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뵙는 분이다. “안녕하세요?” 잠깐 눈길 맞추시더니 곧 내리신다. 수줍은 것인지. 불만인지. 인사를 드려도 묵묵, 미소를 지어도 무표정. 나와 어르신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를 파(破)해야겠다. 다시 여쭈었다. “성함 좀 알려주십시오.” 진료 창에 성명을 입력했다. 엔터 키 누르니 모니터 한쪽으로 ‘류마티스관절염’이라는 붉은 메모가 들어왔다. 진료와 처방 내역에는 최근 3년 이내 과거력이 없다. “어디가 아프십니까? 보건진료소에 자주 안 오셨군요.” 텅 빈 진료기록부가 그것을 말해주노라며 이야기를 이었다. “저기...... 오기 싫어서 안 온 것이 아니고요, 이전에 근무하던 소장님들이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해싸서 안 왔지요.”
걸어가면 허리가 아프고 배가 졉쳐짐시나 허리가 꼬부라징게 유모차를 밀고 가도 허리가 안 펴징게 아프다는 것이 오늘의 주호소이다. 큰 키와 큰 눈을 보며 젊은 시절 정말 미인이셨겠다고 말씀드리는데 안 들리시나 보다. 엔간하면 그냥 산다며 내뱉는 한숨에 체념도 묻어났다. 아픈 채 살아간다는 김 씨. 새로 발령받은 소장님은 처음 봤응게 순하게 약 좀 지어달라고 당부하신다. 타이레놀을 드려야 하나, 이부프로펜을 드려야 하나, 한 알 드릴까, 두 알 드릴까. 내 머릿속으로는 보건진료소 진료지침이 권한 약의 용량이 날아다닌다.
다소곳이 모은 두 손. 구부러지고 꺾어진 엄지손가락. 얼핏 보기만 해도 이 정도면 하루 이틀 약을 드셨겠나, 진통제 몇 알이 과연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피로감이 밀려왔다. “병원 다니면서 약도 많이 드셨을 것 같아요.” 당신의 손가락은 이미 꼬집기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였다. 마다마디 백조 목처럼 펴지고 구부러진 채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플 때마다 어루만졌을 키 다른 손가락들. 뼈와 연골이 틀어진 골미란(Bone Erosion) 사이로 이토록 변형된 상흔이 남기까지에는 얼마나 붓고 빠지기를 반복하였을까. 어르신도 어쩌지 못할 통증 앞에서 또 얼마나 우울하셨을까.
“먹고 살기 심 등께 친정엄마가 인삼 장사를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집에서 땅끝 해남까지 걸어갔어요. 두 달 걸치드만요. 큰아들 업고 갔는디 징허니 멀더만(웃음). 집으로 와서 자고 일어낭게 온몸이 불덩이더라고요. 그라고 나서 손가락이 붓기 시작하더니 그때는 일 년 내내 누워지냈고만요. 서른세 살이었응게 사십 년도 넘었네요. 유명하다는 병원병원 안 간 곳이 없어요. 금산, 영동, 대전, 서울, 김천. 말도 마세요. 쑤시고 아플 때는 내 살을 때려감서 잘못해따 잘못해따 빌었습니다. 인자는 허리까정 꼬부라져 자꾸 앞으로 넘어질라 한당게. 약살이 쪄서 몸이 거창하게 붓기도 했는디, 요새는 속이 안 좋아서 지랄맞아. 못 전디게 아프면 병원 가고 사나흘 괜찮다가 약 끊으면 아프고. 인자는 살살 달래면서 그락저락 사요.”
계절이 백 번도 더 바뀌었지만, 몸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김 씨. 그토록 오랜 시간의 압박 속에서도 살아(!)남아 오늘에 이른 저 질병이여. 너의 수명은 도대체 몇 년인 것이냐. 나는 까닭 모를 무력감 앞에 초라해졌다. 병원을 전전하며 수많은 의료진을 만났을 것인데 그러고도 고침 받지 못한 김 씨의 류마티스관절염 앞에 나는 매우 미안하다. 세월의 더께만큼 두터워지고 틀어진 손가락 마디는 당산나무 밑동보다 외경(畏敬)스럽다. 아군(我軍)이 오히려 나를 적으로 여겨 공격하는 병.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찾아오는 저 우울한 방문객. 자가면역질환 대표 류마티스관절염은 관절 활막에 염증을 일으키고 통증을 유발한다. 환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여러 불편을 호소한다.
질병이란 무엇일까. 왜 누구에게는 다가오고 누구에게는 오지 않는 것일까. 질병은 그가 있는 곳에 마치 잘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진물로 보여주거나 콧물, 고름이나 설사를 유발한다. 점액이 흐르고 혈액이 흐른다. 기원전 2세기경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주치의였던 갈렌은 이러한 점액의 흐름을 ‘류마티스모스(Rheumatismos)’라고 이름 지었다. 질병은 우리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게 만든다. 이미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앞으로 마주할 죽음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얼음 방망이로 냇물 빨래하던 시절, 부은 손 탓에 쌀바가지 놓치기 일쑤여서 정지 바닥에 주저앉아 쏟아진 그것을 쓸어 담느라 쌀알 눈물 툭툭 흘리셨다는 어르신.
이제는 차라리 아픈 채 살아가기로 했다는 선언에 저 질병은 어떤 미소를 짓고 있을까. 조기 발견 조기 치료, 예방 관리는 예외 없이 강조된다. 관절 손상의 핵심 원인 물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 반갑다. 치료제 개발은 시간문제일 터. 류마티스관절염의 완전한 관해, 그 바람 가진 이, 비단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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