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다고 마가지가디

by 간호사 박도순

그런다고 마가지가디



“저는요, 평생 호밋자루만 잡고 땅만 파고 살았습니다. 붓을 잡아보다니요?” “내 이름 석 자만 쓸 줄 알아도 대학 졸업 보다 기쁠 것입니다.” “건강이 최고입니다. 잘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교실이라는 말만 들어도 두근거립니다.” 어르신 대부분 기대와 설렘이 묻어나는 포부를 밝히셨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릴 듯 말 듯, “그런다고 치매가 마가지가디?” 아주 작은 소리였다. 이상도 하지, 왜 그 소리가 그토록 크게 들리는가 말이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치매는 분명 막을 수 있다고 나는 왜 말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정말 예방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가능을 인정하는 기분이어서 부끄러웠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서 있었고 당신의 조용한 힐난은 의심의 가시가 되어 나의 심장을 찔렀다.


보건진료소와 함께 하는 ‘교통 취약 지역-찾아가는 치매 예방 교실’ 사업 설명회 자리였다.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초복(初伏). 참여 희망자 조사를 위하여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마당에는 수박이며 음료수, 떡과 술이 푸짐했다. 한쪽에선 짙은 마늘 향 인삼 향 가득한 닭죽이 끓고 있었다. 잔치였다. 식사 후 어르신들과 둘러앉았다. 치매 예방 교실은 보건진료소가 있는 마을 주민 대상으로, 매주 치매 예방 체조, 인지 훈련과 인지 자극 활동이 다양하게 제공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희망자가 적으면 어쩌나 걱정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23명이 해보겠다고 손을 들어주셨다.


주 1회, 1회에 2시간, 15회, 65세 이상 어르신 대상으로 치매 예방 교실 운영이 시작되었다. 보건의료원의 행정지원, 치매안심센터, 외부 전문 강사, 주민들의 일사불란한 협력이 이루어졌다. 첫 회에는 운영 계획을 설명하고 사전 조사를 했다. 올해 몇 년, 지금은 무슨 계절, 오늘은 며칠, 무슨 요일, 우리가 있는 곳은 무슨 도, 무슨 군인가 묻는 질문부터 100에서 7을 빼면 얼마가 되는지, 거기에서 7을 빼면 얼마인지, 거기에서 또 7을 빼면 얼마인지 묻는 계산 능력, 사물의 이름과 기억력, 겹친 오각형 그리기를 포함한 한국판 간이정신상태 검사(MMSE-DS)와 한국판 노인우울척도(SGDS-K), 주관적 기억감퇴 평가(SMCQ) 등 설문조사가 이어졌다.


두 번째 수업부터 인지 학습 놀이, 율동과 노래, 그 이후에는 색종이 접기, 목공예 등 14주 동안 체조와 인지 활동은 전문 강사와 협력하여 진행하였다. 어르신들 집에서는 접할 수 없는 인지 자극 활동이 이어질 때마다 어르신들 입에서 터져 나온 ‘처음’이라는 단어, ‘다시 태어난 것 같다’는 감탄, 붓을 들어봉게 손이 벌벌 떨린다는 소감, ‘사랑’이라는 글자를 연습할 때에는 가슴이 얄긋얄긋하다는 탄성까지. 어르신들도 웃고 나도 웃었다.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중재를 제공하는 강사님과 제공받는 어르신들 사이에 상호작용의 설렘이 일어났고 지긋한 감동이 이어졌다.


시간과 장소와 사람을 알아보는 일, 그것이 뭐 어려운 일이냐고, 일 같지도 않은 일을 묻는다며 큰소리치는 분도 계셨다. 그러나 치매에 걸리면 그 일 같지도 않은 일이 소리 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선명했던 기억은 소멸되고, 서서히 혹은 갑자기 맑았던 정신은 추락한다. 보건진료소에서 하겠다는 프로그램으로 치매가 막아지겠느냐고, 어르신의 힐난 섞인 말씀은 인간의 늙음을 막을 수 없음 같이 어쩌면 치매라는 질병도 예방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애써 외면한 불신의 걸림돌이 어느 날은 수면 위로 불쑥 올라오기도 하더니.


여름이 지나가고 서리 내리는 계절이다. 마지막 수업시간이었다. “그동안 치매 교실에 출석하면서 느낀 점을 좋아하는 단어나 짧은 글로 표현하기” 그 단어나 글을 연습하여 액자 만들기. 그것이 목표였다. 사랑, 행복, 고마워요, 해바라기, 건강이 최고, 내가 최고, 내가 좋아, 꽃이 좋아. 마치 주관식 시험지 앞에서 머리를 쥐어짜는 학생들처럼 어르신들은 몇 번이나 쓰고 또 쓰며 몰입하셨다. 수북하게 쌓인 먹지 사이에서 최고의 헌사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수업 중 별말씀이 없던 장 씨 어르신의 일필(一筆)이었다. 좋아요 좋은 날이 왔구나 좋은 날이 왔구나 좋은 날이 왔구나.


‘그런다고 마가지가디?’ 트라우마처럼 내게 박혀버린 냉소적 비아냥이 먹빛 활자 앞에서 단번에 녹아지는 것이었다. 치매 예방 교실 운영이 치매 예방에 확실한 효과가 있다고 자신하지 못한 나의 흔들림을 단번에 꽉 붙들어주는 문장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다. 모든 날보다 오늘이 최고의 날이라고, 힘들어도 힘이 났었다고, 어르신들이 꽃 중의 꽃이라고 소감을 나누었다. 우리나라 노인치매유병률 10%. 관리 비용에 들어가는 나랏돈 14조 6천억 원. 2050년까지 20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던가. 그깟 숫자 군집 따위가 뭐가 중요해라고 했다가도 그것이 나타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면 오싹하기도 하다. 태풍에 나락이 쓰러져도, 깨타작을 못해도 수요일이면 보건진료소로 향하던 발걸음이 감사하다. 좋아요, 좋은 날이 왔구나, 좋은 날이, 참, 좋은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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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