의 사연은 나의 손끝을 타고 들어와 심장을 흔드는 것이었다. 읽고 또 읽었다. 당신보다 훨씬 연하(年下)인 ‘다 늙어버린’ 이 사람에게 쉽지 않은 용기를 담으셨다. 행간을 읽어 내려가니, 마치 내가 ‘그녀’라도 된 것 같다.


『소장님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며칠을 번민하다 적어봅니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일입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소장님은 이 글을 읽고 나서 여기에 적지 못한 저의 마음도 헤아려주시리라 믿습니다. 저의 나이는 여든일곱 살입니다. 이제,와서 열아홉 살, 그때를 그려봅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칠십 년 전 그때는 남녀유별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중했습니다. 좋아하면서도 좋아한다는 눈빛조차 마주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저는 그녀를 좋아했습니다. 그녀도 나를 좋아했습니다. 말없이 서로 사랑했습니다. 대학 시험 때문에 대전으로 올라가던 날, 나는 그녀에게 책 한 권을 선물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6·25 전쟁이 극에 달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면 그것은 곧 죽음이었습니다. 일 년 넘게 도망 다니며 기피자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입대했고 제대 후 저는 세파에 파묻혀 갔습니다. 그녀는 점점 잊혀갔습니다. 그러다가 한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2남 1녀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부부는 희로애락이라는 인간의 감정에 충실합니다. 가문을 이어가면서 가족을 지킵니다. 아내는 치매에 걸려 8년 넘게 요양원에 입원 중입니다. 어려운 형편에 가정을 이끄느라 힘들었습니다. 넉넉지 못한 생활고에 그녀를 떠올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녀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살아있다면 팔십이 넘었을 그녀, 살아있기나 한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죽음을 바라보는 나이에 서고 보니, 살아오는 동안 그녀의 안부라도 물었어야 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녀가 나를 용서해주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좋은 기억을 간직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사랑으로 그리움으로 살아갑니다. 사랑에는 영원한 이별이 없습니다. 생명보다 귀한 사랑은 세상 무엇을 준다고 하여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의 이야기가 추잡스러운 늙은이의 푸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낡은 유행가 가사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저의 속마음을 담아봅니다.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홀가분한 기분이 듭니다. 소장님께 털어놓으니 깃털처럼 가볍습니다.


저에게 남은 인생은 얼마나 될까요? 그녀에게 진심으로 미안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녀와 나는 못 맺을 인연이라 스쳐 갔습니다. 운명 속에 몸부림쳤다 하여도 맺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생 황혼 녘에 뒤돌아보니 되 물릴 수 없는 방향으로 갈라선 우리. 그녀 소식은 바람조차 전해주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하였겠지요. 열아홉 살 이후 나의 시간은 그녀의 것이 될 수 없고, 열여덟 살 이후 그녀의 시간도 나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저에게 소중한 것은 다만 그때 그 시절 속의 그 시간입니다.


소장님 손톱 끝에 남은 봉숭아꽃물 보고 던졌던 말씀이 언짢으셨다면 사과드립니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몸도 쇠약해졌고 주름도 늘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이라고 해서 사랑하는 감정이나 추억이 닳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소장님, 감사합니다. 2019년 9월 안성면 강**』



정지된 시간 속에 얼음 땡 인형처럼 굳어선 기분이었다. 대학 정문 앞 찻집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 사람이 떠올랐다. 의자에 앉으려니 “내 앞에 앉지 말고 내 옆에 앉아주는 사람이 되어 달라”며 두 손을 맞잡던 그 사람. 그날 밤 그의 고백은 소름 끼치도록 부드럽고도 짜릿했었다. 삼십여 년 전 그 사람. 지금도 안녕하신지, 그곳에도 바람이 부느냐고, 불현듯이 나도 편지 한 통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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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목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