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경력 10년 이상, 최근 3년 이내 공무 국외여행 경험 없는 자. 국외 연수단 참가 자격 선발 조건이었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복권에 당첨된 것 마냥 기분이 들떴다.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인 보건 의료서비스 정책이 일본에서는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보고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도청 관계자 두 명, 보건진료소장 서른아홉 명, 마흔한 명이 모였다. 전주에서 출발한 버스가 공항에 도착하였을 때 아침햇살이 눈에 부셨다. 이륙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나고야(名古屋) 공항에 착륙했다. 다시 두 시간 반이 넘게 달려 이시카와현(石川県) 가나자와시(金沢市)에 도착하였다.
첫 방문 기관은 이시카와현청(県庁)이었다. 11개 시(市와) 8개정(町)의 인구는 약 115만 명(전북 180만 명)이다. 섬유 산업 특히, 인조 직물과 기계 산업이 발달한 도시로 전라북도와 오래 전부터 자매 교류 중이다. 현청에 도착하니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깔끔함, 세미나실에 도착하기까지 길목마다 안내하는 직원들의 친절은 특유의 일본스러움이 묻어났다. 일행과 인사를 나눈 뒤 현청 건강복지부 장수사회과 담당 직원으로부터 ‘지역 포괄 케어시스템 구축과 이시카와현 대응’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이시카와현 고령화율은 29.2%, 후기 고령화율은 14.6%이었다. 2025년이 되면 1947년∼49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단카이세대’가 75세 이상이다. 일본 인구 18%를 차지하게 될 것이며 2065년에는 총인구가 8,800만 명까지 감소, 65세 이상은 전체 약 38%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도 제시되었다. 지역 포괄 케어시스템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였다. 목표는 단순했다. 오랫동안 살아온 지역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인생 마지막까지 자기다움을 유지하며 사는 것. 자기 지역에서 자기답게 살다 죽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왜 국가가 개입하고 다양한 정책을 펼쳐야만 하는가.
이유도 단순했다. 비혼과 저출산으로 인구는 감소되고, 소자 고령 다사(少子高齡多死) 사회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독거노인(一人暮らしシニア)은 증가하고, GDP 증가 대비 사회보장비가 훨씬 더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자국민에게 국가 시책을 의지하기보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각오하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75세 이상 노인을 지탱할 20∼64세 인구 4.1명(2015년), 2040년에는 2.4명, 노토 북부는 0.9명. 이시카와현의 지역에 따라 상황은 달랐지만, 그를 반영한 지역 포괄 지원센터 운영과 일상생활 지원을 위한 직종 간 연계, 정보 공유와 시책 노하우 활용 등 정책으로 기울이고 있는 노력들은 그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라는 반증처럼 들렸다. 듣는 내내 우리에게도 다가올 미래여서 묘한 긴장감과 두려움이 느껴졌다.
게이쥬종합병원을 비롯한 이시카와현립간호대학, 마을 소규모 노인홈에 이르기까지 연수는 4박 5일간 이어졌다. 기억에 남는 두 가지가 있다. 인구 현황 설명시 특히 강조되는 ‘후기고령화율’과 ‘다키마치의 사쿠나게 치매노인 노인홈’의 운영 방식이었다.
후기고령화율은 평균 수명 연장과 그에 따른 노인 인구 현황과 대책의 지표였고, 노인홈은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공동 생활하는 매우 특별한 공간이었다.
치매 어르신은 지역에서 분리되고, 아이들은 방과 후 학교나 아동센터로 향하는 우리와 다른 모습이었다. 75세가 곧 90세가 되어 바닥을 칠 것이라는 미래 15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각성 앞에 그간의 시책 무효성 대책으로 결국 익숙한 지역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안심하며 지내는 삶의 방식이 가장 최고라는 깨달음은 자기반성의 모습처럼 보였다. 전문가들은 결속하자고 했고, 지역 주민들은 협동하자고 부르짖고 있었다.
치매노인 그룹홈은 옥상 간판이나 그 흔한 광고형 현수막조차 걸려있지 않았다. 가정집 현관을 열고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조용하고 아늑했다. 1인실과 다인실, 공동 작업실 등이 있었다. 환자용 침대를 제외한 생활용품은 모두 집에서 가져온 자기 이불, 자기 베게, 자기 옷이었다. 집의 유효성을 그대로 살려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가족들은 시간 구애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었다. 마을에서 단절되고 분리되어 멀고 낯선 요양원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고향 마을’에서 ‘고향 사람들’과 당신의 삶이 어제와 연결되고 있었다. 일행이 견학하던 시간에는 어르신 세 명이 직원과 함께 새우튀김을 만들고 있었다.
2030년에 태어나는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90세 장벽을 깰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빛은 짧아지고 노년의 그림자는 길어지지 않겠는가. 노인은 지역사회에서 분리되고 죽음마저 장례식장에서나 마주하는 타인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 지금. 분홍빛 청사진이 아닌 현실을 직시한 일본의 각오와 대비책이 그래서 더 남다르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을 통하여 우리의 미래를 본다는 말이 있다.
한국형 커뮤니티 케어는 과연 어떤 결실을 맺을까. 죽어도 요양원에는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요양원 현관에 도착한 큰아들 승용차에 장정 두 사람이 끌어내려도 내리지 않은 채, 두 시간 넘도록 가죽 소파를 집어 뜯으며 “제발 집으로 돌아가자”라고 울부짖던 우리 마을 어르신의 그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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