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안의 가시

by 간호사 박도순

입 안의 가시


진통소염제로 며칠을 버텼다. 진정 조용히 가라앉아주기를 기다렸지만 소용없었다. 밤사이 잠들었던 통증은 날이 밝으면 더욱더 거세게 엄습해왔다. 도저히 안 되겠다. 점심시간에 면 소재 치과의원으로 달려갔다. 마취 주사 몇 대 찌르시더니 잇몸을 짼다. 이내 선생님의 굵은 손가락 몇 개가 입 안으로 들어왔다. 누르고 짜고 소독했다. 침이 고이고 비릿한 피 내음에 온몸은 장작처럼 굳어진다. 거즈를 앙다문 채 얼얼한 턱을 어루만지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수일을 참고 참은 나의 호기를 일시에 잠재운 치통. 아파서 씹지 못하니 먹는 것이 힘들고 기운은 떨어졌다. 매사가 짜증스러웠다. 구석진 어금니에서 시작된 그것은 전신을 흔들었다. 여태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통증의 세계였다.


그날 오후에는 마을 출장길에 올랐다. 거동이 불편하여 보건진료소에 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방문 간호를 위해서다. 안부를 살피고 이야기 들어드리고, 혈압과 혈당을 재는 등 어르신들 요구를 해결하였다. 마을 회관을 지날 즈음이었다. 서너 켤레 신발이 보였다. 인사라도 드리고 가자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누워계시던 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찬은 없지만 굳이 밥을 먹고 가라 하신다. 못 이기는 척 염치없이 주저앉았다. 밥상을 기다리다 이방 저방 기웃거렸다.


무심결에 큰방 벽에 붙어 있는 글을 발견했다. 그 사이 밥상이 들어왔다. 새로 꺼낸 김장김치와 다독거려 눌러 담은 쌀밥이 먹음직스러웠다. 도오선자시오적 도오악자시오사(道吾善者是吾賊 道吾惡者是吾師).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毀傷). 밥 한술 입에 넣고 더듬더듬 읽어 내려가는데 할머님들은 “아, 얼렁얼렁 밥이나 자셔! 붙은 지 십 년이 넘었어도 우리헌티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여”하신다. 함께 웃었다. 글밥은 동서고금을 관통한 논어와 보감의 어록들이었다. 명문장만 골라 적은 휘호를 보며 생각했다. 글씨도 훌륭하고 뜻도 훌륭하니 이 마을에는 분명 오랫동안 서도(書道)를 익혀온 분이 계시겠구나. 누구실까. 중간쯤 읽어나갔다. 오호! 저것은? 익숙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밥 한 수저 위에 김치 한 조각 얹었다. 어린 시절 저 문장을 만났을 때, 인생을 앞서 살아간 사람이 전해주는 그저 그렇고 그런 글이구나, 뭐 책을 많이 읽으라는 말씀이려니 생각했다. 나이에 숫자를 더해가는 동안 저 글은 몇 번이나 나의 곁을 스쳐 갔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지나치기도 했을 것이다. 교실이나 도서관 혹은 어느 집 가훈 액자 속에서 말이다. 별다른 해석이 있을까에 대해 의심한 적은 없다. 다른 시각으로 뜻풀이를 시도한 적도 없다. 도대체 얼마나 읽으라는 말씀인가. 얼마나 읽어야 입에 가시가 돋지 않는단 말인가. 얼마나 읽어야 읽기를 완성했다고 할 수 있을까. 볼멘 트집으로 흘겨본 것은 읽기에 소홀한 나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은 변명이오, 자기 합리였는지 모르겠다.


굳이 외우려 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느새 외워져 버린 문장. 불과 열(十)에 불과한 글자의 조합. 입 안 가득 밥과 김치를 넣고 깨무는 사잇길로 어떤 생각들이 밀려왔다. 옥중(獄中)의 선생님은 왜 읽지 않는 고통을 대추나무 가시에 비유하셨을까? 글은 눈으로 읽어 인식에 이르거늘 왜 눈(目中)이 아니고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하신 것일까. 입에 문제가 생긴다면 구내염이 옳지. 칸디다(Candida) 성 혹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염증 말이다. 상상해 본다. 정말로 입에 가시가 돋는다면 어떠할까. 말을 할 수 있을까,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혓바늘 하나에 보드랍기 짝이 없는 혀는 얼마나 아픈가. 통증은 온몸으로 전달되고 고통은 확산될 것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며 투덜거린 나의 부족이 그즈음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저 많이 읽으라는 저급한 문장이 아니었구나. 책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을 읽으라는 말씀이었구나. 책을 거울삼아 나를 비추고 나의 속사람을 다듬으라는 말씀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가시밭이 된다는 말씀이었구나. 가시로 가득한 마음에서 평화와 사랑의 언어가 쏟아질 리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뱉기 쉬울 것이다. 남을 아프게 하기 전 혹은, 아프게 하고 나서 어쩌면 스스로 괴로워 못 견딜 형극의 후회.


보건진료소에 오시면 어르신들은 말씀하신다. 글을 적을 줄 알아 당신 살아온 세월 책으로 엮으면 몇 트럭은 넘을 것이라고. 석 달 열흘씩 세 번을 적어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라고. 그리하여 쏟아진 것들은 천지간에 쌓아둘 곳이 없을 것이라고.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던가. 종이로 묶은 것만 책일까. 사람이 책이다. 한 생애가 책이다. 나와 상관없는 벽면에 봉인되어 있던 저 문장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저벅저벅 걸어 나와 나에게로 훅 안기는 이 저릿함. 이빨 사이에서 참깨 한 알 톡 터진다. 밥 한 그릇 뚝딱!


인사드린 후 회관 밖으로 나왔다. 이미 어둡다. 잔별과 걷는다. 나는 애써 읽어야겠다. 책을, 사람을, 한 생애를. 그리고 아주 가끔은 가시에 찔려 아프기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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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목리