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으신가요

by 간호사 박도순

괜찮으신가요


“엄마눙 어때?”(카톡) “뭐가?” “엄마님 요즘 인생이 어떻냐구~?” ‘뭐지......? 뜬금없긴. 무슨 일이 생겼나?’ “엄마 인생이 어떻냐고? 글쎄, 뭐, 힘들기도 하고 그럭저럭 그렇지. 보건진료소에 오시는 아프고 힘든 분들, 간호하고 아프고 힘든 이야기 듣는 것이 힘들어. 삶은 롤러코스트?(찡긋)”(카톡) “역시 인생은 다이나믹이구낭” “힘들 땐 그냥 그렇게 지내는 수밖에 없지. 그러다 보면 지나가잖아. 요즘 힘들구나?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어? 그런데 엄마가 보건진료소에서 매일 만나는 칠순 팔순 넘은 어르신들 말씀 들어보면 나이 들수록 더 힘들다고 하시더라. 인생은 가시밭길 걷는 일인 것 같아. ㅠ.ㅠ”(카톡) “엄마님 나이 오십 넘어도 똑같구먼~ 사람은 왜 힘들까? ㅠ.ㅠ 존나 버티겠습니다. 존버존버”(카톡)


대학에 다니고 있는 작은딸이다.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무슨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작은딸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 ‘괜찮지 않은’ 어떤 속내가 무엇인지, 더 듣고 싶었지만 존버 하겠다는 다짐에 다소 안도하며 묻지 않았다.


딸의 질문은 며칠 동안 내 주위를 맴돌았다. 요즘 인생이 어떠한가.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진료 마친 후 다소 여유가 생기면 환자분들에게 여쭈었다. “인생 괜찮으신가요?”라고.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야 할 소장이 인생이 어떠냐니 소장님, 요새 뭔 일 있어요?” 어르신들은 오히려 나의 안부를 염려하셨다. 대답은 다양했다. “어떻긴요, 뭐. 그냥저냥 살지요.” 유(類)의 답이 나오기도 했고, “살고 싶어 사는 게 아니라 죽지 못해 살죠.” 유의 답들. “오! 삶은 아름다운 것, 늙어갈수록 찬란해지는 것, 행복이 넘치는 것이라네. 기대하시라. 육십 넘으면 더 아름답고, 칠십 넘으면 더 완전하다오! 팔십 넘으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완성된다네. 그것이 인생이야! 조금만 참으시게.” 이런 유의 답은 결코 들을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점심시간 지나 아흔세 살 정 씨 어르신이 오셨다. “대학에 다니는 딸에게 뜬금없이 인생이 어떠냐는 문자가 왔는데 뭐라고 대답해주면 좋을까요?” 하며 의견을 여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르신. 나의 힘든 일상을 덧붙였다. 칼이나 농기구에 베이고 찢어진 상처를 붙잡고 달려오는 환자들, 흐르는 피를 닦아내고 소독하는 일, 팔다리 허리 안 아픈 곳이 없다는 통증 호소들, 매일 죽고만 싶다는 김 씨 마음 다독이는 일, 그 일들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렸다. 의식 저편의 어린 지천명(知天命)의 나도 내 편 들어주는 엄마 같은 위로를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르신은 머잖아 백세(百歲)에 이를 것이니 무슨 말씀이든 한마디만 들어도 묵직한 잠언(箴言)처럼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말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고개를 가로저으시더니 “소장, 나는 오래 살아서 부끄럽네. 미안합니다.”라고 하신다. “어머나, 무슨 말씀입니까?” 깊은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쉬더니 지난주 병원에 다녀오신 이야기를 나눠주셨다.


“삼사십 년 넘게 관절이랑 골다공증약을 먹고 있는디 진찰실에 들어성게 의사 양반이 약을 모두 끊으면 안 될까요? 함시나 웃더구먼.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 선상님!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라고 했네. 웃자고 하는 얘기지. 약을 안 먹을 수도 없고 먹자니 지긋시럽고. 그날은 의사 선상님도 참 피곤해 보이더군. 누가 나한테 나이 물어보면 참말로 부끄럽네. 어쩌것능가, 살아있으니 또 살아야지, 안 긍가 소장?” 뭔가 더 고급진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이든 한마디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어색한 침묵만 이어졌다. 잠시 후 여쭈었다.


“살아오시는 동안 언제 가장 행복하셨습니까?” “도대체 나에게 행복이 있었던가. 좋은 시절 대나무채 밑으로 깨알 빠지드끼 다 빠져나갔네. 바람처럼 지나갔지. 남은 것이라곤 쭈그렁 껍데기뿐이야. 부끄러워. 돌아보면 다 헛수고만 했다 싶네. 참말로 한심하당게.”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래도 내일이 되니 밝은 날이 오더라고, 고통을 참아 견뎠더니 좋은 날이 오더라는 대답을 원했던 까닭이다. 정 씨의 말씀을 되돌려보자면 희망이라 불렀던 내일이 오늘이 된 지금 여전히 고통이요, 피곤함이라는 말씀이지 않은가. 행복이란 오늘이 어제가 된 그저께 붙잡았어야 할 신기루 같은 것일까.


“소장! 세 살배기 애기는 엄마젖 빠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지. 대학에 다닐 나이라면 한창 때지마는 그렇다고 힘든 일이 없것능가. 딸에게 말해주시게. 좋은 일이 생길 때는 무슨 안 좋은 일을 주시려고 이러나, 또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는 무슨 좋은 일을 주시려고 이러나 생각하라고 말일세. 좋은 일 생겼다고 펄펄 뛸 것도 없고, 안 좋은 일 생겼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필요도 없지. 나도 어른들에게 배웠고 살면서 확인했네. 세상일이 어찌 좋을 수만 있것는가. 어찌 나쁠 수만 있것는가(웃음).”


어르신 굽은 등을 내리덮는 햇살이 따사롭다. 흰머리가 유난히 눈부시다. 정 씨가 남긴 메시지를 딸에게 전하였다. 그리고 물었다. “요즘은 어떠신가? 괜찮으신가요?”(카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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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